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마지막 출근일
그의 한숨 소리에 눈을 떴다. 몇 시지? 조용히 핸드폰을 봤다. 6시가 채 안 되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 그는 왼팔을 귀에 대고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난 다시 고개를 돌리고 그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돌아눕는가 싶더니 이내 바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TV 켜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그의 마지막 출근일이다. 늘 8시가 되어야 겨우겨우 눈을 뜨던 그는 뒤숭숭했나 보다. 그는 어젯밤에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었다. 잠을 자기는 한 건가? 난 일어나 온기가 남은 그의 베개를 쓰다듬었다. 베게 한 귀퉁이가 젖어 있었다. 난 한번도 그가 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얼마나 속상했던 걸까?
그는 작은 종합병원의 물리치료사다. 본인이 원해서 선택한 직업은 아니었다. 그는 달리하고자 하는 일이 없었다. 결혼전에 1년정도 회사를 다녔지만, 경쟁이 치열한 일반 회사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두었다. 그런 그에게 물리치료사를 권한 건 그의 형이었다. 결혼하고 다시 전문대학교를 진학했었다. 그래서 난 3년동안 외벌이로 뒷바리지를 해야했다. 그는 남보다 직장생활이 늦어졌지만 다행히 적응을 잘했다.
그는 둘째가 생길 때쯤 취업을 했다. 취업의 조건은 퇴근 시간 6시가 첫 번째 조건이었다. 그는 급여보다 육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평택이 직장이었던 남편은 나의 직장이 안성에서 천안으로, 천안에서 수원으로 옮겨질 때도 본인의 이직은 생각하지 않았다. 십 년 전, 같은 재단의 수원 쪽 병원으로 옮겨올 때까지 먼 거리 출퇴근을 했다. 그렇게 20여 년을 한 직장에서 근무했다. 많지 않은 월급이었다. 그래도 그는 매일 8시면 일어나서 후다닥 씻고 뛰어나갔다.
그는 직장에 관련된 말을 자주 하지 않았다. 부하직원이 환자가 와도 본체만체하고 핸드폰만 본다고, 연차를 상의 없이 먼저 날짜를 잡아놓는다며 얄밉다고 했다. 다른 병원에서는 수당을 주는 비급여항목 치료를 수당 없이 하라고 한다며 속상해하기도 했다. 어쩌다 내가 듣는 말은 이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그들에게 직접 말을 못 했다. 그는 나에게 그들이 잘못했다는 말로 공감해주길 원했다. 하지만 난 그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직접 해결하지 못한다며 그를 탓했다. 그는 서운해하면서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 그는 무뎠다. 별말 없이 속상한 상황들을 넘기곤 했다. 그런 모습이 실속 없고 답답해 보였다. 하지만, 몇 해 전 작은 교통사고로 그가 있는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원 직원들은 그가 자상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세심했다.
몇 주 전의 일이었다. 그는 병원이 물리치료실을 확장하면서 이전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병원은 책임자인 그와 어떤 상의나 언급없이 그의 윗급 직원을 채용했다. 그리고 그 직원을 그와 인사를 시키면서 그제서야 상황 설명을 해줬다. 그날 그는 어깨가 처진 채로 돌아왔다. 사실 나는 그가 쉰 살이 되면서 직장을 다닐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도 그는 60살까지 다닐 수 있을 거라며 느긋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에게 그만둬야하나 하는 고민을 많이 하게 했다.
그는 병원에 큰 애정을 담아 일하진 않았다. 그래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병원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환자들의 운동 치료로 본인의 허리통증을 달고 지냈다. 그럼에도 병원의 이번 처사는 그를 서운하게했다. 그는 어떻게 해야할 지 전전긍긍했다. 적은 월급이지만 아직 돈 들어갈 일이 많은 아이들을 생각했다. 겁이 났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화도 났을 테고. 그는 예민해져 있었다. 평소 같으면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TV를 보거나 아들과 함께 게임을 해주거나 했다. 하지만 그는 말이 없어졌다. 미간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TV를 보다 한숨을 짓곤 했다. 게임이 잘 안 된다는 아들에게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했다.
“지금 꼭 해야 해? 숙제부터 해.”
아들은 놀라서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아들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그가 매일 하던 저녁 설거지도, 쓰레기 분리수거도 잊고 있었다. 며칠 뒤 난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사직서 써. 그만 고민하고.’
그에게 월급을 지키라며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라고 했던 적도 있었다. 적은 월급을 탓하는 말로 상처를 주기도 했고, 변화 없는 그를 재촉하고 원망하기도 했었다.
마침내 그는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오늘이 마지막 출근일이었다. 20년 넘게 근무했던 곳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니 시원섭섭할 것이다. 그만두는 마음이 좋기만 하진 않겠지. 멍하니 TV를 보고 있던 그는 내가 밥하는 사이 창밖을 보고 서 있었다. 어느새 많이 빠진 머리는 검은색 보다 흰색이 많았다. 빛바랜 고무줄 반바지에 소매 없는 티를 입고 서 있는 그의 뒷모습이 후줄근했다. 반바지를 새로 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밥 먹어.”
난 평소보다 여러 반찬을 했다. 미역국과 불고기에 호박전까지 준비했다. 그는 뒤돌아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욕실로 갔다. 걸어가는 그의 표정이 굳어있었다. 평소 같으면 안먹는다고 그에게 뭐라 했을텐데 차마 오늘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출근복으로 갈아입었다. 언제나처럼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오토바이용 잠바를 걸쳤다. 현관에 앉아서 워커를 신고 있는 그의 등이 며칠 새 작아진 듯 했다. 난 뚝뚝하게 한마디 했다.
"잘하고 와. 기죽지 말고.“
그는 미소를 짓는듯 마는듯 하며 뒤돌아봤다. 그리고 늘 하는 출근길 인사로 답했다. 목소리가 무겁다.
“갔다 올게.”
그가 나가고, 현관의 풍경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현관을 보고 있었다.
좀 다정하게 말해줄 걸. 난 미처 해주지 못한 말을 했다.
"남편, 그동안 수고 많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