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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파랑 Dec 18. 2019

파리의 공공도서관

온 세대를 아우르는 공간의 필요성에 대하여

어느 날, 보통 때처럼 커뮤니티를 보다가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EBS 방송 <광화문 광장, 도시의 심장을 바꾸다> 편에서 건축가 유현준 교수는 광장이 필요한 것이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필요하죠. 저는 대한민국이 점점 계층 간의 갈등이 심해지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냐면, 공짜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라고 생각해요. 어디 들어가서 앉으려고 하면 돈 내고 들어가 앉아야 해요. 그러면 거기서부터 문제가 생겨요. 우리나라 커피숍이 많은 이유가 그거예요. 앉을 곳도 없고 길거리에 벤치도 없습니다. 점점 공통의 추억이 사라지는 거죠. 도시에는 공짜로 머물 수 있는 벤치도 많아야 하고 공원도 많아야 하고 광장도 많아야 해요. 그런 것들이 생겨야지만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이 모여서 융합할 수 있습니다.'


며칠 전, 공부를 하기 위해 동네의 한 도서관을 찾았다가 문득 이 글이 생각이 났다. 요즘 대중교통 파업으로 편히 다닐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되기 때문에 동네 도서관을 검색하다가 처음으로 가본 곳이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파리에서는 시가 운영하는 공공 도서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파리를 구성하고 있는 20개의 구마다 3-4개씩 도서관을 보유하고 있으며 누구든 입장할 수 있다. 책을 빌리기 위해서는 가입 절차가 필요하지만, 입장에는 어떠한 제한도 없다. 잡지나 신문을 읽을 수 있는 코너, 문학 코너, 비문학 코너, 어린이용 도서 코너 등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도서관의 규모는 제각각이다. 공공 도서관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다양하다. 신문이나 책을 읽는 노인들, 노트북으로 과제를 하는 대학생들, 시험공부를 하는 중고등학생들, 그리고 부모와 함께 책을 읽으러 온 어린이들까지. 이처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책을 읽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공존하는 삶'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이해가 간다. 노인들을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게 해주는 한편, 다양한 세대가 함께 섞이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 다큐멘터리 등의 시청각 자료도 잘 갖추고 있는 편이어서 누구나 쉽게 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살 때 동네 도서관을 몇 번 이용한 적이 있는데 갈 때마다 어르신들은 많지만 청년들은 보기 힘들었고, 사라진 청년들은 반대로 동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연령대에 따라 자주 이용하는 공간이 분리되면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을 볼 때 (그게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어딘가 낯설고 불편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나조차도 이곳에 살게 된 이후로, 공공장소에서 노인들을 자주 마주치게 되면서 나이 드신 분들에 대한 비뚤어진 편견들이 많이 사라졌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평일 오후의 도서관.

지금이야 도서관을 가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사실 처음에는 나에게도 도서관이 그렇게 친숙한 공간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특히, 노트북으로 작업을 할 때면 자연스럽게 카페를 찾았으므로 도서관의 필요성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리고 책은 그냥 원하는 게 있을 때마다 사서 봤다. 하지만 파리에서 매번 카페에 돈을 쓰기는 일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도서관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입 절차를 거쳐야 하고 입장 시에 가드를 통과해야 하는 대학 부설 도서관을 이용했는데 요즘은 공공 도서관을 더 자주 이용한다. (그 역시도 처음에는, 뭔가 열린 공간에서 신분이 불분명한 낯선 이들과 함께 있는 것에 대한 불편 때문이었다. 이제야 그 당시 꽤나 편협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느새 그 누구보다 도서관에 가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일단 가장 좋은 것은 읽을 자료가 널려 있다는 점이다.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언어 자료가 많은 곳은 천국이다. 신문도 읽고, 좋아했던 작가의 소설도 원어로 읽고, 관심 있는 분야의 월간지도 읽는다. 하나를 봤다가 지루해지면 다른 것도 보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간다. 그리고 다른 잡생각은 멈추고 온전히 나의 것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장점이다. 도서관의 평화로운 공기는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고, 그 시간을 오롯이 혼자 사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휩쓸리지 않는 중심을 잡을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파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도서관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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