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의 일본 오사카 워킹홀리데이
막내동생이 일본 오사카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사실 막내동생이 떠나기 전 나는 워킹홀리데이에 대해 반대했다. 물론 나도 대학 졸업생 시절,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가고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가서 사서 선생님이 되어 캐나다를 누비고 싶었고, 퀘백 거주를 위해 프랑스어도 조금 배울까 생각을 했었다. 당시 교양수업 영어를 담당하시던 금발의 파란눈의 나이드신 캐나다인 외국인 교수님 역할도 컸었다.
하지만 취업과 결혼 등 여러가지 이유로 나는 워킹홀리데이를 포기했었다. 대학교 신입생 때 공부를 하지 않고 방황을 했었고 (대외활동을 많이 했었다) 성적이 좋지않아 재입학을 했었다. 그리고 교우관계 문제로 휴학을 했었기에 (휴학을 하고는 유럽여행을 다녀왔었다. 선교와 여행 둘 다) 졸업이 늦어졌었다. 대학 시절을 6년이나 보냈다.
나의 경우 졸업을 앞두고 바로 정규직으로 취업하지 못하였고, 파견직 직장과 계약직 직장을 헤매며 또 방황을 했었다. 나도 스트레이트 졸업과 정규직 취업을 해내진 못해서 동생에게 할 말은 없었지만 내가 방황을 해서인지 동생에게만은 정석대로 흘러가길 권유했었다.
막내동생은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을 했다. 혼자 일어나서 학교를 가고 학교 안에서 입시 전쟁이라고 불리는 전쟁을 치룰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동생이 고등학교도 중퇴한다는 사실이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동생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집에서 혼자서 독학으로 재미있게 공부를 했고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했다.
검정고시 졸업 후에는 처음에는 애견학과 전문대를 가더니 이내 실내디자인과의 서울 소재 전문대학으로 편입에 성공했다. 4년제 대학교 편입도 도전하였지만 잘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대학교에서도 또래 친구들과의 나이차이, 대학교 수업방식에 대한 불만 등에 의해 이내 자퇴했다. 요즘은 사이버대학교에서 심리학 강의를 공부중이라고 했다.
그간 동생과 소통이 부재했었다. 그러던 중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 일본 올래?"
최근에 내가 2년 전 한달 정도 투병을 하면서 썼던 일기 기록을 읽어봤다. 그 중 버킷리스트에 이모와 막내동생과 함께 일본 여행가기가 있었다. 그 꿈이 이루어지던 순간이었다. 이모와 함께 일본에서 막내동생을 만나기로 했고 막내가 살고있는 오사카 근처 소도시로 향했다.
워킹홀리데이를 하기 위해서는 면접도 봐야한다고 한다. 막내 동생은 혼자 힘으로 일본어 공부를 하고, 면접도 보고 당당하게 통과해서 워킹홀리데이라는 꿈을 이루었다. 그 모습이 대단했고, 내가 처음 원했던 보수적인 꿈과 다르게 다른 노선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동생이 존경스러웠다.
첫날 도착해서는 일본 친구들과 다같이 만났다. 막내동생을 챙겨주는 일본 친구와 친구 엄마가 있었다. 이모는 도쿄에서 여행가이드로 일을 했었어서 일본어를 잘했다. 나는 일본어에 많이 서툴렀다. 연신 일본 음식이 맛있다고 칭찬하며 첫째날을 보냈다. 일본 친구 엄마가 허리가 부러져 거동이 불편한 이모 대신 캐리어 짐을 자전거로 들고 막내동생 집으로 같이 가주었다.
둘째날은 일본 오사카 도톤보리로 향했다. 나는 대학 재학중에 일본 오사카에 여행을 한번 온적이 있었다. 두번째는 도쿄로 다녀와보고 싶었는데 동생을 보러 향한 오사카 여행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모가 표를 끊어줘서 도톤보리 강 유람선도 탔다. 물론 나는 약 부작용으로 계속 졸았지만 바람이 시원하고 풍경이 도시적이었다.
오사카를 구경하고 나서 저녁이 되자 우메다 공중정원을 보러가기로 했다. 우메다 공중정원에서는 셋이 나란히 야경을 보고 의자에 앉았다. 이모는 "어린시절 네가 뉴욕을 꼭 구경시켜준다고 했는데 그 꿈을 대신 이뤄줬네."라고 이야기 했다. 이모는 암투병하던 엄마를 대신해 우리를 거의 키워주셨다. 이모가 그런 이야기를 하자 이 순간이 매우 뭉클하게 느껴졌다. 우리에게도 이런 순간이 오는구나. 감사했다.
셋째날은 막내동생과 나 둘이서 교토로 가서 기모노를 입고 곳곳을 누볐다. 허리가 아픈 이모는 같이 갈 수 없어서 둘이서 이곳저곳을 거닐었던것 같다. 사진도 많이 찍고 교토를 눈에 담았다. 그리고 야끼니꾸 집에 가서 야끼니꾸도 마음껏 먹었다.
부족한 일본어 실력과 기대도 않고 떠났던 오사카 여행이었지만 동생덕분에 행복하게 보냈다. 어느 한순간만으로도 그 순간 모두가 뭉클하게 전부 기억되는 것 같다. 이모의 우메다 공중정원에서 했던 말이 우리에게는 그러했다. 나의 어린시절을 통과해 어른이 되어버린 순간을 마주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래도 우리 잘 컸어.'하며 그 모든 순간을 토닥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워킹홀리데이러가 되어버린 막내동생과의 추억 한켠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