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사장님
토요일 오후.
청주에서 일을 마치고 올라가는 중이었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6건의 계약은 5시 30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진이 빠질 대로 빠진 상태로 밀리는 고속도로에서 가다 서기를 하는 중에 가족 대화방에선 저녁을 뭘 먹을지에 관한 이야기로 한창이었다. 아르바이트하러 간 큰딸, 친구를 만나러 간 작은 딸, 친구들과 놀러나 간 아들, 그리고 오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집에서 쉬고 있는 남편까지 내가 몇 시쯤 도착하는지를 물었다. 내비게이션에 찍힌 도착 예정 시간은 8시라고 알려줬다.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국가대표'라는 경희대앞에 있는 식당에 가기로 했다.
집 앞 주차장에 도착해서 남편에게 내려오라고 전화를 했다. 차 안은 배고프다는 아이들의 대화로 시끄러웠다. 우린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은 만원이었다. 한 달 전쯤에 왔을 때만 해도 식당 사장은 울상이었다. 저녁 피크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식구 포함해서 두 테이블이 전부라며 버티기가 힘들다고 말했었다.
“이 볶음밥을 해주고 집에 가면 팔목이 아파서 파스를 여러 개 붙이고 자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파스를 마음에 붙여야 할 판이라니까요. 답답해서….”
사장이 나와서 주차를 도와줬다. 그리고 미안한 듯 말을 했다.
“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한 팀이 곧 나가거든요. 바로 치우고 세팅해 드릴게요.”
식당 제한시간을 풀어준다는 뉴스를 보긴 한 것 같은데 이렇게 상황이 빠르게 바뀔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이 식당뿐 아니라 옆의 술집들도, 위의 보이는 노래방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그냥 거리 자체에 사람이 많았다. 토요일이 토요일 같았다.
우린 사장이 안내하는 자리에 앉았다. 가는 동안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를 조심조심 가야 했다. 사람이 꽉 찬 식당은 비좁았다. 지난달엔 아무 자리에 편하게 앉을 수 있었는데 말이다. 식당이 시끄러웠다. 삼겹살 굽는 소리, 소주 따르는 소리, 밥 볶는 소리.
사장은 밑반찬을 테이블에 놓으며 안부를 물었다. 중개를 처음 시작할 때쯤부터 알게 된 사장이니 인연이 짧지는 않다. 늘 서로 응원하고 덕담을 해주는 나이가 같은 친구 같은 사장이었다.
"사장님, 이제 진짜 국가대표같네요. 이게 국가대표지! 지난달하고는 완전 다른데요."
“이제 좀 낫죠. 학기 시작하고 모임들도 많고, 손목에 파스 좀 붙일 것 같네요. 그래도 워낙 마이너스 시간이 길어서 원상복구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 해요. ”
“ 늘 응원합니다. 국가대표 화이팅! 우리 생대패삼겹살 3인분하고, 항정살 2인분 주세요.”
바쁜 사장을 보니 지쳤던 기분에 생기가 돌았다.
커다란 네모 돌판이 기울어져 불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 불에 달궈진 돌판을 돼지 지방으로 닦은 후 그 위에 생고기와 새송이버섯이 올려지고 그 고기기름에 볶아질 김치와 파채, 콩나물이 그 아래 쪽에 올려졌다. 그리고 이 집에서만 서비스로 주는 대하까지 올려지면서 돌판 위 세팅이 끝났다. 사장이 그것들을 하나씩 불판에 올리는 집게에 우리 다섯 식구의 눈이 따라다녔다.
“딸들, 학교 잘 다니고 있어요? 재밌죠?”
사장은 고기를 구우면서 이번에 대학에 들어간 딸들의 안부를 물었다.
“아직 비대면이라서요.”
“그게 얼른 풀려야 할 텐데. 그래야, 대학교가 재미있지. 우리처럼 학교 앞에서 하는 식당들도 좀 살고.”
경희대학교 앞에 있는 이 식당은 비대면 수업의 여파가 컸었다. 그런데도 고기 맛이 좋다는 입소문으로 학교 손님만큼 일반 손님도 많다. 그날도 일반회사 사람들, 가족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지지직 착’, 고기가 구워지는 소리에 침이 고였다. 고기가 익혀지는 동안 옆에 있는 동치미 국물만 계속 떠먹었다.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점심도 꼬마김밥 세 줄을 어디로 넣는지 모르게 먹고 청주로 출발을 했던 터라 허기가 졌었다.
사장은 다른 테이블로 가서 밥을 볶았고, 그 사이 고기는 남편이 구웠다. 얇은 생대패삼겹살은 빨리 구워져서 좋았다. 구워지는 대로 입으로 넣느라 우리의 손은 바빠졌다. 어느새 5인분이 금방 없어질 때쯤 2인분의 생대패삼겹살을 더 시켰다. 평소 먹는 양이 적은 딸들도 이 집에 오면 꽤 많이 먹는다. 고기와 볶은 김치와 부추 무침을 함께 싸서 먹는 맛은 배부른 데도 계속 먹게 했다.
두 번째 시킨 고기를 돌판에 올려주며 사장이 말했다.
“이 대하를 없앨까 여러 번 고민했었어요. 장사는 안 되는데 이 서비스를 계속 줘야 하나 하고요. 그래도 처음의 마음 그대로 원칙을 지켰더니 좋은 날이 또 오려나 보네요.”
사장의 고민은 모든 자영업자의 고민이 아니었을까? 줄일 수 있는 비용이 직원밖에 없는 상황에서 서비스에 대한 고민을 어찌 안 할 수 있을까? 휴 폐업이 늘어가고, 그냥 하루 버티기도 힘든 상황에서 사장이 대단해 보였다. 고기를 굽는 사장의 손목엔 파스가 붙여져 있었다. 그 사이 고기 기름이 튀어서 우린 모두 몸을 뒤로 젖혔다. 사장은 피하지않고 고기를 구웠고, 그러고 보니 손엔 기름에 덴 자국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아이들은 그사이 고기와 함께 먹을 냉면을 시켜 구워진 고기를 냉면에 돌돌 말아 먹었다. 시원한 냉면과 고기의 고소한 맛의 어우러짐이 끝내준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남은 삼겹살과 김치, 파채 등을 섞어서 볶아주는 밥 위에 김과 깨를 뿌려준 볶음밥은 배가부른데도 뜨거운걸 호호하며 먹게 했다. 아이들과 함께 배를 두드리며 더 못 먹겠다며 고개를 흔들고 보니 돌판 위엔 밥풀 몇 개만 남아있었다.
“오늘 손님 많은 거 보고 가니 좋네요. 영양제 잘 챙겨 먹어요. 돈 더 많이 벌어야 하니까.”
“감사합니다. 딸들, 다음에 오면 사이다 서비스! 아니, 소주 줘야 하나?”
우린 술은 줘도 못 먹는다며 웃으며 식당을 나왔다.
딸들은 자기들만의 후식을 사서 들어온다고 하고, 난 좀 걷고 싶었다. 아들과 남편만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난 영통 시내 쪽으로 걸었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간판들의 불이야 늘 켜져 있었지만, 코로나시기 동안은 휑하니 허전한 거리였다. 생기가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는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왁자지껄 사람들의 소리가 요란했다. 가게마다 사람들이 많았고, 걷는 동안 사람들의 어깨가 부딪혔다. 코로나를 곁에 둔 새로운 코로나 세상이 시작되었다. 또다른 '국가대표'사장들도 가슴에 붙였던 파스들을 떼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