유학생활, 마음이 자꾸만 약해질 때

하염없는 안개 속에 갇힌 것 같은 날들이 있다.

by 봄의파랑


I HAVE BEEN TO HELL AND BACK,
AND LET ME TELL YOU, IT WAS WONDERFUL.


곽미성 작가의 <그녀들의, 프랑스식, 연애>라는 책을 읽다가 발견한 문장이다. 작가는 몇 년 전 퐁피두 미술관에서 구입한 루이스 부르주아의 바느질 작품 사진에서 이와 같은 문장을 발견했다고 했다. 이 문장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특히 프랑스에 남을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던 복잡한 머릿속을 강하게 치고 갔다.

지난주, 부모님이 파리에 오셨다. 1월 말에 헤어진 이후 약 6개월 만이었다. 그즈음의 나는 프랑스어 공부에 약간의 권태를 느끼며 집세, 각종 고지서, 생활비 등 일상적인 고민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살림살이가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주기적으로 이력서와 동기서를 보내고 면접을 봤다. 개중에는 내가 프랑스에 살면서 한 번쯤 일해보고 싶은 회사도 있었다. 어느 날은 기대감에 부풀었고, 어느 날은 밀려드는 좌절감에 우울했다. 살아남기 위한, 아니 잘 살아보기 위한 모든 노력에 약간은 지쳐갈 즈음 부모님을 만나게 되었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오히려 마음이 갈대처럼 이랬다 저랬다 흔들렸고 나조차도 내가 원하는 게 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내가 원한다면 여기 공부를 남아서 더 해보라고 하셨고 그렇기에 그 결정이 오롯이 나의 몫으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내내 그 안정감이 좋아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가도, 다시 돌아가도 어차피 이제는 독립할 때가 되었고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일인데, 늦게 겪어 더 힘든 것뿐이고 결국엔 괜찮아질 거라는 마음. 그러다가도 한국에 돌아가면 그래도 경력을 살려서 회사에 들어가고 안정적으로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가, 그렇게 되면 결국 달라지는 것 하나 없이 또다시 한국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이곳을 그리워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워낙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충만한 나지만, 이제는 남들처럼 안정적이고 평범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꿈 위를 붕붕 떠다니던 삶을 접고 무사히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서야 하지 않을까? 불안정한 비행을 그만두고 안전한 착륙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권태로운 삶을 싫다고 했으면서도 나답지 않게 그랬다.

하지만 막상 답은 간단했다. 부모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시던 날, 우려했던 것과 다르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찌 되었건 치열하게 여기서 살아 남아보고 싶었다.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미리 안 될 거라고 겁내지 말고, 실패가 두렵다는 이유로 비겁하게 도망가지 말고 한 번 맞서 보고 싶었다. 내가 파리에 사는 동안 모국에 대해 막연히 키워왔던 환상들이 막상 돌아가면 3일 내에 식을 것이라는 걸 제법 확신할 수 있었으므로.

미래에 대한 정답을 알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의 선택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는 몰라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에 기꺼이 스스로를 던져보는 사람에게만 더 나은 삶을 위한 가능성이 허락된다. 그 모든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인생이 조금도 더 나아지지 않는다고 해도 때로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가치를 가지는 게 인생이다. 인생은 반복적으로 지옥을 보여주며 우리를 좌절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 보면 '멋지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말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살던 모든 날들이 결국에는 다 아름다운 청춘의 흔적인 것처럼,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러니 살아있음의 환희도, 고통도 모두 끌어안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한 마음을 가질 것. 그렇게 꿈꾸던 도시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이전 09화서른이라는 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