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

후배의 집

by 꿈부

“누나, 교수 된 것보다 더 좋아요.”

그가 울먹였다. 46살의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을 샀다. 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그에게 생애최초주택구입 대출을 이용하면 집값의 8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으니 집을 사라고 했다. 그는 서울의 낡은 빌라에서 10년이 넘게 살고 있었다. 그 집은 방이 3개로 15평 정도 된다고 했다. 그는 그 집에서 12월이 되기 전에 이사해야 한다고 했다. 집주인이 집을 비워달라고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나이 80의 노부를 모시고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부동산중개를 하는 나에게 집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고, 집을 사라는 나의 말에 그는 가능할지를 물었다. 가지고 있는 보증금에 대출을 이용하면 될 거란 말에 그는 흥분했었다.

가을날 오후 난 그의 집을 알아보러 공도로 내려갔다. 그는 2억 원이 그가 대출을 이용한다 해도 살 수 있는 최대가격이라고 했다. 요즘 집값이 내리는 조정장이라 살 수 있을 거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나름 수도권인 안성 공도에서 2억 원 아래의 25평 아파트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그의 사정을 알기에 웬만하면 수리가 된 집으로 찾으려고 하니 더 어려웠다. 4인 가족이 살기에 조금 더 넓은 구조였으면 해서 복도식보다는 계단식으로 찾았다.

“누나, 그런데 복도식이랑 계단식이 뭐에요?”

구하려는 집의 조건들을 설명하던 난 당황했다. 빌라에만 살았던 그는 복도식과 계단식의 차이를 몰랐다. 방 개수 조건만 맞춰서 집을 구했었다는 그에게 설명을 해줬다. 그가 그런 것도 모르고 살았다며 씁쓸해했다.





그는 대학원 후배였다. 직장을 다니다 다시 석사과정에 입학했을 때 그를 처음 봤다. 그는 처음 보는 나에게 ‘누나’라는 호칭을 어렵지 않게 했었다. 그때의 호칭은 여태 이어졌고 이 나이에 친동생이 아닌 누군가에게 ‘누나’라는 호칭을 듣게 하는 남자 후배 중 한 명이었다. 그는 180cm가 넘는 큰 키에 마른 체형으로 까만 얼굴이었다. 그는 담배를 자주 피웠다. 그는 무엇보다 공부를 좋아했다. 책을 보고 실험을 하고 관련 논문을 찾아보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그는 집안 사정이 어려웠다. 집에 가는 버스비가 아까워서 실험실에서 먹고 자며 생활했었다. 그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공부 외에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컴퓨터 조립을 해주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인터넷광고를 해주는 일했었다. 음식점이나 과외 아르바이트들은 늘 하는 일들이었다. 새벽 우유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와서 현미경에 눈을 댄 채 잠들어 있던 나를 깨우며 그는 말했었다.

“누나, 공부만 하고 사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건가?”




석사를 마치고 내가 다른 곳에 취업하는 사이 그는 실험실에 남아서 연구생을 하면서 급여를 받았다. 교수님의 여러 연구 프로젝트들을 맡아서 실험했었다. 그러다 다시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연구 프로젝트 관련 계획서를 만들고, 프로젝트에 관련한 실험하고, 논문을 쓰면서 그가 하고자 하는 연구들을 해갔다. 박사학위를 끝내고 여러 학교에 교수지원을 하거나 연구단체에 지원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결혼했고 그의 경제 상황은 더 어려워졌었다. 그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혼인신고만 했다며 얼른 돈 벌어서 아내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혀주겠다고 했었다. 그의 아내는 수줍음이 많고 조용했었다. 20대 초반의 앳된 얼굴로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테이블 끝자리에 앉아서 말없이 그를 바라보던 모습을 두 세 번 봤던 듯하다. 그의 아내는 첫 아이를 낳으면서 우울증으로 고생한다고 했었다. 그러다 둘째를 낳자마자 잃으면서 병은 더 심해졌고, 결국 셋째를 낳고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그는 그게 뭐든 혼자 삭혔다. 힘들다 싶은 일들을 다 치르고 나서야 말을 하곤 했었다. 사업을 하다 어려워진 형의 빚을 떠안게 되었다는 일도,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일도 둘째 아이를 잃었던 일도 그랬었다. 마음을 다 정리하고 난 후에야 무표정한 얼굴로 덤덤하게 별일 아닌 듯 말을 했었다. 먼 곳을 바라보는 그를 보며 내가 더 울고 소리쳤던 날들이 여럿이었다. 세상이 참 야속하다 싶었다. 가난한 것도 버거운데 웬 짐을 자꾸 얹어 주는가 싶었다. 그의 상황이 나의 상황과 겹치며 화가 더 크게 치밀었었다.




난 월급쟁이로 여유롭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간간이 아이들의 옷값과 치킨값을 보내줬다. 중개업을 하면서 3만 원이면 할 수 있는 컴퓨터 수리를 그를 불러서 30만 원을 주곤 했었다. 어느 날은 컴퓨터가 고장 났다고 불러서 그냥 저녁을 먹이고 돈을 쥐여 보내기도 했었다. 계약일이 생겨서 근처에 가는 날이면 실험실에 있는 그와 실험실에 있는 학생들을 불러서 고기를 먹였다. 그는 집에는 가끔 들어가고 실험실에서 먹고 자는 일은 여전했었다. 어느 날은 그의 배가 이상하게 나와 있었다. 가스가 찬 건지, 복수가 찬 건지 물으니 가스라며 병원을 가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병원 가는 걸 미루고 있다고 했다. 대학생인 큰아들과 중학생인 작은 아들의 학비만도 만만치 않을 거란 생각은 했었다. 그래도 몸이 돈인데 하며 그에게 화를 냈었다. 부모는 그러면 안 된다며 200만 원을 책상에 올려놓고 왔었다.




그런 그가 올 초에 국립대학교 정교수 자리에 정착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가 전한 소식 중에 제일 기쁜 소식이었다. 참 오랜 기간 돌고 돌아 찾은 자리였다. 대견했다. 그 끈기가 대단하다 싶었다. 난 진즉에 포기했던 일을 해낸 그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며 코끝이 시큰해졌다. 눈물이 났다. 이제 그에 대한 마음이 가벼워졌다 했었다.




“3층이긴 한데 수리가 잘되었어. 최고가 대비 꽤 내려왔고. 네 둘째 고등학교랑도 가까워. 결정적으로 계단식이다. 넓다.”

세미나에 출장 중인 그에게 집 사진과 문자를 보냈다. 그는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는 넓고 깨끗해서 좋은데 정말 살 수 있는지 다시 물었다. 나는 대출상담사와 전화통화를 해서 다시 한번 대출금액을 확인하라고 했다. 그는 대출금과 계약 진행 과정을 확인하고 계약금을 입금했다. 그가 드디어 첫 집을 계약했다. 그의 아버지를 편하게 모시고, 아들들이 생활하기에 쾌적한 집을 구했다. 그는 이제야 아들과 아빠 역할을 제대로 한다며 후련해했다. 내 집을 구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그런데도 그가 좋아하니 다행이다 싶었다.

세미나에 다녀와서 집을 보는 그는 들떠있었다.

“안방은 아버지가 사용하시고, 이 방은 아이들이 사용하고 제 방은 여기 제일 작은방 쓰면 될 듯한데요.”

가족들 좋은 거 다 주고 남는 거 하는 모습이 한결같다. 늘 무표정으로 덤덤하게 말하던 그가 활짝 웃었다. 그런 그를 보면서 좋으면서도 난 생각했다. 10년이 넘게 사용한 가전, 가구 중에 쓸만한 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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