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살아내기로 했다6

관계를 끊는다는 건, 나를 살리는 일이었다

by 꿈부

관계를 끊는다는 건,

결국 나를 살리는 일이었다.

대학 시절,
나는 늘 시간에 쫓겼다.
장학금으로 학비를 충당하고
하루에 알바를 세 개, 네 개씩 뛰었다.

과사무실 보조 책상에서 쪽잠을 자고,
막차에서 내려 걷던
한밤의 골목길은 늘 무서웠지만
내일의 생계를 걱정하는 마음 앞에선
그 두려움조차 사치였다.

그렇게 벌어
집안의 생활비를 보탰다.

MT나 동아리 활동은
생각조차 못 했다.
그건 여유 있는 친구들의 세계였다.
나는 그저
빨리 졸업해서
빨리 취업해야 했다.

몇 안 되는 동기들은
시험 기간이 되면
쪽 시간에 정리한 내 자료를 빌리기 위해
슬쩍 말을 걸어왔다.

나는 말이 없었다.
내 스케줄이 바빴으니까.
도서관, 강의실, 아르바이트를
뛰어다니는 하루 속에서
그들의 가벼운 인사는
그저 요청의 서문 같았다.

그들은 관계가 아니라
필요를 위해 나와 연결을 이었다.
그 어린 시절엔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이용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사는 모양은 달라졌지만,
내 사정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회사에 다니며
투잡을 뛰고
도배를 배우고
건물 청소도 했다.
남들 잠든 시간에
새벽을 걸어 다니며
묵묵히 하루를 버텼다.

그 사이 동기들은
점점 다른 언어를 쓰기 시작했다.

누구는 부자 시댁을 만나
돈 잘 버는 남편 덕에
좋은 집, 외제차를 자랑했다.

누구는 친정 부모의 지원으로
집을 샀다고 했다.

그 자랑을
그냥 “그렇구나” 하고
순수하게 들을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 집에선
내가 가장 잘 사는 축이었지만
그 사실이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격지심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특히 아이들이 생기고 나선
그 마음은 더 깊어졌다.

나는 그 자리에
왜 계속 있었을까.

돌아보면,
가난했던 내 처지에 대한
자격지심이 컸던 것 같다.
뒤처질까봐,
소외될까봐,
버려질까봐.

그래서 맞췄고,
그래서 끌려다녔다.

그들에게 맞춰주며
어울리는 척했지만,
그건 ‘나’를 지우는 일이었다.

중개 일이 잘 되고
형편이 조금 나아지자,
그들이 묻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렇게 돈을 벌었어?”
“비결이 뭐야?”

그리고는
밥값, 커피값을
당연히 내가 낼 것처럼 구는 말투.

“요즘 잘 벌잖아.”
“돈 좀 만졌다며?”
그 말 뒤에 숨은 건
질문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필요할 때만 연락 오는 사람들.
상대의 사정을 묻기보다는
자신의 필요를 꺼내는 사람들.


예전의 나는, 그런 말조차 듣고 스스로를 탓했다.
‘내가 더 잘 챙겼어야 했나?’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관계는
애초에 '서로'가 아니라
‘한쪽’만의 편안함으로 이루어졌었다는 걸.
잘못된 건, 나의 배려를 당연하게 여긴 그들이었다.


만날수록
마음 한쪽이 움츠러들었고
자존감이 꺾였다.

살아온 과정이 달랐고
가치관도 달랐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이제 그런 관계에서
나를 꺼내기로.
그들과 나 사이에
더 이상 나를 희생시키지 않기로했다.

관계를 끊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혼자 남겨진 듯한
쓸쓸함이 따르기도 하고,
'내가 너무 예민한가?'
하는 자책도 따라온다.

하지만 이제 안다.
그건 이기적인 결정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나를 회복시키는
‘선택’이었다는 걸.

나는 지금,
다시 살아내기로 했다.
관계의 상처를
더 이상 곪게 두지 않기로.
나를 아프게 하는 자리에
더는 머물지 않기로.

그것이,
조용하지만 단단한
나의 회복이다.


“함께 있을 때보다, 떠난 뒤에 비로소 편안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관계는 끝난 것이다.”
– 이외수-

관계를 끊는다는 건,
미워하는 게 아니라
나를 살리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