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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래동 키키팬 Nov 03. 2020

01. 문래동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다

문래동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다.


한 아파트 단지에 터를 잡은 이 아이는 사람들에게 불리는 이름이 아주 많다. 가히 명묘(名猫)라 할 만하다. 한 여자 아이는 '하은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던데, 아무튼 문래동 주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녀석은 이름이 무지 많다.


콩이는 늘 여기에 앉아 문래동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수거해 간다. 당당하게 돈을 갈취하는 깡패처럼 말이다.

나는 녀석을 '콩이'라고 부른다. 왜 하필 콩이냐고? 안 좋은 일이 있어 술을 거나하게 먹고 귀가한 날이었다. 현관문에서 녀석을 앞에 두고 '콩아, 콩아'라고 계속 불렀던 새벽의 기억이 다음날 숙취와 함께 나를 찾아왔다. 집 밖으로 나와 혹시..? 하는 마음에 녀석을 콩아,라고 부르며 아는 척했다. 그러자 콩이가 저 멀리서 야옹거리는 울음과 함께 내 앞에 와 앉았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콩이를 콩이라고 부른다.

내가 사는 아파트 라인 현관문 앞에 앉아 조는 콩이

매일 그렇게 집에 돌아오며 밤마다 인사를 나누다 보니, 나는 콩이와 어느새 정이 들었다. (나만의 착각일지도) 콩이는 내가 술을 먹고 밤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언제나 이렇게 아파트 현관문 앞에 앉아 졸고 있다.

콩아, 하품하다 입 찢어지겠다 얘

인사를 하면 하품을 입이 찢어져라 하는 콩이. 그리고는 시크하게 자기 갈 길 가버린다. 나는 보통 기분이 안 좋은 날에 술을 늦게까지 먹곤 하는데, 콩이의 새벽 하품은 늘 그런 나의 기분을 풀어준다. 밤마다 콩이를 보면, 이 넓은 우주에 그래도 나를 밤늦게까지 기다려 주는 존재가 하나쯤은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정도면 나와 콩이의 사이가 외방향은 아님을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콩이와 그리 가까운 사이가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아마 두 달 정도? 그전까지 나는 우리 아파트 주민들이 콩이에게 사랑을 담뿍 주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콩이도 나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늘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다. 사람과 고양이의 관계도 마찬가질까. 나와 콩이의 경우가 딱 그랬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다니게 되었는데, 하루하루가 너무 힘이 들었다. 하루는 저녁 11시쯤 집에 도착하니, 콩이가 현관문 옆 화단에 앉아 있더라. 그 날은 외로움이 의지할 데 하나 없는 내 마음을 뚫고 나올 정도로 증폭한 날이었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그리 친하지도 않던 콩이 옆에 털썩 앉아 무턱대고 손을 내밀었다. 콩이는 당황한 지 나를 한동안 뻔히 쳐다봤다. 역시 술김에는 뭐든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실감하며 손을 거두려던 찰나, 콩이가 내 손에 쏙 안기며 머리를 비볐다. 마치 우리가 오래된 연인 사이였던 것처럼, 그렇게 말이다.


아마 그날이 내가 처음으로 콩이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언젠가는 반드시 글로 쓰리라 다짐했던 날인 것 같다. 회사에 다니며 매일 우울했던 나에게 콩이는 정말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요즘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고용보험 피보험자격이 상실되었다는 문자를 받은 백수다. 콩이는 문래동 주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듬뿍 받고, 나는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제 발로 뛰쳐나와 집안의 따가운 눈총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기분이 그리 슬프지만은 않다. 이렇게 나와 콩이 사이의 일들을 글로 써내려 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음, 그래 콩이와의 글은 첫 문장을 뭘로 할까? 역시 이게 제일 적격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고이 품어온 것만 같은, 그 문장.



문래동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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