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사람을 품다3

겨울날의 이사는 춥다

by 꿈부

겨울날의 이사는 춥다.

찬 바람보다 더 낯설고 서늘한 건,

새로운 집에 덩그러니 놓인 한 사람의 두려움이었다.


20대 후반의 그녀가 울음을 터뜨렸다.

요즘 이런 젊은 친구들을 자주 만난다.
처음엔 괜찮은 척하다가,

잔금 이후 텅 빈 집 앞에서 갑자기 무너진다.


왜 울었을까?

부모님이 함께 잔금을 치르고 간 뒤,

혼자 남은 집 안엔
곰팡이 자국이 보이고,
싱크대 거름망은 더럽고,
보일러엔 빨간 불빛이 깜빡였다.

그녀가 물었다.


“저… 오늘 여기서 잘 수는 있는 걸까요?”


그건 단지 집이 불편할까 봐 하는 질문이 아니었다.
처음 혼자 살아보는 삶 앞에서, 자신이 과연
버틸 수 있을지 묻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처음 혼자 사는 집은 막연히 자유로울 줄 안다.
하지만 현실은 곰팡이와 낡은 싱크대와 깜빡이는 경고등이다.

부모님과 살 땐 사소했던 것들이
이제는 자신이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문제가 된다.


그녀는 까칠했다.

거래 내내 날카로운 말투였다.
이해한다.
사실은 무서워서 딱딱해진 거다.
나도 그랬으니까.


문득, 나의 첫 독립이 떠올랐다.

스물셋.
대구의 2월,
경북대 북문 근처의 2층 단독주택.
계단을 올라 반대편 끝에 위치한

보증금 없이 월세 5만 원짜리 방이 나의 첫 방이었다.

나만의 방, 나의 첫 독립.
주인집 안방과 연결되던 문을 막아 만든 방이었다.


그 방의 유일한 환기구는 두 손바닥만 한 창 하나였다.
수도 하나가 달린 부엌인지, 욕실인지 모를 한 평정도 공간이 덧붙어 있었다.

화장실은 밖에 있었고, 물은 당연히 찬물뿐이었다.


산부인과 불임연구실에 취업하며
처음 집을 떠났다.
연세 60만 원이 목돈이었던 가난한 집 첫딸은

첫 월급으로 그 돈을 갚았다.

월급의 대부분을 집으로 보내고,

남은 10만 원을 내 몫으로 남겼다.
세 동생의 학비, 엄마의 생활비로...

냄비 하나, 부탄가스 하나,
책상 겸 밥상 하나.
그게 전부였다.


그러다 여름엔 선풍기를,
겨울엔 전기장판을 샀다.
주인집 보일러에 의지해
내가 조절할 수 없는 온도에
몸을 맡기고 살았다.


외로웠다.
진짜, 많이.
그래서 술도 못 마시던 내가
혼자 술을 사 와 마시고,
혼자 토하고,

혼자 울고,
혼자 잠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방은 가난한 집 장녀의 책임과 외로움,
그리고 작은 생존의 몸부림이
동시에 깃든 곳이었다.


그래서
지금 젊은 친구들의 독립집을 보면
내가 살던 곳보다 훨씬 낫다.
그래서일까?난 괜히 속으로 말한다.

"그래도 이건… 궁궐인데."

그리고 문득,
“아… 나 좀 꼰대네”
혼잣말이 나온다.


혼자라는 건,
언제나 두렵다.
처음 집을 얻는 건
공간을 사는 게 아니라
그 공간을 견딜 자신과의 약속이다.


이 겨울날,
그녀의 첫 집이
눈물 대신 웃음을 품게 되길 바란다.
그 방 안에
조금씩 따뜻한 ‘자기만의 계절’이
피어나길 바란다.


“저 오늘 여기서 잘 수 있을까요?”


혼자는 처음인 첫 독립.
처음은 늘 두렵다.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다른 세대지만
그녀와 나, 우리는 모두
그 첫 방에서 ‘살아내는 법’을 배웠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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