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가 밀렸을 때, 나는 사람을 봤다.
월세가 밀릴 때마다
난 여러 사람을 본다.
사람의 밑바닥 안의 심성을 본다.
“당신은 편하게 돈 벌잖아.”
이렇게 말하며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은 임차인은
외제차를 타며 힘을 줬다.
외적 힘을 주며 사는 동안 내적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예의는커녕, 미안함이 없었다.
그 임차인 부부의 아이들이 불쌍했지만
결국 나는 법적 힘으로 명도를 했다.
다시 월세가 밀리는 임차인을 만났다.
대부분의 임차인들은 제때 월세를 낸다.
하지만 이분은 밀리는 게 반복됐다.
이번에도 세 달째 밀리고 있어서 조심스레 여쭸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월세 확인 부탁드립니다.”
임차인은 바로 답을 보냈다.
“사모님,
제가 명절 지나고 입금해드려도 될까요?
손을 수술하는 바람에 일을 못했어요.
명절 지나고 깁스 풀면 바로 아르바이트해서 입금하겠습니다.”
하...
이런 숫자적인 일에 감정을 넣지 말아야지 하는데,
많이 속상했다.
지난번엔 넘어져서 허리를 다쳤다고 했다.
육체노동을 하는 분이구나 싶었다.
넉 달이 밀린 월세를 재촉한 건가 싶어 마음이 불편했는데,
다음 달에 월급을 받아 보낼 수 있는 만큼 보내오셨다.
밀리는 월세에 미안해하며, 빨리 보내보려 애쓰는 분이었다.
아이들을 혼자 키운다고 했다.
측은지심에, 보내온 월세에서 얼마를 다시 돌려드렸다.
아이들과 식사라도 하시라고.
늦게라도 꾸준히 입금하려는 그 마음이
더 안쓰럽게 했다.
아마 몇 년 전의 명품 부부 임차인처럼
태도까지 불성실했다면 이미 명도 준비에 들어갔을 거다.
하지만 이분은 늘 약속을 지키려 했다.
밀리고, 입금하고, 또 밀리고.
그렇게 반복 중이었다.
밀리더라도 연락을 끊지 않고, 입금하려 애쓰는 모습이
뭔가 더 도와드리고 싶게 했다.
그래서 차마 법적 대응까진 못하고 있다.
그분의 말과 표정,그 짧은 통화 속에서도
살아가는 사정이 묻어나니까.
부동산은 결국 사람과의 일이다.
돈의 문제 같지만,
그 안에는 한 분 한 분의 삶의 무게가 있다.
비 오는 날, 이런 연락을 주고받고 나면
마음 한켠이 젖는다.
한쪽에선 돈을 불릴 고민을 하고,
한쪽에선 오늘을 버틸 걱정을 한다.
그 두 세계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여러 사람을 본다.
우리 임차인 분의 건강이 빨리 회복되고,
언젠가 그분의 어깨가 지금보다 조금은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브런치 시리즈: 집, 사람을 품다
집은 단순한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사람의 사정이 깃들고,
삶의 이야기가 머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집보다 사람을 먼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