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보다 무거운 것들
나는 대학 입학 이후 지금까지, 몸이 한가했던 적이 없다.
특히 십여 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중개업으로 자리를 잡기 전에는 더 바빴다.
도배도 했고, 건물 청소도 했다.
그 시절뿐 아니라,
살아내던 모든 시간 속에서 체면은 사치였다.
결혼 전에는 가난한 친정의 기둥으로,
결혼 후에는 세 아이의 기둥으로 버텨야 했다.
동생들의 교육비를 보태야 했고,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을 버티기 위해서라면 뭐든 해야 했다.
돈은 체면보다 무거웠다.
아니, 돈이 없던 그 시절의 내게는 애초에 체면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늘 외로웠다.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싶어 했다.
대학 시절, 나를 늘 불편하게 했던 친구가 있었다.
말을 함부로 하고, 아무렇지 않게 나를 부리던 친구.
“야, 리포트 좀 줘봐.”
“야, 커닝페이퍼 좀 만들어줘.”
그 친구는 언제나 당연하다는 듯 요구했고,
나는 언제나 들어주었다.
친절해서가 아니었다.
가난으로 위축돼 눈을 마주치지 못했고,
거절하면 버려질까 두려웠다.
사람들 틈에서 혼자 남겨질까 무서웠다.
그때의 친절은 착함이 아니었다.
외로움에 매달린 몸부림이었다.
삼십 년이 지나도 그 친구는 여전했다.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야, 우리 집 등기부등본 좀 열람해 봐.”
나는 예전처럼 해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해주고 조용히 차단했다.
이제 나는 모든 이에게 친절하지 않는다.
외로움 때문에 매달리지 않는다.
혼자 책을 읽고, 혼자 노래방에 가고,
혼자 여행을 해도 괜찮다는 걸 안다.
그 또한 편안한 쉼이 된다.
나에겐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 없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또 이유 없이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이제는 굳이,
나를 아프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인연을 붙잡지 않는다.
돌이켜보니, 나는 많이 단단해졌다.
많은 시련을 겪었고,
많이 걸었고,
많이 생각했다.
그 과정 안에서, 나는 단단해졌다.
가난 때문에, 외로움 때문에
싫다는 말조차 못 하던 내가
이제는 나를 지킬 줄 알게 되었다.
체면이 아니라,
나를 아껴주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진짜 단단함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오십이 넘은 지금,
조금 외로워도 괜찮아졌다.
혼자도 괜찮다.
이게 단단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