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귀만한 희망이라도
아침 8시 반.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다.
실장님이 어제 퇴근길에 몇 번이나 당부했기 때문이다.
“내일 매매 잔금, 9시 반입니다.”
정산서와 현금영수증, 필증 등을 챙기는데
9시도 되기 전, 어르신이 들어오셨다.
“내가 너무 일찍 왔지?”
점잖은 목소리, 단정한 옷차림, 온화한 미소.
얼굴엔 미안함이 가득했다.
괜찮다며 믹스커피 두 잔을 타서 자리에 앉았다.
“시원섭섭하시죠?”
그 말에 어르신은 잠시 웃더니
집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어르신은 지금 76세.
10년 전, 사위의 사업자금에 보증을 섰다.
딸이 어렵다며 여러번 와서 사정을 하는데, 생각은 아니라고 하면서 마음은 해주자 했단다.
재산을 거의 다 잃었다,
편안했던 일상을 잃었다.
보증금 1000만윈짜리 집을 찾았다.
그렇게 51평에서 22평 월세로 이사했다.
짐도, 마음도 함께 버려졌다.
“무슨 노후가 이러냐 싶었지.
딸을 원망하기도 했어.
근데 아픈 아내가 눈앞에 있는데,
어쩌겠어…”
그냥 살아지는대로 살았다.
앞에 닥친 일부터 하나씩 해결했다.
1000만원 가지고 들어갈 집을 알아보고,
정년없는 기술직으로 월급을 받을 수 있는게 어디냐 하면서...
가장은 그래야했다.
월세가 오르자 결국 대출을 안고 집을 샀다.
한참 올라가던 집값은 지금 내려왔지만
“이게 어디냐, 감사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제는 시골로 간다.
작은 집과 마당, 연금 두어 개면
살아갈 만하다며 웃으셨다.
“살다 보니 살아지데. 다 지나가더라고.”
어르신의 말은 잔잔했지만 깊었다.
60대 중반, 새로 시작하는 마음이
좋기만 했을까...
남의 시선, 아내에 대한 죄책감,
미안해하는 딸을 향한 안쓰러움이 겹겹이 괴로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끝내,
“버텨준 아내와 딸이 고맙다”고 하시는 표정은 따뜻했다.
잔금 정리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에
어르신은 웃으며 덧붙였다.
“바늘귀만 한 희망이라도 보이면 살아가는 거야.
살아내는 이유는 분명히 있어.”
어르신의 시골살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오늘, 집을 통해 사람을 다시 만났다.
기억에 오래 남을 좋은 분이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