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살아내기로 했다 12

행복한 꼴찌, 아들에게 배운 것

by 꿈부

아들이 태어나던 날, 세 아이가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며 막막해했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지?”

교육비만 생각해도 숨이 막혔다.

그래서 나는 전업을 결심했다. 중개업으로.

아들은 돌이 되기도 전에 어린이집에 다녔다.
늘 콧물을 달고 살았다.
움직임이 많던 아들을 안고 그림책 한 권 읽어줄 여유조차 없었다.


그 시절 나에게는 아들의 육아보다 집의 경제가 우선이었다.
돈을 벌어야 했다.
중소병원에 다니던 남편의 월급은 기본 생활비도 모자랐다.
나는 중개업뿐 아니라 건물 청소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했다.

아들의 성장 곁에는 늘 아빠가 있었다.

아들은 잠잘 때조차 나보다 아빠를 찾았다.
안타까움보다 그 현실이 슬펐다.
그러나 생계의 무게가 더 무서웠다.

24평의 좁은 집을 하루빨리 벗어나야 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입학을 앞두고 49평으로 이사했다.
그만큼도 충분히 성공이었다. 빠른 성공.
하지만 나는 더 큰 욕심을 담고, 더 바빠졌다.
아들에게 엄마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뒤로한 채.

그때, 중개업으로 전업을 했던 초심을 잊지 않았더라면
아들의 병은 깊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의 내 집 마련과 교육비 걱정에서의 탈피,
그 목표는 이미 이뤘던 것만으로도 충분했는데 말이다.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큰 부와 자유다.”
– 소크라테스


아들은 글자도 늦게 떼었고, 생활 태도마저 엉망이었다.
나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아들의 기본을 채워주지 못했다.
혼내는 일이 잦았고, 아들은 무기력해지고 손톱을 뜯었다.급기야는 얼마나 뜯었는지 손바닥,손등이 모두 핏기 가득했고,손은 너덜해졌다.

그제야 나는 멈추었다.
학습의 조급함을 내려놓았다.
아들이 하고 싶어 하는 운동과 미술, 그리고 게임 학원만 남겼다.
수학과 영어는 모두 접었다.


아들은 이제 행복한 꼴찌다.
수학만 70~80점을 받아오고, 나머지는 아직 하고 싶지 않단다. 거칠었던 손은 이제 없다. 두툼한 손이 맨질하다.
그리고,웃음이 많아졌다.
아웃사이더라며 친구가 없던 아들이,
요즘은 친구들과 PC방에도 가고, 영화도 보러 간다.


49평의 집에서 아들은 자기 방을 가졌다.
방에서 게임을 하고, 가끔 숙제를 하고,
어느 날은 부엌에 나와 스파게티를 만들고, 부침개를 부쳤다.
“먹을래요?” 하고 묻는 말에 웃음이 난다.
중2의 거친 말투도, 반항도 없다.
방글방글 웃으며 행복하다 말한다.


나는 요즘, 아들의 일상을 바라보며 희망을 본다.
딸들의 성적이 자랑스럽지만,
아들의 웃음이 주는 행복의 전이도가 훨씬 크다.


사람은 실패를 하고, 바닥을 밟아봐야 변한다.
그때 묻는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욕심을 냈는지.”


남들이 정해준 고상한 이성이 아니라,
내 안의 본능에 귀 기울인다.


“난 잘 살고 있었나?”


그 질문 끝에서 변신이 시작된다.
진정한 나로.


“욕심은 우리를 배고프게 하고,

초심은 우리를 단단하게 한다.”


“행복은 성취의 끝에 있는 게 아니라,
함께 웃는 지금에 숨어 있다.”


나는 이제 안다.
돈이 아니라 웃음이,
성공이 아니라 초심이,
욕심이 아니라 행복이,
나와 내 가족을 살린다는 걸.


그래서 오늘도,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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