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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파랑 Dec 22. 2019

이 리듬으로 주세요, 춤은 제가 출게요

결국에는 프랑스에 좀 더 남아 보기로 결정했다. 

올해 10월에 한국에 잠시 다녀왔다. 석사 지원을 위한 시험들을 보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가족과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리고 비행기 표를 끊을 당시에 약간의 향수병 같은 것이 있기도 했고,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프랑스에 계속 있을 것인지에 대해 갈팡질팡하던 시기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히려 살아보니 각 나라의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게 보여 어느 때보다 선택이 더 복잡하게 느껴졌다.

인천공항에 딱 내렸을 때, 파리에 두고 온 스튜디오가 너무나 멀고 아득하게 느껴져 내가 진짜 거기서 열 달을 살긴 했던 건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내가 돌아와야 할 익숙한 곳에 돌아온 느낌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간의 긴장이 탁 풀렸고, 편안했다. 서울의 집은 마치 호텔처럼 느껴졌고 그 깔끔함은 정말 깜짝 놀랄 정도였다. 누군가 함께 사는 집,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밥, 익숙한 동네와 주변 환경, 그 모든 게 너무 안심이 돼서  외국 생활이 터무니없이 느껴졌다.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또 어떤가. 하루는 소주와 닭발, 어느 날은 와인과 회,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이는 다양한 얘깃거리들. 함께 웃고 떠드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우리의 삶은 달라진 것만큼이나 여전했고, 그 단단한 울타리가 너무나 따뜻하고 아늑해서 이대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마음이 자꾸만 들었다. 그래서 나는 예정된 시간이 지나면 한국에 돌아와야겠다는 마음을 안고 파리로 돌아갔다.

샤를 드골 공항에 내린 건 밤 10시 정도였다. 그날은 비가 왔을뿐더러 다른 파업으로 집에 오는 길이 험했다. 평소였으면 한 시간 반 걸렸을 거리를 두 시간 넘게 가야 했고, 결국 집에 도착한 건 새벽 1시가 다 돼가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열흘 정도 비운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아, 집에 왔구나'하는 안도감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며 이곳에 있는 것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렇게 주말 내내 집에서 쉬고 청소를 하며 보낸 후, 한주가 시작하는 월요일이 돼서야 집 밖으로 나갔는데 잠시 안 봤다고 내가 좋아했던 파리의 모든 풍경이 새삼스럽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센 강은 여전히 예쁘고, 늘 걸어 다니던 길을 걸어 다니는 평범한 순간조차 모두 너무나 행복해서 막연히 이게 내가 있을 곳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자신과 잘 맞는 장소가 존재한다면 그게 나한테는 파리겠구나 그런 생각. 그래서 파리로 다시 오자마자 여기서 좀 더 살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결국에는. 

9월에 다녀왔던 안시에서. 

프랑스에 남고 싶은 건 어쨌든 마음이 끌려서가 가장 큰 이유이고, 그밖에 다른 이유를 대자면 우선 남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것.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삶이 굴러가는 속도가 매우 느리다. 물론 모두가 불평하는 행정 처리의 속도도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사회가 변하는 속도도 느리고 (발전이 없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다들 자신의 삶을 우선시하며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느긋하게 산다. 나도 살아온 환경이 있는지라 여전히 조급함을 느끼고 가끔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을까 봐 초조하고 불안하지만, 이곳에서 사람 사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자고 스스로를 잘 토닥일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워낙 다양한 삶이 공존하고 있어 명확한 비교 대상이 없다는 것도 도움이 됐다. 결혼이나 취업, 승진 등에 있어 남들과 비슷한 속도를 요구하는 사회적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한국에 있을 때는 내가 정해진 방향을 벗어나기 시작한 시작한 기차처럼 느껴졌고, 실제로 프랑스에서 계속 머물러야 할지 고민할 때도 이대로 가면 기차가 이제 완전히 선로를 이탈을 하겠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하지만 그 어떤 외부의 영향에 흔들리지 않고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이곳에 머무는 게 최선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현재의 행복감으로 원하는 방향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면 된다는 그런 삶의 태도를 배워가고 있고, 실제로도 별 거 아닌 거에 쉽게 행복해지는 작은 일상들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이곳에 있으면 계속하고 싶은 게 생기고, 서툰 붓질이지만 하나하나 미래를 그려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파리로 떠나기 전, 한국에서 나를 가장 두렵게 한 것은 더 이상 어떤 미래도 꿈꾸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루고 싶은 것도, 더 하고 싶은 것도 없다는 게 나도 모르는 새 나를 좀먹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제 꿈꿀 나이는 지나지 않았냐고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하는 게 비참했다. 그 상태로 도망치듯이 날아온 파리에서 나는 다시 하나하나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또다시 미래를 설계하게 되고, 30대에 이루고 싶은 일들이 하나하나 생겨났다. 그렇게 목표 지점과 방향을 찾다 보니 또 한 번 인생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일상이 버겁게 느껴질 때마다 그려놓은 미래를 상상하며 스스로를 타이를 수 있었다. 그중 하나는 언젠가 꼭 방이 두 개 이상인 파리의 아파트에 살면서 가족이나 친구들이 내킬 때마다 방문할 수 있는 게스트룸을 만들어야겠다는 건데 그 상상만 하면 어떤 어려움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든든함이 생긴다. 그리고 하나 더 덧붙이자면, 언젠가 마음이 내킬 때 결혼도 하고 가정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딱히 관심조차 없었는데 요즘은 주위 환경 덕인지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관점이 확실히 긍정적으로 변해간다는 걸 느낀다. 

살다 보면 언젠가 필연적으로 갈림길에 서서 선택을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나는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이 데려갈 미래를 기대하며 살기로 한다. 물론 끊임없이 방향을 잃고 헤매고 넘어져 뒹굴기도 하겠지만 어느 노래 가사처럼, 네가 있을 미래에서 혹시 내가 헤맨다면 너를 알아볼 수 있게 내 이름을 불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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