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떠나는 집
영통의 작은 아파트.
오늘, 부모가 떠날 집을 마주했다.
80대 아버지가 홀로 살던 집이었다.
지하철도 가깝고, 병원도 익숙한
일상이 편한 소형 아파트였다.
그 집을 이제는 팔겠다고 하신다
“그 집 좀 팔아요, 아버지.
더 싼 데로 옮기시면
남은 돈으로 여유롭게 사실 수 있잖아요.”
자녀의 권유로 매물을 내놓고 돌아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엔 쓸쓸함이 짙었다.
마음이 저릿하다.
그건 단지 ‘집을 파는 일’이 아니다.
‘존엄’이 작아지는 일이다.
이제는 자녀가 아니라,부모가 분가하는 시대가 되었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분가했었다.
이젠 보태주는 생활비가 짐이 되나보다.
아버지가 떠나는 집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살아낸 기억의 공간이다.
화분을 놓던 창가, 약 봉지를 챙기던 서랍,
냉장고에서 세탁기로, 세탁기에서 쇼파로 가는 동선,
이른 아침마다 바라보던 거리 풍경.
그 모든 것들이 익숙함이라는 이름의 ‘안전지대’였다.
이제,새로운 익숙함을 만들
더 작은 평수를 알아본다.
더 작고, 더 단출하고, 어쩌면 더 외로운 집으로.
그럼에도 아버지는
자식에게 짐을 주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뿐이다.
또다른 부모의 분가다.
40대 후반 쯤 되는 딸이 집을 보러왔다.
고민이 가득한 얼굴이다.
집은 작고, 보증금은 생각보다 비쌌다.
조금 더 깨끗했으면 좋겠는데
수리가 된 집은 보증금이 더 비싸진다.
그녀는 작아진 집 앞에서
더 작아진 친정엄마의 삶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래도 좋은 데로 이사시켜 드리고 싶은데…”
자식의 그 마음,
참… 부모의 마음을 꼭 닮아 있다.
모시고 싶다.
함께 사는 게 맞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남편의 불편함,
아이들의 낯섦이
반대쪽 마음 한켠에 묵직하게 자리 잡는다.
나도 그런 마음이었다.
엄마를 생각하면
늘 죄송했고,
더 잘 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한집에 살기엔
생활의 결이 너무 달랐고,
그 다름은 때로
부딪힘이 되고,
불편이 되었다.
결국,
서로를 위한 선택이라 믿으며
엄마를 따로 모시게 됐다.
사실,떨어져 있으면
마음을 더 많이 쓰게 된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선택지다.
서로의 거리를 두는 것이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사랑을 더 오래 지키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도
살면서 조금씩 배우고 있다.
그렇게 전세 하나가 빠졌다.
작은 아파트 하나가,
한 사람의 존엄을 위한 공간이 되었다.
이 집은 단순한 그냥그런 보통의 집이 아니다.
자식의 눈치 속에
조용히 물러서는 부모의 선택이고,
죄송함과 미안함 속에서 더 나은 마음을 택한
자식의 결심이다.
서로를 위한 거리.
그 거리가
이해가 되고,
배려가 되고,
끝내 사랑이 되었으면 한다.
부모의 노후와
나의 노후 사이,
그 사이에 선 마음은
자식의 마음이었고,
부모의 마음이기도 했다.
그래서
작은 집 한 칸에도
스미는 감정은 눅눅했다.
집은 그렇게 사람을 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