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나를 말리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나를 말리지 않았다.
멈추라는 말도,
조금은 쉬어가라는 말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진짜 열정적이세요.”
“대표님, 요즘 잘 나가시네요.”
“부럽다. 어떻게 그렇게 하세요?”
난 정말 잘하는 줄 알았다.
좋은 평가와 존경이 섞인 시선들은
내 안의 속도를 더 끌어올렸다.
그땐 몰랐다.
찬사가 경고보다 무서울 수 있다는 걸.
누군가 나를 말렸다면 어땠을까?
“지금 너무 빠른 거 아니야?”
“너무 많이 벌리진 마.”
“잠깐 멈춰서 돌아보는 것도 필요해.”
그 말들 중 단 한 마디만이라도
제대로 들었다면,
나는 달랐을까?...
하지만
그 누구도 나를 말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나 자신을 말리지 않았다.
어쩌면 흘리는 그 말들을 듣지 않았을지 모른다.
“가끔은 멈춰 서야
비로소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알 수 있다.”
— 조지프 캠벨
나는 말릴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잘하고 있다’는 믿음은
점점 독선이 되었고,
성공은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 때까지의 결과가 좋았던 만큼
과정도 옳았다고 착각했다.
잘 풀리는 지금을 기준 삼아
앞날마저 쉽게 계산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용기일 때도 있지만,
때론 멈추는 것이 더 큰 용기일 수 있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말리는 사람 없이 스스로를 격려했다.
잘 될거라고, 해결은 되더라고,
그러고 나면 더 커질거라면서
앞으로, 앞으로만 달렸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
나는 많은 걸 잃고서야 알았다.
멈추지 않았던 건
나였고,
말리지 않았던 것도
결국 나였다.
삶은 때때로 우리에게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안겨준다.
찌릿하고, 쓰리고, 아픈 고통을 깊이 겪고 나면
웬만한 일들에는 놀라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지',
'지나가겠지'가 조용히 내 일상이 되어간다.
좋은 일도 한없이 좋지 않고,
나쁜 일도 끝없이 나쁘지 않다는 걸 조금씩 알아간다.
그런 시간들 안에서 사람은 단단해진다.
감정뿐 아니라 가치관과 삶의 방향도 다시 정비하게 된다.
고난은 그렇게 기회의 시간이 되기도 하더라.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고,
나 또한 모든 이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걸 깨달으면서 조금씩 내려놓게 된다.
‘굳이’라는 말이 생긴다.
쓸데없는 감정 소비와 의미 없는 에너지 낭비를 조금씩 줄여간다.
그것도 어른이 되어가는 일이겠지 하면서.
얼마 전, 직원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원주의 구룡사.
산새가 아름다운 산사다.
사실, 지난 2~3년간 나는 이 곳을 여러 번 찾았다.
복잡한 마음을 안고, 해결되지 않던 일들을 품고,
마음속 상처를 껴안고 하는 걷기였다.
소원카드를 걸고, 눈물흘리며 한 기도는 얼마나 절실했던지...
아마 그 시간들로 지켜진 지금의 나 일 것이다.
힘듦이 컸으니 단단함도 그만큼 생겼겠지.
실패와 실망이 만드는 좌절은 때로 나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질문이 끝없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그 질문 속에서 나는 나를 보았고,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걸러내었다.
그리고 결국 내가 가장 먼저 건강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건강한 나여야 타인을 긍정할 수 있고,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단단해진다는 건 마음이 더 강해지는 게 아니라,
더 부드럽게 여물어간다는 뜻이었다.
오늘도, 같이 또 혼자 걸었다.
그 걷는 시간의 끝은 늘 ‘감사’였다.
잉여로운 시간에 대한 감사.
다행스러운 오늘에 대한 감사.
여전히 살아 있는 나에 대한 감사.
오늘도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계곡의 물도 내려오다 보면 고임의 시간을 갖는다.
그 고요한 멈춤 동안 무겁게 떠다니던 것들이 가라앉고,
맑아지고, 다시 흐른다.
멈추고 흘러가고,
멈추고 흘러가고…
나도 그래야겠다.
그 정화의 시간을 잊지 않고 살아야겠다.
멈춤은 실패가 아니다.
멈추지 못했던 내가 무모했던 것이다.
누구도 나에게 멈추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때때로 멈춘다.
멈춰야 지금의 나를 알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