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소풍하면 김밥이지.”
아들의 현장체험일이 내일이라고 했다. 나는 유부초밥을 쌀지 아들에게 물었다. 조금 간단히 준비해보려 했다. 그 말에 남편이 서둘러 김밥이라고 말했다. 난 남편을 보며 장난스런 인상을 썼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요리가 귀찮다. 딸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나가 있다 보니 그 정도가 더해져 갔다. 난 할 수 없이 새벽 배송으로 김밥 재료들을 주문했다. 그리고, 남편과 어릴 적 소풍날 이야기를 떠올렸다.
“은주야, 김밥 싸라.”
엄마가 깨웠다. 아침 6시가 되었을까? 엄마는 더 일찍 일어나서 밥을 앉혔을 것이다. 엄마는 늘 김밥 재료들을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나를 깨웠다. 오빠가 소풍가는 날이었다. 5남매 중 누가 소풍 가는 날이면 우린 김밥을 30줄 정도를 쌌다. 아침을 김밥으로 먹는 건 당연하고, 소풍가는 사람은 도시락 2개, 나머지 사람은 한 개씩, 그리고 집에 있는 동생이 먹을 김밥까지 싸다 보면 30줄도 모자랄 때가 있었다. 김밥은 소풍날만 먹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우리들의 도시락 반찬은 늘 김치 종류들 뿐이었다. 배추김치, 총각김치, 깍두기에 가끔 김이라도 싸준 날이면 학교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러다 오빠 도시락에만 숨겨 들어가 있는 계란 후라이를 봤을 때의 배신감은 몇날 며칠을 씩씩거리게 했었다. 그러니 전날 밤에 우리가 김밥 먹을 생각을 하며 잠들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13살의 난 이불 속에서 왜 나만 깨우냐며 짜증을 냈다. 일어나서 앉았지만 눈이 떠지지 않았다. 앉아서 졸고 있는데 엄마가 다시 큰 소리로 불렀다. 난 투덜거리며 일어나서 부엌으로 나갔다. 밖은 아직 어두컴컴했다. 가을 아침이었다. 난 팔을 부비며 몸을 여몄다. 봉당을 지나 부엌 문을 여니 아궁이에 불이 지펴져 있었다. 따뜻했다. 그 앞에 동그란 플라스틱 밥상이 펴져 있었다. 그 옆 곤로에 올려진 냄비에서는 물이 끓고 있었다. 끓는 물에 엄마는 시금치를 데치려고 하고 있었다.
“손 조심하고, 단무지 좀 잘라.”
김밥 싸는 날은 엄마의 얼굴과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아침마다 출근하느라 바쁜 엄마에게 준비물을 사야 한다는 말을 하는 우리에게 엄마의 목소리는 늘 짜증과 화가 섞인 채 컸다. 우린 엄마의 그 큰 목소리에 잔뜩 겁을 먹곤 했었다. 그 날은 엄마가 친절해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난 열 살 때 부터 엄마 옆에서 김밥을 쌌다. 엄마는 어린 나에게 여러 요리를 가르쳤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감자찌개, 두부찌개, 미역국, 김치볶음밥... 야근으로 엄마가 없을 때 동생들과 저녁을 해 먹으라며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웬만한 부엌 살림은 거의 할 줄 알았다. 첫 째인 오빠는 제치고 둘째인 나에게만 시키는 게 가끔은 화가 났지만, 고생하는 엄마를 돕는 거라 괜찮다고 했었다.
난 상 앞에 앉았다. 상위에 도마를 올리고 노란 단무지를 올렸다. 무를 반으로 자르고, 다시 반으로 자르고, 다시 1cm 굵기로 잘랐다. 옆에서 시금치를 데치고, 계란을 부치고, 분홍 소세지를 굽고, 당근을 채 썰어 볶는 엄마는 정신없어 보였다. 엄마는 7시 50분엔 회사 출근 버스를 타러 나가야 했다. 그래서 엄마는 마음도 손도 바빴을 것이다. 난 단무지를 자르고 엄마가 부쳐놓은 계란을 잘랐다. 커다랗고 동그란 은색 쟁반에 김밥 재료들이 하나씩 쌓였다. 난 단무지와 계란을 자르면서 엄마 몰래 조금씩 잘라 먹었다. 그러다 분홍 소세지가 쟁반에 올려졌고 또 몰래 끝을 잘라서 입에 넣는데 엄마의 눈과 마주쳤다. 난 놀라서 사래가 걸렸다. 엄마는 기침을 하는 나에게 물을 떠주며 말했다.
“소세지 두 개 샀어. 그냥 먹어도 돼.”
엄마는 팔뚝만한 분홍소세지를 가리키며 웃었다. ‘와!’ 내 눈이 커졌다.
재료 준비가 다 되었다. 거의 6시 반이 넘어갔다. 엄마는 안 되겠다며 동생을 깨웠다. 10살 동생을 깨우면서도 오빠는 안 깨웠다. 동생은 내 옆에 앉아서 눈을 비볐다. 그리고 소세지 끝을 조금 잘라서 먹었다. 난 엄마처럼 그냥 하나 먹으라고 했다. 동생이 웃었다. 엄마는 큰 양푼에 밥을 푸더니 참깨와 소금, 참기름을 넣고 비볐다. 고소한 냄새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나와 동생은 김을 깔고 엄마가 올려주는 밥을 폈다. 그리고 그 위에 단무지, 시금치, 계란, 소세지, 당근을 차례로 넣었다. 김밥을 말았다.
엄마는 그 사이 김밥을 담을 도시락 4개와 찬합을 꺼내서 준비했다. 그리고, 엄마도 김밥을 말았다. 드디어 첫 번째 김밥이 말아졌다. 엄마가 김밥을 잘랐다. 우린 김밥을 싸다 말고 엄마가 썰고 있는 김밥을 봤다. 엄마가 잘린 꼬다리 부분을 나와 동생에게 주었다. 김밥이 입에 들어오자 참기름 냄새가 입안에 퍼졌다. 김밥을 씹자 먼저 단무지의 짭쪼름한 단맛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서 계란과 소세지의 고소한 맛이 차례로 올라왔다. 뒤이어 올라온 시금치 향은 달큰했다. 우린 김밥을 씹으면서 동시에 말했다.
“맛있다.”
엄마는 그런 우리를 물끄러미 봤다. 그리고 엄마도 다음 김밥의 꼬다리를 먹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맛있다고 했다. 엄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동생이 엄마에게 물을 떠다 줬다. 소풍날은 엄마가 눈물을 삼키며 김밥을 먹는 날이었다.
아들의 소풍 김밥을 쌌다. 불고기를 넣었다. 김밥 열 줄을 쌌다. 아들과 도시락을 못싸오는 아들 친구의 도시락을 싸고, 도시락 하나를 더 쌌다. 엄마에게 갖다 드릴 김밥이다. 엄마는 얼마 전 인공관절 수술로 입원을 했다. 김밥을 보면 엄마는 아마 큰 소리로 말할 것이다.
“내가 그 분홍소세지 들어간 김밥을 싸주기 위해서 야근을 몇 개를 더 했는지 니들이 알어?”
그리고, 엄마는 다시 눈물과 함께 김밥을 먹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