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30년 전통 ***오리 집입니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세입자전화의 컬러링 소리다. 세입자는 식당을 한다고 했다. 컬러링 광고멘트를 들으면서 식당 메뉴가 오리임을 알았다. 2년 전에 들었던 멘트를 다시 들었다. 광고멘트가 3번째로 넘어가는 한참의 신호가 있고 난 뒤 남자세입자가 전화를 받았다. 식당일로 바쁠 시간을 피해서 한다고 했는데 ‘바쁜가?’라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남자의 바쁜 인사다.
“아, 네. 잘 지내셨어요? 다름이 아니라, 만기가 돌아와서요. 혹시 이사계획이 있으실까요?”
만기 후의 계획을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세입자는 큰 한숨을 쉰 뒤 답을 했다.
“휴우. 이사는 아닌데 아시잖아요. 요즘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요. 살고있는 건지, 버티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 힘드시죠? 이게 참,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어려운데요. 저희는 현 보증금에서 5%만 증액해서 재계약했으면 합니다.”
세입자들과의 통화는 언제나 어렵다. 세입자 집의 무언가를 고쳐달라는 전화를 받기도 어렵지만, 내가 무언가를 요구하는 전화를 하는 건 더 어렵다. 3월이 만기인데 세입자가 이사를 한다고 하면 새로운 세입자를 맞춰야 해서 기간을 두고 미리 확인 전화를 했다. 세입자의 무거운 목소리는 코로나 19로 어려워진 상황을 그대로 전달해줬다.
서울에 있는 아직 10년이 채 안 된 25평의 준 신축 빌라였다. 4년 전에 가진 돈으로 서울의 집 중 살 수 있는 것을 찾다가 지어진 지 2년 된 거의 신축급 빌라를 전세를 안고 샀었다. 공부가 덜 된 상태에서 2년마다 오르는 전세가를 기대했던 나는 2년 전에 역전세를 맞아야 했었다. 주변으로 입주 물량이 몰리면서 전세가가 떨어졌다.
“우리가 이사할 것도 아니고, 오래 살려고 왔던 거니까 역전세는 묻고 갑시다. 뭐 내주려고 하지 말고, 금액 그대로 연장하지요.”
세입자들마다 역전세로 집이 깡통 되는 거 아니냐고 떨어진 전세가 만큼 돌려달라고들 아우성치던 시기였다. 대출로 이리 막고, 저리 막아가며 겨우겨우 숨을 쉬던 시기에 세입자는 서로 배려하면서 살자며 돌려받는 거 없이 그대로 연장하자고 했었다. 정말 감사했다.
살고 있는 건지 버티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지금 세입자가 하고 있는 말이 그때의 내 모습이었다. '노후를 위해 집으로 저축하라'는 어느 전문가의 책 제목을 실행 중이었던 나는 늘어난 채수만큼 돌아오는 역전세 매물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왜 하는 건지는 둘째였고, 하루하루를 넘겨 살기 바빴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었고, 어떻게든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견디던 시기였다. 그런 와중에 세입자의 배려는 고비를 넘기게 하는 숨통이었다. 내가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해줬다. 세입자의 배려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2년이 지났다.
이번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현재의 보증금보다 한참을 더 올려야 하는 시세다. 5%를 올린다고 해도 시세의 반값이다. 극심한 전세난은 전세가뿐만 아니라 집값까지 밀어 올리고 있었다.
“집값도 집값인데, 당장 생계가 문제네요. 오리식당이 매년 겨울이면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타격을 받는데, 올해는 코로나까지 겹치다 보니 더 힘드네요.”
세입자에게는 아이가 둘 있다. 4년 전 처음 계약을 할 때 초등생이었던 아이들은 이제 중*고등학생이 되었다. 섣불리 힘내라는 말을 전할 수 없었다. 섣불리 괜찮아질 거라는 위로도 할 수 없었다.
“아이들 학원비도 걱정이고, 장사가 너무 안돼서 당장 가게 월세도 걱정입니다. 5%라고 했죠?”
이렇게 묻는 세입자에게 답을 못하고 있었다. 우린 한참을 말없이 전화기만 들고 있었다. 서로의 숨소리조차 멈춘 그 적막은 마음을 많이 불편하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만의 욕심만을 채우는 건가 하는 되물음을 하게 했다. 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오른쪽 손을 책상에 대고 집게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생각을 했다. 어떻게하지?
코로나 19로 인해 여느 식당들처럼 손님이 많이 줄었을 것이다. 어쩌다 오는 한 팀의 손님이 위로되고, 근근이 버티게 하는 이유가 되는 현재 상황이 세입자의 하루들을 채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 상황을 세입자는 그 ‘살고있는 건지 버티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라는 말로 전했을 것이다. 이 긴 침묵은 남자의 슬픔을, 가장의 걱정과 책임의 무게감을 생각하게 했다. 한편으로 이제껏 몸이 힘든 것이 마음이 힘든 것보다 낫다는 생각으로 선택의 상황에서 결정을 해왔던 내가 이번에 이 세입자한테 보증금을 올려 받게 되면 다음 2년 동안 마음에 계속 부대낌을 갖고 살 것 같았다.
눈을 떴다.
내 컴퓨터 옆으로 놓인 우리 아이들의 사진이 보였다. 난 숨을 고르고 입을 뗐다.
“선생님, 이번에는 제가 배려를 할게요. 올리는 거 없이 2년 더 연장하지요.”
다시 1분여의 시간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세입자의 툭 터뜨린 답이 들렸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남자의 한숨과 뒤섞인 흐느낌이 들렸다.
눈이 뜨거워졌다. 난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12월이다.
거리는 겨울이란 계절과 맞물리면서 더 추워졌다. 자영업의 어려움이 날로 더 해가고 있다. 잘 나가던 가게들도 ‘임대문의’ 쪽지가 붙여지는 곳들이 많아졌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 19가 심해져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었다. 식당들은 저녁 9시까지만 영업을 하게 되었고, 그나마 있던 손님마저 많이 줄었다. 힘든 시기다. 모두가 버티어 가는 시기다. 견디는 중이다. 한 장의 달력이 넘어가고 나면 지금보다는 불안함이 덜해진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코로나도, 살아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