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던 지난날5

오빠의 꿈

by 꿈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요?”



18살의 그는 울부짖었다. 와장창. 유리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의 오른 쪽 주먹에서 피가 흐르고 발 밑으로 깨진 유리 파편들이 튀었다. 공부는 둘째치고 학교를 제대로 안가는 그에게 엄마는 욕설 섞인 거친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말들에 18살 사춘기 아들은 감정을 참지 못했다. 안방에 있는 5단 서랍장 맨 위 칸에 있던 유리창을 주먹으로 쳤다. 방에 있던 동생들은 창이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울면서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난 동생들을 챙겼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엄마는 말문이 막혔다. 엄마는 손발을 떨고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다 멈추고 손으로 가슴을 쳤다. 집은 난장판이 되었다. 엄마가 그의 방황을 탓했고, 그는 돈 없는 부모를 탓했다. 그는 꿈을 잃었다고 했다. 그는 울면서 뛰쳐나갔다. 엄마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난 엄마를 일으켜 마루에 앉혔다. 그리고, 깨진 유리로 난장판이 된 방을 쓸었다.



그는 5남매의 장남이었다. 막내 동생이 태어났을 때 그는 중학교1학년 이었다. 그는 인물이 좋았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하얀 피부는 시골에서 눈에 띄었다. 시골 중학교에서 꽤 많은 팬레터를 받아올 정도였다. 그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필드하키를 했었다. 공부는 보통이었지만 운동신경이 좋았다. 필드하키 선생님은 그에게 주장을 시켰다. 실력도 좋았고 리더쉽도 있었다. 경기에 나가서 좋은 성적도 받아왔다. 그는 여러 고등학교에서 특기생 입학을 추천받았다. 그는 특기생으로 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엄마는 돈이 없었다. 운동을 시킬 돈이 없었다. 그리고 훈련 중 받는 체벌로 시퍼래진 그의 허벅지와 엉덩이를 보는 게 무섭다고 했다. 그는 그런 엄마에게 허락해달라고 울며 빌었다. 보내만 달라고 했었다. 열심히 한다고.




결국 그는 운동의 꿈을 포기하고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 그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학교에 가는 날 보다 안가는 날이 많았다. 공부를 안한다고 혼내는 엄마에게 공부를 한들 뭐가 바뀌겠냐고 물었다. 그는 소리치고 비꼬지 않는 날은 멍했다. 그 옆에 앉아서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 사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난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철없고 한심해 보였다. 난 그에게 다른 꿈을 꿔보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 꿈같은 소리를 한다며 비웃었다. 공부 대신 운동을 했던 그에게 다시 펜을 들고 공부를 하라는 건 애시당초 무리였다.




그는 점점 집에 안들어오는 날이 잦아졌다. 매일 밤 엄마는 그를 찾으러 나갔다. 오락실, 당구장, 영택이네, 군수네... 그를 찾을 때까지 택시를 타고 온 동네를 돌았다. 어느 날 나는 엄마를 따라 그를 찾으러 갔다. 밤10시가 넘었었다. 공기가 서늘했다. 가을이었다. 영택이네 집에 있을 거라며 엄마는 택시를 탔다. 그 집에 도착하자 엄마는 원래 알던 집 인양 문간방 문을 열었다. 거기엔 그와 그의 친구들 5-6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의 친구들은 쭈뼛거리며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얼굴이 시뻘갰다. 몸은 축쳐져서 앉아서도 비틀거렸다. 한 손엔 술잔을 다른 한 손엔 담배를 물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는 엄마의 눈엔 눈물이 흘렀다.




“가자.”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왜 오셨어요? 가세요.”




그는 힘들다고 떼쓰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좀 내버려 두라고 고집피우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따지고 싶었다. 엄마 마음도 모르냐고, 그만 정신 좀 차리라고. 철 좀들라며 한 대 패주고도 싶었다. 한편으로는 흐느끼고 있는 그가 안쓰러웠다. 목표를 잃은 18살 남자아이는 목적지 잃은 배처럼 몸도 생각도 갈지자였다. 모든 게 어쩌라고였다. 이제 뭘 하며 살아가야 하냐고 물었다. 본인은 실패자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유리창이 깨졌던 날로 부터 35년이 지났다. 그동안 그의 인생은 평탄치 못했다. 그는 방황하는 시간이 길었다. 긴 시간 동안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런 그를 보며 엄마는 미안해했다. 그때 무리를 해서라도 운동을 시켰어야 했다며 후회했다. 그는 26살의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어린 아들을 데리고 3년만에 이혼을 했다. 하는 일은 족족 풀리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당시 하키를 계속했던 친구들 중 누가 어느 실업팀에 갔다더라, 누구는 체육선생님이 됐다더라 하는 소식을 듣는 날이면 못 마시는 술을 마시곤 했다. 그래도 그날 처럼 가난한 엄마를 원망하는 말은 하지않았다.




그날의 그 말은 엄마의 가슴에 평생 대못으로 박혔다. 그는 엄마가 그 때의 일을 말 할 때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잘못했다는 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 있기를 불편해 했다. 엄마는 본인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다섯 아이 밥 먹이는 것 조차 힘들었다고 했다. 본인이라고 안 보내고 싶었겠냐며 못 보내는 엄마 마음은 오죽했겠냐고 했다. 부모가 되어 보라고 그래야 엄마 마음을 알 거라고 했다. 부모가 된 그와 나는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엄마에 대해 이야기했다. 엄마가 많이 속상했을 거라며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이제 꿈이 뭐냐고 물었다.


“꿈? 잘 나이 들어 가는 거?”


그가 웃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집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