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기억은 세대를 건넌다
돈 없으면 서럽다.
그리고 그 서러움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대학 졸업반 딸이 중2 아들에게 말했다.
“누나들은 미술학원 번갈아서 다녔어.
넌 하고 싶은 거 돈 걱정 안 하는 거, 그거 당연한 거 아니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멈췄다.
그 시절의 미안함이,
시간을 건너 다시 내 앞에 서 있었다.
딸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때 칼라믹스 미술학원 가고 싶어서,
밖에서 선생님이랑 아이들이 만드는 거 몰래 보고 왔었어.”
그 장면이 눈앞에 그려졌다.
유리문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는 어린 딸.
손끝으로 문턱을 만지며,
입술을 꼭 다문 채 안쪽을 바라보던 그 모습.
‘나도 저기 안에 있고 싶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이들은 어렸고,
친정은 가난했다.
우리 부부의 맞벌이 월급은
늘 여러 갈래로 나뉘고 찢기고 부족했다.
친정 부모님은 번갈아 편찮으셨고,
동생들의 학비와 생활비는
깨진 바가지처럼 아무리 채워도 새어나갔다.
그 시절의 나는 늘 빠듯했다.
생활비와 전세금, 대출이자, 병원비, 학원비...
돈은 들어오자마자 사라졌다.
숨 쉴 틈도 없이,
그날그날을 버티는 것이 전부였다.
아이의 꿈보다 생계가 먼저였다.
그게 현실이었고,
그 현실은 사랑으로도 덮이지 않았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그 아이가 동생에게 말했다.
“돈이란 건 그냥 생기는 게 아니야.
누군가의 희생과 선택 위에 있는 거야.”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차올랐다.
한때 그토록 부족했던 지난날이,
이제는 아이의 가치관이 되어 있었다.
그 시절의 쪼들림이,
아이의 마음에 상처로만 남은 게 아니라
사람을 단단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된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오래된 죄책감이 조금은 녹는 걸 느꼈다.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했구나.’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돈은 여전히 어렵고,
삶은 여전히 만만치 않지만
나는 안다.
부족함 속에서도 사랑을 잃지 않았다는 걸.
그 마음이 있었기에,
아이들이 지금 이렇게 자랄 수 있었다는 걸.
“사랑은 돈보다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나는, 다시 살아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