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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파랑 Jan 04. 2020

유쾌한 게이 커플과 자존감에 대하여

베레모 가게 직원의 데일리 리포트

토요일에는 몽마르트에 있는 베레모 가게에서 일을 한다. 아무래도 관광지 코앞에 있는 가게인만큼 다양한 국적의 손님을 마주하는 재미가 있다. 오늘은 너무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미국인 게이 커플을 만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따분하게 가게 카운터를 지키던 여느 오후, 두 미국인 남자가 가게에 들어서면서 공기가 확 달라졌다. 마치 아침에 커튼을 걷어낸 창에서 햇빛이 쏟아지는 것처럼, 그들이 내뿜는 밝은 에너지가 한가득 가게에 쏟아져 들어왔다. ‘이거 봐, 리얼 프렌치야’ 하고 들떠하면서 서로에게 잘 어울릴 베레모를 고르더니 거울 앞에 서서  ‘oh, my god. I look beautiful’이라고 탄성을 내뱉고 서로에게 ‘너 너무 멋지다, 잘 어울린다’고 칭찬을 한참 늘어놓기도 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자꾸 새어 나왔다. 베레모 색상을 고를 때도 ‘이거 네가 자주 입는 검은색 코트와 잘 어울릴 것 같아’라던지, ‘이거 집에 있는 내 피코트와 딱일 것 같지 않아?라고 하면서 세심하게 서로에게 추천하고 공감해주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 광경을 한참 보고 있으니 이전에 가게에서 만났던 한국인 여자분 생각이 났다. 누가 봐도 너무 예쁘게 생긴 분이었고 가게에서 본 어떤 전 세계 여자보다도 베레모가 잘 어울렸다. 가게 직원으로서 보통 잘 어울린다고 칭찬을 해주는 게 나의 일이기도 하지만 그땐 더욱더 진심으로 칭찬이 나왔다. 하지만 오히려 그 여자분은 베레모가 자기랑 너무 안 어울린다며 자기 자신에게 실망했다고 계속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웃으면서 농담 식으로 꺼낸 말이긴 했지만 괜히 자꾸 신경이 쓰였다. 사실 그 여자분이 베레모를 사고 안사고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베레모를 써보고 사지 않은 채로 나가니까. 내가 안타까웠던 것은 왜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가혹해야 하는지에 대한 거다. 진짜 평생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컸을 것 같은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친구였는데, 유독 스스로에게 평가가 박한 게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겸손의 표현방식이었든 뭐든 간에 나는 우리가 조금  스스로를 아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나한테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은  자신이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이에게 사랑을 받는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초조해하고, 결국에는  사람이 떠나지 않을지 걱정하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사회가 겸손을 미덕으로 삼아서도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겸손해야 된다고 배웠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자신의 공을 낮추는  아닌지 한 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칭찬을 건네보면 어떨까? 남들이 몰라준다고 해도,  스스로는 알고 있으니까 그걸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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