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살아내기로 했다 24

친정엄마와 거리두기

by 꿈부

친정엄마와 거리 두기를 한다,
해야 했다.

올해 여든 하나.
엄마의 나이가 들고 기운이 쇠하면
마음도 부드러워질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더 굳어졌고,
말은 더 괴팍해졌다.


엄마는 우리 다섯 남매에게
한 번도 말을 예쁘게 하지 않았다.
5남매를 키우느라 고생하신 걸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 노고에 대한 대가를 끝없이 요구한다.


“넌 엄마네 집에 오면서 얼굴 표정이 왜 그러니?”


엄마 앞에서는 늘 조증 환자처럼 웃어야 한다.
말을 조금만 덜 하면 바로 이런 말이 돌아온다.


나는 다섯 남매의 장녀다.
스무 살 대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쉼 없이 했다.
그 돈의 대부분을 엄마에게 드렸다.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믿었다.

엄마는 늘 말했다.
“네가 잘해야 동생들이 따라 잘한다.”
“네가 엄마한테 잘하는 걸 보고 동생들도 배운다.”

그 말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내 안에 스며들었다.
요즘 말로 하면 가스라이팅이었다.
안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었다.


열한 살의 나에게 엄마는 말했다.
“엄마가 서울 가서 돈 벌어올 테니,
네가 동생들 밥 해서 먹이고 씻기고 챙겨라.”

그 밤의 공포를 잊지 못한다.
3일 만에 엄마가 돌아오긴 했지만,
나는 엄마가 다시 떠날까 두려워
더 많은 집안일을 하고 더 열심히 공부했다.
엄마를 덜 힘들게 하려고.
그 마음이, 그 두려움이 내 안에 아주 깊이 스며들었다.


결혼한다는 말을 했을 때, 엄마는 말했다.


“네가 우리 집에 뭘 해놓은 게 있어서 결혼을 하니?”


다른 집 딸들은 집을 사주고 간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난 그때 친정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벗어나지 못했다.

엄마는 계속 내게 의지했다.
“셋째가 카드 빚이 있단다.”
“막내가 사업을 한다는데 돈이 필요하대.”
“조카가 방을 구하는데 네가 좀 도와줘라.”
그럴 때마다 화가 나면서도 결국 돈을 보냈다.
안 할 수 없게 하는 힘이 있었다.
죄책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돈이 생기자마자 엄마 집을 사드렸다.
그럼에도 엄마는 여전히 내게 폭언을 했다.
말투, 표정 하나까지도
자신의 마음에 들게 만들길 원했다.

나는 50이 넘어갔다.
갱년기보다 먼저 찾아온 건,
이 관계를 부수고 싶다는 분노였다.

엄마는 늘 말했다.
“생색낼 거면 오지 마.”
“더럽고 치사해서.”
“모든 불화의 원인은 너야.”

악담이었다.
억울했고, 화가 났고,
그 말들이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인이 되어
엄마의 눈치를 보던 그때로.


이제는 안다.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통제였다.
그건 나를 위한 희생이 아니라
엄마 자신을 지탱하기 위한 방식이었다.

엄마는 자신의 감정풀이를 자식에게 쏟아부었다.
그 상처는 50이 넘은 지금까지도
내 안에서 엄마의 그림자를 만들었다.


이젠 행복하고 싶다.
불행한 말들, 부정의 말들 속에 있고 싶지 않다.
그래서 당분간은 엄마에게서 감정의 거리 두기를 하려 한다.
미워서가 아니라, 이제는 나를 지키고 싶어서다.


엄마를 바꾸긴 어렵다.
여든 하나의 어른을 어떻게 바꾸겠는가.
그저 그분의 언어를
내 안에 더 이상 들이지 않기 위한 조치다.

미안하지 않아도 된다.
효녀가 아니어도 괜찮다.
나는 엄마의 인생이 아닌,
나의 인생을 회복하며 살아가고 싶다.


이젠 안다.
나에게 상처를 준다면,
가족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는 걸.
그게 부모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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