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부부의 일상

결혼반지

by 꿈부


“종로 한 번 가자. 결혼 반지하러.”


남편이 말했다. 10월 결혼 기념일이 한달 남았다며 그 전에 반지를 맞춰야 한다며 진지했다.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던 난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인제 와서 무슨 결혼반지냐고 했다. 돈도 없다고 했다. 별일이란 듯 다시 책을 읽고 있는데 남편이 돈 봉투를 들고 나왔다.


“돈 있어. 500만 원.”


난 놀란 눈으로 무슨 돈이냐고 물었다. 남편은 비상금이라고 했다. 월급 외로 받는 수당들을 17년간 조금씩 모아온 돈이라고 했다. 결혼반지만을 목표로 말이다. 돈 봉투가 두꺼워 보였다. 왜 그런가 봤더니 봉투 안에는 1000원, 5000원, 1만원, 5만원 권 지폐들이 섞여 있었다. 현금으로 받는 수당을 그대로 봉투에 넣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그 돈을 다시 봤다. 코 끝이 시큰해졌다.




중소병원 물리치료사였던 남편의 20년 전 첫 월급은 120만 원이었다. 그렇다 보니 생활비는 모자랐고 그래서 야간병원 아르바이트까지 했었다. 그 후로 오른 월급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걸 아는 난 이 500만 원의 크기가 그냥 숫자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애들 학원비를 낼 때, 갑자기 양쪽 어른들 병원비가 들어갈 때, 양쪽의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마다 다툼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난 남편의 작은 월급을 탓했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 서로에게 짜증을 냈던 이유 모두가 돈이었다, 그런 여러 장면이 스치면서 얼마나 그걸 내놓고 싶었을까? 그걸 어떻게 참았을까? 남편이 미련하다 싶으면서 고마웠다. 돈 봉투를 흔들며 웃고 있는 남편을 봤다.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결혼하고 5년 쯤 지났을 때 내 결혼반지를 잃어버렸다. 이후로 우린 결혼반지를 끼지 않았다. 남편의 반지만 보석함에 보관한 채 잊고 있었다. 다이아몬드가 위로 올라와 있던 모양이었다. 결혼할 때 시어머니를 따라 종로 보석 거리에 가서 맞췄다. 어떤 게 좋은지도 모르고 시어머니가 하란 대로 했었다. 그러면서 시어머니는 형님하고는 다른 등급이라는 말씀을 굳이 하셨다.


“네 남편이 한의사도 아니고, 네가 네 형님처럼 혼수를 해오는 것도 아니니 같을 수는 없지.”


명치 끝이 아렸다. 화도 났었다. 27살 어렸던 난 아무말도 못했었다. 그래서였는지 잃어버린 반지가 아깝다, 꼭 찾아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덜 했다. 그냥 덤덤했었다. 할 수 없지 했었다. 그런데 남편은 짝 잃은 결혼반지가 마음에 걸렸었나 보다.




평일 오후.


우린 종로로 나갔다. 남편이 퇴사하니 이런 시간에 서울 나들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9월이었다. 날이 좋았다. 남편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많은 보석가게가 길옆으로 줄지어 있었다. 23년 전에 시어머니의 뒤를 졸졸 따라갔던 그 가게가 어디였는지 묻자 남편은 아마도 저 안쪽 어디였을 거라며 목을 쭉 빼며 손을 뻗었다. 난 그 손을 따라가 봤지만, 길치인 난 그곳이 그곳 같았다. 지인이 반지 세팅을 잘한다는 집을 소개해줬다. 옛 피카드리 극장 건물 1층에 있는 집이라고 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칸마다 숫자가 걸렸고, 그 숫자마다 다른 가게들이 있었다. 그 숫자들을 쫓아 소개해 준 집을 찾아갔다. 소개해준 분의 이름을 말하자 잘 안다며 젊은 여사장이 웃었다.


“뭐 하실 거에요?”


여사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이 답했다.


“결혼반지요. 이 사람이 결혼반지를 잃어버렸거든요. 제 것은 이거로 해주시고, 이 사람 것은 제일 좋은 것으로 해주세요.”


나와 여사장은 남편을 봤다. 이 사람이 이렇게 말이 많고 빠른 사람이었나 하고 빤히 쳐다보는데 남편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남편은 본인의 반지와 보증서를 꺼냈다. 여사장은 빛바랜 보증서를 보고 진짜 오래된 반지라고 했다. 참 꼼꼼하다 싶었다. 남편이 든든하다는 생각을 할 때쯤 남편이 손을 잡아줬다.




여사장은 여러 디자인의 반지들을 내놨다. 반짝이는 반지들이 비슷비슷한 모양으로 우리 앞에 놓였다. 다이아몬드가 위로 올라온 것은 제외하고, 안으로 박혀있는 것에서 단아한 디자인의 것 두세 개를 추려서 사진을 찍었다. 딸들에게 골라봐 달라고 가족 대화방에 올렸다. 딸들은 다 예쁘다며 그중 하나를 골라줬다.


그리고 문자를 남겼다.


‘축하해요. 예쁘게 하세요.’


그 문자를 보며 우린 같이 미소를 지었다. 디자인을 골랐다. 다이아몬드를 고르는데 남편이 다시 다짐하듯 여사장에게 말을 했다.


“제일 좋은 것으로요.”


여사장이 크게 웃었다. 알았다며 계산기를 두드렸다. 얼마인가 물었더니 500만 원이 조금 넘었다. 우린 500만원이란 말에 또 웃었다.


“뒷자리는 빼주시죠? 이 분이 모아온 노력을 생각해 주세요.”


난 여사장에게 이 반지를 하기 위해 남편이 500만 원을 17년 동안 모아온 거란 이야기를 해줬다. 남편은 헛기침을 했다. 여사장의 눈이 커졌다. 자랑하고 싶어서 말했는데 말하고나니 얼굴이 더워졌다.


“언제까지 해드려야 할까요?


10월 결혼기념일 전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올 해 우린 결혼 22주년이 되나 보다. 바쁘게 살았다. 정신없이 살았다. 서로의 얼굴을 자세히 본 날이 없었다. 반지를 맞추고 나와서 인사동을 걸었다. 길 옆에 있는 전통찻집에 들렀다. 우린 대추차를 시켰다. 그리고 남편의 얼굴을 찬찬히 봤다. 머리숱이 많이 줄었다. 흰머리는 늘었다. 남편도 나이를 먹었구나 싶었다. 남편의 넓어진 이마가 카페 조명에 반짝였다. 내가 이마가 반짝인다며 웃자 남편은 손으로 이마를 가렸다. 남편에게 말했다.


”결혼반지, 고마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코로나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