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추억

엄마의 소원

by 꿈부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여름휴가를 보내는 동안 긴장이 풀린 탓이었을까? 쌓인 피로가 밀려온 것이었을까? 말 그대로 번아웃 상태가 되었다. 몸이 무너졌다. 누워서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머리를 떼서 던져버리고 싶은 두통에 시달렸다. 속은 계속 멀미를 하듯 울렁댔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모두 토해내더니 마시는 물마저 토해내는 중이었다. 뱃가죽이 등에 붙을 수 있구나를 체험하고 있었다. 이렇게 6일째였다. 두통약을 먹고 두통이 가시면서 머리를 쥐어 잡고 있던 손이 풀리고 고개도 몸도 침대에 늘어졌다. 그러다 정신차려야지 하고 꾸역꾸역 침대에 기댄 채 앉았다. 맞은 편 거울로 보이는 난 엉망이었다. 눈은 퀭했고, 머리는 엉켜있었다. 속상했다. 서글펐다. 억울했다. 엄마 생각이 났다. 전화를 했다.

신호가 두 번 울리고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큰 딸, 오랜만이네.”

엄마 목소리가 밝았다. 웃음기 가득 담은 이 목소리는 기분 좋은 일이 있는 것이다. 기운이 없던 나의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건강은 어떤지 궁금했다. 더워도 너무 더운 여름날, 내가 기운 없어서 늘어져 있는 지금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물로 입술을 적시고 목소리 톤을 높였다.

“더운데 어떻게 지내요? 밥은 드셨어요?”

엄마는 나의 안부에 대한 답은 뒤로 하고 뜬금없는 답을 했다.

“나 학교다녀!”

엄마의 들뜨고 설레는 목소리에 자랑하고 싶은 일이 있었던 게다. 신이 났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엄마의 이야기는 1시간 동안 이어졌다.

엄마는 1945년, 해방둥이다. 1남4녀 중 넷째였다. 오빠를 고등교육까지 시키느라 나머지 네 딸이 뒷바라지를 했다. 그 시절 많은 어르신들이 그랬듯 엄마도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외할아버지께 어깨 너머로 배운 한글과 수가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글을 띄엄띄엄 읽고, 수는 장 볼 수 있을 정도의 계산을 한다. 못 배운 게 한이라는 말을 드라마 속 엄마들처럼 엄마도 입에 달고 살았다. 본인이 배우기만 했어도 사는 게 이렇지는 않았을 거라는 한탄도 늘 듣는 레파토리였다. 난 그런 말들을 흘려들었다. 또 시작이구나 했었다. 그냥 늘 하는 잔소리를 듣는 것 처럼 짜증스럽게 듣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는 그게 진짜 한이었나 보다. 엄마는 78세의 나이에 학교를 찾아갔다. 친구분들의 ‘이 나이에 배워서 뭐하게’ 하는 말을 무시하고 말이다.

엄마는 글자가 보이면 읽기를 좋아했다. 아이들의 교과서나 읽고 있는 책들의 제목을 읽고, TV로 보이는 자막을 읽었다. 그 짧은 글 조차도 읽는 속도가 느렸고, 띄어 읽기가 제각각이라 의미전달이 이상할 때도 있었다. 책 안의 내용도 읽어보라고 하면 부끄럽다며 덮었다. 느릿느릿 읽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오래 보이고 싶어하지 않았다. 쓰기는 정도가 더했다. 엄마는 이름 석 자 쓰는 것도 손을 많이 떨면서 썼다. 엄마의 글자는 떨리는 만큼 구불거렸다. 소리나는 대로 받아쓰지만 맞춤법이 많이 틀렸다. 그래서 엄마는 쓰는 모습을 보이는 걸 더 싫어했다. 은행가서 통장을 만들 때 여러 번 이름을 쓰면서 얼굴이 빨개졌었다. 은행을 나오면서 엄마는 기죽어 말했었다.

“할머니들 한글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던데...”

난 그 말을 또 흘렸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면 근처에 사는 동생에게 알아보라고 미뤘다. 우리가 흐지부지 엄마의 말을 잊어가고 있을 때 엄마의 학교에 대한 의지는 더 커졌었나 보다.

엄마는 복지회관에서 운영하는 어르신 프로그램에 다니면서 운영자들에게 물어보고, 주민센터에 가서 물어보고, 같이 다니는 주변 어르신들한테 물어서 지금의 학교를 찾아갔다.

“우리 선생님이 나는 1학년보다는 위래. 읽기는 잘해서 쓰기 조금 다듬고 바로 2학년으로 올려 준데. 내가 우리 반 이찌방 이여.”

전화 건너편에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드는 엄마 모습이 그려졌다. 학교 다녀온 아이가 재잘대는 이야기를 듣는 듯 했다.

이제 1학년. 엄마는 한글을 다시 배우고, 수를 다시 배운다. 아는 건 알아서 신나고, 모르는 건 알게되서 신이 난다고 했다. 초등학교 과정도 마치고, 중학교 과정도 마칠 거라며 웃었다. 고등학교 과정도 마치면 대학도 갈 건데 등록금 내줄 꺼냐고 물었다. 난 메인 목소리를 다듬고 답했다.

“그럼, 대학원도 가. 유학도 가고.”

엄마는 껄껄 웃었다. 그러면서 90세가 넘는 어르신도 온다며 못 배운 한이 그렇게 깊은 거라고 했다. 배울거리가 넘치고 흔해진 요즘에 어르신들의 귀한 마음이 신기하고 대단했다. 그러다 엄마는 일주일에 왜 두 번만 오라는지 모르겠다며 투덜댔다.

"날도 덥고, 어르신들 덜 힘들라고 그러겠지."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아니라고 단칼에 잘랐다. 덥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다며 매일 가고 싶다 했다. 이렇게 순수하게 좋아할 일이 나에게도 있었나? 이렇게 깊은 한이 서린 간절함이 뭐였을까 생각했다. 엄마의 못 배운것에 대한 한 덕분에 난 대학원까지 마쳤지만 그 감사함을 잊었었구나 했다. 그리고, 매 번 엄마의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말을 흘려들으며, 돈이 효도라고 생각했던 걸 반성했다. 가난했던 엄마도 돈을 드리고 집을 사드리면 한서린 마음도 채워지겠지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무엇이 진짜 효도였을까?

엄마는 숙제를 해야한다며 전화를 끊자고 했다. 언제나 바쁜 핑계로 내가 먼저 끊자고 했었다. 엄마가 먼저 끊자고 말하니 서운했다. 엄마도 서운했겠구나 했다. 미안했다. 전화를 끊는다면서 엄마는 말했다.

"내 소원이 뭔지 알어? 죽기전에 니들 5남매 한테 손편지 써주는거여. 강민아, 은주야, 은선아, 은지야, 문걸아 하고.“

참자했던 눈물이 결국 터졌다. 그걸 알았을까? 엄마가 물었다.

”넌 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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