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일
“당신 자신을 돌보는 일은, 이기심이 아니라 생존이다.”
-오드리 로드-
2014년, 중개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자리를 옮겼다.
영통에서 망포로,
망포에서 기흥으로,
기흥에서 지금의 원천으로.
처음엔 나아지기 위해 옮긴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도망이었다.
남들의 시선,
남들의 말,
남들의 마음속에 내가 얼마나 비좁게 들어앉아 있었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입을 모아 떠드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내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멀어지고 싶다.”
“섞이고 싶지 않다.”
그 말들을 입 안에 담은 채
나는 또 짐을 쌌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한참 동안
그들 곁을 맴돌며 시끄러웠다.
밥그릇 싸움 속에
나는 너무 쉽게 소문거리가 되었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도 없던 일들이
그들의 이익에 방해된다는 이유 하나로
'나쁜 일'이 되었다.
그들이 하지 않는
나의 새로운 시도들이
그들에겐 '불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최소장, 요즘 밥 먹을 시간은 있어요?”
그 시절, 나를 만나던 사람들이
건네던 인사말이다.
계약서를 하루에 열 건 넘게 쓰며 뛰어다녔다.
그러니, 그들이 불편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는 그 불편함의 대가를
너무 큰 마음의 상처로 치러야 했다.
기쁘지 않았다.
일이 잘 되는 순간조차도
조용히 기뻐할 수 없었다.
그들의 바람대로
나는 흔들렸고,
뽑혔고,
무너졌다.
소문은 무례했다.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말들까지
내 이름 뒤에 따라붙었다.
술을 한 방울도 못 마시는 내가
술집에서 외간 남자와 있었다는
터무니없는 이야기까지 떠돌았다.
숨을 쉬기조차 버거웠다.
그 시선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게
지옥 같았다.
결국 공황장애를 얻었다.
왜 그렇게까지 흔들렸을까.
그 시작은 자존감이었다.
그리고 그 자존감의 뿌리는
오래된 가난이었다.
문제집 한 권을 사달라고 말하길 주저하던 나.
옷도, 신발도
‘당연하지 않았던’ 시절.
5남매의 입성은 늘 남루했고,
도시락 반찬 하나로도
부끄러움을 삼켜야 했다.
나는 들키고 싶지 않았다.
표 나는 가난을,
어릴 적부터 감췄다.
그렇게 살아온 내가
세상의 시선 앞에서
왜 그렇게 작아졌는지
이제는 이해가 된다.
중개를 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성공한 사람도,
무너진 사람도.
그들의 삶을 보고,
나 또한 성공과 시련을 겪으면서
나의 삶도 바뀌었다.
알게 되었다.
모든 건 지나간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이
결국은 별거 아니라는 것도.
그 시간 안에서
나는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내가 단단해지기 시작한 건
아이들이 생기고부터 쌓여갔다.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자존감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잘한 건 당연히 칭찬하고,
못한 건
“뒤에 엄마가 있어”라고 말하며
다시 해보라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 말들 속에는
사실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위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더불어, 많은 부침과 생채기를 넘어오면서
스스로 대견해졌다.
그래서,
이제 나는 나를 그렇게 챙긴다.
아이들에게 하듯,
맛있는 걸 먹이고,
좋은 곳을 보여주고,
배우고 싶은 건 마음껏 배우게 해준다.
누가 뭐라 해도
“네, 그런가 봐요.” 하고 웃는다.
나만 아니면 되니까.
이런 지금의 내가,
참 다행스럽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브렌트 브라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