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음이 전부였다
초등학교 때 읽었던 그림책 《꽃들에게 희망을》은
내 삶이 흔들릴 때마다 꺼내 읽는 책이다.
부동산 하락장에 여러 번 다시 펼쳐보았다.
페이지마다, 그림 하나하나가 아프게 다가왔다.
무엇을 향하는지도 모르고,
남이 가는 길을 서둘러 오르던 애벌레.
그 모습이 마치 상승장의 나였다.
“네가 올라가느냐, 내가 올라가느냐.”
숨 가쁘게 경쟁하던 그 시절,
나는 평범한 일상의 고마움을 잊었다.
꼭대기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남들보다 먼저 올라가야 한다는 조급함에 취해 있었다.
오랜만에 통화한 지인이 내 마음을 꿰뚫었다.
“그때 이것저것 열심히 해본 시도들…
차라리 안 했으면 지금의 내가 가벼웠을 것 같아.”
맞는 말이었다.
그 시절의 우리는 다들 급했다.
눈 뜨면 치솟는 집값에 놀라고,
‘누가 얼마 벌었다’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휘몰아쳤다.
지금 돌이켜보면 다행인 것도 있다.
“그 건물 안 산 게 다행이고, 그 땅 안 산 게 천만다행이지.”
몇 번의 안 한 선택이 그나마 나를 살렸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다행이었다.
괴물에서 사람으로 돌아와서 그게 제일 큰 다행이다.
책 속 문장을 다시 읽는다.
“겉모습은 죽은 듯이 보여도, 참모습은 여전히 살아 있단다.”
하락장의 나는 번데기였나 보다.
죽은 듯 보였지만, 안에서는 여전히 변화하고 있었겠지.
찢기고 패이면서.
그 시간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이제 알겠더라.
그때의 무모함도, 그때의 방황도,
다 지나서야 한 장의 그림처럼 보인다는 걸.
새로운 시작은 또 올 것이다.
중요한 건, 그 시절을 살아낸 채 지나왔다는 것이다.
살아남았으니, 다시 날 수 있겠지.
살아남음이 곧 희망이었다.
나는 이제 안다.
요행은 없고,
오늘을 견뎌낸 시간만이
내일의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는 걸.
“빠른 걸음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끝까지 버티는 자가 결국 완주한다.”
– 전도서 9장 11절
그래서 오늘도 다짐한다.
조급함보다 단단함을,
요행보다 원칙을,
무모한 질주보다 살아남음을 택하겠다고.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지금 무겁다면,
잠시 멈춰도 괜찮다.
멈춤이 끝이 아니라,
번데기의 시간일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