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에 힐링을 담다

가을밤 농막캠핑

by 꿈부


날씨가 서늘해졌다. 금리가 올라가면서 부동산 뉴스들은 연일 우울하다. 농막에 가 있는 시간이 늘었다. 그 사이 나무잎들이 물들어갔다. 그네에 앉아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을 봤다. 흔들리던 나뭇잎들이 바닥에 떨어져서 쌓였다. 그 모습들을 보고 있는 시간은 잠시나마 우울한 뉴스들을 잊게 했다.






지난 주말에도 가족들과 농막에 갔다. 아이들은 바비큐를 먹고, 모닥불을 피우고, 그 앞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좋아 했다. 지난 달 말쯤 밭에 심었던 고구마를 캤더니 밭에는 대파만 남았다. 나와 딸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숨을 크게 쉬었다. 그 숨은 속을 시원하게 했다. 그리고, 담 옆에 심어진 지 오래된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을 주웠다. 난 가으내 농막에 갈 때마다 그 밤을 주웠다. 주운 밤을 모닥불에 구워 먹기도 하고 냄비에 삶아 먹기도 했다. 이젠 밭과 얻어지는 먹거리들에 친숙해졌다. 남편이 아들을 불렀다.


“아들, 여기 수박 봐. 수박 열렸다.”


아들은 정말이냐며 밭으로 뛰어갔다. 여름에 먹다 던진 수박씨에서 싹이 나더니 수박이 자랐다. 어른 머리 크기만 하게 자란 수박을 보면서 아들과 딸들은 신기해했다. 정말 버린 씨가 자란 게 맞는지 몇 번씩 확인했다.


“수박이 바닥에서 자라? 나무에서 자라는 과일 아니었어?”


우린 큰 딸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크게 웃었다. 고기를 먹고 수박을 잘라보자고 했다. 수박을 손가락으로 두드리자 잘 익은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수박 맛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남편은 바비큐를 할 숯불을 피웠다. 난 농막의 볼 전구를 켰다. 볼 전구는 언제나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든다. 여름엔 벌레를 모이게 해서 불편하게 했지만 난 그냥 켜져있는 풍경이 보기 좋다. 창고에서 테이블을 꺼내와 그 위에 테이블보를 깔았다. 이번에 캠핑 장비 몇 가지를 사면서 같이 샀다. 아이들은 가든파티를 하는 것 같다며 설레했다. 난 의자들을 꺼내고 랜턴 걸이에 새로 산 랜턴을 걸었다. 감성 캠핑을 제대로 즐길 터였다. 그리고 새로 산 짙은 갈색의 감성 모기향 통에 모기향을 피웠다. 사실, 날씨가 서늘해져서 모기는 없었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대학생이 된 딸들은 나에게 쉬라고 했다. 내가 그네에 앉아서 풍경을 보는 동안 딸들은 상추를 씻고, 마늘을 씻어서 잘랐다. 김치와 쌈장을 접시에 담았다. 파채에 고춧가루와 설탕, 식초를 넣고 무쳤다. 햇반을 전자렌지에 데웠다. 아들은 누나들이 주는 반찬 접시들과 숟가락, 젓가락을 테이블로 옮겼다. 아들은 접시 한 개를 옮기고 핸드폰을 봤고, 누나가 부르면 다시 접시를 옮기고 핸드폰을 봤다. 게임을 하는가 싶어 아들의 핸드폰을 보면 유튜브 시청 중이었고, 유튜브를 보고 있나 하고 보면 어느새 게임 중이었다. 핸드폰을 손과 눈에서 떼지 않는 12살 남자아이였다.






돼지 삼겹살과 목살이 숯불에서 구워졌다. 양파와 송이버섯이 그 옆에 올려졌다. 남편은 고기를 안 태우고 잘 구웠다. 굽다 올라오는 연기에 눈을 찌뿌리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런 아빠에게 아들은 상추에 고기를 얹고, 그 위에 파채와 마늘, 밥을 가득 얹은 쌈을 싸 주었다. 그 고기쌈은 너무 커서 남편의 입에 꽉 찼고, 그 상태로 남편은 알아듣지 못할 말로 아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 모습에 아들은 킥킥대며 웃었다. 딸들은 오랜만에 먹는 바비큐가 맛있다고 했다.






고기를 먹은 후 난 수박을 잘랐다. 눈빛이 수박에 모였다.손가락으로 두드렸을 때의 소리로는 칼을 꽂는 순간 수박이 쩍하고 갈릴 줄 알았다. 그런데 칼을 꽂고 누르는데 힘이 많이 들어갔다. 그다지 잘 익었단 느낌이 들지 않았다. 꾹꾹 눌러서 자른 수박의 색은 빨갛지 않았다. 맛은 어떨까 했다. 자른 수박을 남편의 입에 넣어주었다. 아이들의 눈이 남편에게 쏠렸다.


“괜찮은데.”


이 말을 듣고서야 딸들과 아들이 수박을 입에 넣었다. 나도 먹어봤다. 식감은 아삭하지 않았지만 물컹하지도 않았다. 입에서 녹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달았다. 딸들은 신기하다며 남은 수박을 먹었다.






잠시 후, 우린 모닥불을 피웠다. 모닥불에 철판 그리들을 올렸다. 물과 라면스프를 넣고 그 안에 파와 햄을 함께 썰어 넣었다. 물이 끓었고 라면을 넣었다. 젓가락을 든 채 라면이 끓는 모습을 보니 침이 고였다. 라면이 익은 듯 하자마자 우린 종이컵에 라면을 덜어 먹었다. 뜨거운 불에 끓인 라면의 면발은 꼬들거렸다. 딸들은 ‘인생라면’ 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캠핑은 먹는 것으로 시작해서 먹는 것으로 끝난다. 아이들은 라면이 치워지자 모닥불에 마시맬로를 구워 먹었다. 나무젓가락에 마시맬로를 끼워 불 위에서 살살 돌려가며 구운 뒤 크래커 사이에 넣고 먹는 아이들을 보는 남편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그 옆에서 장작을 하나씩 넣어주며 불이 꺼지지 않게 살펴주었다. 그러는 사이 딸들은 중간고사와 연고전이 얼마 안남았다는 이야기와 남자친구들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난 고구마를 알루미늄 포일에 싸서 모닥불 사이에 넣었다. 난 둘러앉은 가족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새로산 삼각대로 각도를 달리해서 여러 컷을 찍자니 아들은 점점 기괴한 표정을 지었고 딸들의 표정은 굳어갔다. 그만할 때가 되었구나 하고 난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 요즘 힘든 거 없어?”


이렇게 물으면 아들은 바로 없다고 답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머뭇머뭇하더니 걱정되는 말을 했다.


“음... 공부를 못하는 거!”


우린 모두 놀래서 아들을 봤다. 5학년인 아들은 누나들과는 달리 공부에 흥미가 없다. 그렇다 보니 성적도 항상 바닥권이다. 그럼에도 아들은 늘 밝았다. 공부를 못하는 것에 불편해하지 않았다. 모둠활동을 할 때 아들이 같은 모둠이 되면 친구들이 싫다는 표현을 하는데 그때는 좀 속상하다는 아들이 안쓰러웠다. 아들의 학습을 챙기지 못한 내 탓 같아서 미안했다. 한편으로 이참에 공부를 해보려나 기대하며 학원을 알아봐줄지를 물었다. 하지만 아들은 전혀 다른 답을 했다.


"엄마, 기분 나쁜 건 잠시야. 괜찮아.“


남편과 딸들은 아들의 해맑은 답에 배꼽을 잡았다. 딸들은 아들의 바닥을 찍는 성적에 굴하지 않는 자신감을 칭찬했다. 아들은 웃으며 괜찮다는 말을 여러번했다. 아들은 늘 이렇게 화낼수 없게 만들었다.






어느새 시간은 밤12시가 되어갔다. 남편은 고구마를 꺼냈다. 껍질을 까서 아이들에게 하나씩 주었다. 아이들은 구워진 고구마를 호호 불었다. 그래도 뜨거워서 코를 찡그리며 이 끝으로 살살 먹었다. 그 표정들이 재밌어서 난 또 사진을 찍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농막은 조용했다. ‘툭’ 밤송이가 떨어졌다. 가을밤이 깊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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