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많을수록 마음은 좁아졌다
집이 늘었다.
한 채, 두 채, 세 채...
처음엔 집마다 이름을 붙였다.
통장마다 이름을 붙이듯,
나는 집을 저축하며 이름을 붙였다.
첫째의 교육비, 둘째의 미래자금, 셋째의 결혼자금.
그렇게 목표가 분명할 땐
나의 욕심도 어느 정도 파악되고 있었다.
내 그릇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몇 채인지도, 어디에 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집이 늘어났다.
집이 짐이 되고,
짐이 커질수록
나의 마음은 좁아졌다.
쌀쌀맞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다.
돈이 돌지 못하고 뻑뻑해질수록
머릿속엔 파산, 이혼, 암...
나쁜 단어들만 떠올랐다.
무엇을 위해 이 투자를 시작했던가.
이제는 이유도, 목표도 사라졌다.
그저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었다.
정리가 되지 않는 상황이 무서웠다.
자산으로 포장된 짐덩어리들 속에
나는 갇혀 있었다.
“우리가 가진 것들이 때로는 우리를 소유한다.”
— 에픽테토스
며칠 전부터 집을 정리하고 있다.
버리고 또 버려도
꽉꽉 채워진 공간들이 눈에 거슬린다.
오늘은 사무실까지 정리했다.
쓰레기봉투를 몇 개나 채웠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하나둘 버리면서
나는 나에게 묻는다.
‘이건 끝까지 가지고 갈 만한가?’
정리를 하다 보면
결국 마음이 남는다.
무게보다 기억이 더 오래 남는다.
끝까지 남겨진 건 글들이었다.
누군가와 주고받은 편지,
내가 적어놓은 쪽지들.
그 안에는 그 시절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건 쉽게 버릴 수 없었다.
반대로,
버려지는 것들 중엔
처음의 마음과는 너무 달라진 것들이 있었다.
그땐 분명히 필요하다고, 좋은 것이라고 믿었는데
지금은 짐이 되어 나를 눌렀다.
인연도 그랬다.
물건처럼.
시작은 다 좋았고,
좋은 줄만 알았고,
해롭거나 불편한 줄도 모르고 지냈다.
오래되었다고 해서
다 품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떤 것들은
묵혀둘수록 아프기도 했다.
결국 정리하고, 정돈해야 한다.
크게 아프고 나서야,
혹은
공간에 여유가 없을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버릴 걸 고민하기 시작한다.
일도, 관계도.
어떤 것도 영원한 건 없다.
그릇이 넘칠 때가 온다.
그래서 인생은
정리와 정돈의 반복이다.
적절한 시기에,
너무 늦지 않게,
가볍게 털어내야
그만큼 덜 아프다.
계속 붙잡고 있지 말아야 한다.
처음엔 분명 좋은 것이었더라도
지금은 아닐 수 있으니까.
지금, 내가 그러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 정리하며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짐이 되기 전에.
내가 짐에 파묻히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