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 생활의 악몽

첫 직장에서의 이야기

by 아론

첫 직장의 기억은 나에게 좋지 못하다. 나는 직장생활 이전에 학생시절 여러곳의 아르바이트를 해봤다. 베이커리점, 솥밥집, 카페 등등. 그 중에는 6개월 이상 한 곳도 있었다. 또 졸업 전에는 방송국에서 뉴스 제보를 받는 아르바이트도 했었다. 그곳에서 기자님들을 보면서 나 또한 성장할 수 있었고 6개월의 계약기간 이후에는 응원을 받으며 퇴사하기도 했다.

이 기간동안 나는 여러군데의 방송국 공채시험 라디오 PD 부문에 도전을 했고 지상파 방송은 물론이고 라디오 방송 매체로 유명한 방송국에서의 시험도 보러 다녔었다. 하지만 번번히 상식 시험 및 작문 시험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졸업 후에 마땅한 수입이 없었기에 시작한 일이었다. 한 방송국의 라디오 부서에서 파견계약직 행정AD로 일을 하게되었다. 하지만 이 선택이 나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되고 말았다.

그 방송국은 소위말하는 텃세가 심한 곳이었다. 공기업이기도 하였고, 기존에 있던 인력의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근무 시간 인수인계도 뒤죽박죽한 상황에서 나는 기존의 책임자와 같은 근무시간에 출근했다는 이유로 미운털이 박힌다. 물론 이후에 나는 회사에 제일 먼저 출근하여 불을 켜는 사람이 되었고, 먼저 출근하신 PD님께 차를 대접해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한번 박힌 미운털은 나에게 매우 힘들었다.

또한 행정 AD로서 수치와 관련된 숫자적인 업무에서 틀리면 안되는 일들이 많았는데 나는 이부분에 있어서 실수가 잦았다. 이 부분은 나의 불찰로 생각된다. 모욕적이고 굴욕적으로 혼나기도 했고, 혼자 옥상에 올라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혼나는 날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서 어디로든 숨고싶었다. 이후에 바뀌었던 부장님은 나에게 크리에이터적인 면모가 있다며 이런일 말고 크리에이터로서 일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씀해주셨다. 이 부장님을 정말 죽도록 미워했는데 이 말씀 한마디는 참 감사했다.

한가지 더 힘들었던 점은 직장 동료였다. 직장 동료는 나와 일주일 차이로 입사한 사람이었는데 나와 여러가지 살아온 환경이 다른듯해보이는 사람이었다. 원래는 나와 비슷한 4년제의 나이가 어린 사람도 있었지만 이 사람을 뽑게된 이유는 전문대 출신이었지만 나와 동갑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전 부장님에게 들었다. 하지만 동갑내기여서 힘든점들이 많았다. 말하면서 느껴지는 은근한 무시와 이 사람 특유의 허세와 허풍이 좀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서 선을 두고 거리를 두려 했는데 그 이후로 나의 머리를 볼펜으로 툭툭 친다던가 하는 괴롭힘이 있었다.

여기에서 내 실수가 시작된다. 나는 이러한 직장내 괴롭힘에 대하여 바뀐 부장님에게 털어놔야 했으나 그 부장님은 확고히도 내 직장동료 편으로 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수치 입력 등 숫자적인 업무에서 실수가 잦았으나 그 동료는 실수가 적었다. 그래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이과정에서 하지말아야할 실수를 하게 되는데 바로 직장상사에게 나의 가정사를 털어놓은 것이다.

나의 직장상사는 나와 같은 크리스천으로 보였고, 나는 나의 살아온 이야기 어머니가 돌아가신 가정환경과 힘들었던 이야기 이 직장에서 버티고 싶은 이유등에 대해서 모조리 털어놨던것 같다. 물론 충분한 위로도 있었고, 나를 혼낸 다음에는 부장님은 따로 불러서 나를 격려해주시기도 했다. 세상일이 그렇게 팍팍치만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업무적으로 혼나는 순간에도 내가 털어놓은 이야기로 외적으로 굴욕을 더 받는것이 아닌가 하는 피해망상에 시달려야만했고, 또한 퇴사후에도 환청이 들리는 질병을 겪게된다.

그 당시 그 직장내 환경은 엉망진창이었다. 부장님 또한 바뀌는 과정에 있었고 그 과정에서 부장님끼리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않으며 전 부장님은 출근을 하지 않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런 과정에서 행정AD인 나의 처신도 매우 어렵고 난처했다. 더군다나 이곳은 나의 첫직장이었다.

나는 업무적으로 널널한 시간에는 청소까지 하며 이 직장에서 잘보이고 싶었고 나의 노동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고 그렇게라도 소위말하는 '임금 값'을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행동이었던것 같다. 필요 외적으로 청소를 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어느순간부터는 그 청소일과 허드렛일이 내가 해야만 하는 당연한 일이 되고 말았다.

이 상황까지 이르자 나는 나의 아버지를 떠올리게된다. 직장생활을 못하겠다며 자영업을 하신 아버지의 땀이 떠올라 회사생활이 더욱 힘들었다. 아버지는 하루하루 성실한 땀으로 생활하시는 분이었는데, 납품을 가면서도 무거운 물품을 나르면서도 힘들어하시던 모습이 나의 마음을 옭죄었다. 서류로 이루어지고 체계로 이루어진 회사 생활 속에서 나는 청소를 하며 나의 아버지를 떠올렸고 이렇게만이라도 회사생활에서 살아남아야하는 내가 굴욕적으로 느껴졌다. 드라마 미생에서 안영이는 상사들의 허드렛일과 청소를 하며 사내 왕따를 견뎌내지만 나에게는 그러한 맷집이 없었나보다. 결국 첫직장생활 6개월의 생활을 마지막으로 나는 회사에 퇴사를 희망한다고 통보하게된다.

처음 이 직장을 구했을 때는 직장생활을 하며 정규직 시험을 준비하며 나에게 맞는 임금에 맞게 생활하며 준비할 상황을 꿈꿨다. 하지만 직장동료의 시기와 질투, 회사 내부의 텃세와 부장님의 괴롭힘, 업무 외적으로 시달림으로인해 나는 모든 추억을 접어두고 퇴사하게 되었다.

퇴사 날은 그동안 수고했다는 위로의 카톡이 몇통 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의 모든 인간관계를 다 접어두고 싶었다. 그 마음은 감사했지만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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