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사람을 품다 12

그 집은, 기필코 지켜야 할 마지막자리였다

by 꿈부

그 집은, 기필코 지켜야 할 마지막 자리였다.


말 그대로 상승장이다.
단지마다 거래량이 늘고 있다.
누군가는 더 오르기 전에 사두자며 마음을 다지고,
누군가는… 더는 버틸 수 없어 밀려난다.


아침부터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이 상승장에서 가장 속상한 사람들은
이사할 여력이 없는 세입자들이다.


“여기서 우리 집 광고 올렸어요?”


60대 부부와 30대 후반 딸이 함께 사는 집.
집주인 말로는 이 분들, 벌써 10년 넘게 이 집에서 살았다고 했다.

10년 전, 하던 일이 잘못돼 밀려오듯 들어왔던 집.
처음엔 잠시 머물다 갈 줄 알았다.
그러나 곧, 아내가 병을 앓게 되고, 뒤이어 남편도 병이 찾아왔다.
그럼에도 그들은 일을 놓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애쓰며
겨우겨우 일상을 붙잡은 그 집이었다.


그런 세입자가
화가 가득한 얼굴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기서 우리 집 광고 올렸어요?”

뾰족한 말투,
상처받은 마음이 먼저 튀어나온다.
돈에 다치고,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선
늘 그 모서리가 먼저 보인다.


지켜야 하는 자리

사연은 이랬다.
집주인이 “혹시 살 의향이 있냐”라고 물었고,
세입자는 “그 가격이면 안 사요”라고 쏘아붙였다고 한다.
기분이 상한 집주인은 바로 매물 광고를 요청했다.

세입자는 마지막 보루를 잃을까 두려운 사람이고,
집주인은 자신의 재산권을 행사하는 사람이다.
누가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그저 속상한 현실이었다.

“선생님, 이걸 어떻게 풀어드리면 좋을까요?”

세입자는 도와달라고 했다.
하지만 제안한 가격 폭은 너무 컸다.
나도 쉽게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난 세입자에게 말했다.
“이 가격이면 정말 급매입니다.
지금이라도, 이 집을 사세요.”

지금이 아니면, 이 급매의 기회는 다른 사람에게 가고,

선생님은 다시 다른 월세집을 찾아서 이사를 해야 한다고.

돈을 어떻게든 모으고, 지인들에게도 잠시 손을 빌려서라도
‘기필코 지켜보라’고.

설령 나중에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다시 팔게 되더라도
2~3천만 원의 수익은 날 수 있는 가격이었다.

해볼 만했다. 이 집이 마지막이라면.

세입자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고, 찾았다.


‘엄마, 우리 또 이사 가야 돼?’

그 순간, 오래전 기억이 겹쳐졌다.
2007년이었다.
지방의 신축 아파트 전세 8천만 원에 살다가
수원 영통으로 이사 왔다.
24평 구축. 천만 원을 보태 들어왔다.

아쉽지만, 그래도 감지덕지한 집이었다.
그런데 4년 뒤,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나가달라 했다.

신생아였던 아들을 안고, 나는 많이 울었다.
이 집을 떠나 더 좋은 곳으로 매수해서 가는 게 아니라,
더 나쁜 조건의 전셋집으로 밀려나는 상황.
그날의 무력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결심했다.
‘나는 기필코, 내 집을 갖겠다.’
아이에게 그런 기억은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나의 이사 이력은 주민등록 초본 세 장을 넘긴다.
그중 내 집을 갖고 이사한 건 딱 두 번.
정착은 그렇게 더뎠고, 그만큼 절실했다.

일찍 안정을 찾았더라면 어땠을까.
하지만 그 시절의 기억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 세입자의 결심이 남일 같지 않다.
나는, 누구보다 그 마음을 안다.


집은 벽과 지붕이 아니다

집은, 삶을 붙드는 마지막 선이다.
누군가에겐 재테크 수단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밀려나지 않을 권리’ 그 자체다.

그 집을 지키려는 결심.
그 벼랑 끝의 마음.
오늘도 누군가는
기필코, 집을 지켜내려 애쓰고 있다.


누군가에겐 집이 재산이지만,

누군가에겐 마지막 피난처가 되기도 한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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