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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세윤 Mar 09. 2020

7. 고전이 된 슈퍼히어로 필름

코드2. 신화는 영웅의 자각으로부터 시작된다

초창기 슈퍼히어로 영화라하면 1978년 개봉해 10년간 크리스토퍼 리브가 주연한 슈퍼맨 시리즈와 그 뒤를 이어 1989년부터 1997년까지 이어진 배트맨 시리즈 꼽을 수 있다. 워너브라더스는 두 시리즈를 통해 슈퍼히어로 코믹스가 어떻게 블록버스터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는지 보여줬다. 슈퍼맨 시리즈는 액션에 집중한 전형적인 블록버스터였다. 반면 배트맨 시리즈는 팀 버튼을 통해 어둡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고, 조엘 슈마허와는 밝고 만화적 색채를 담아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슈퍼히어로물은 액션을 중심으로 영화적 스타일이나 화려한 배우진을 통해 볼거리를 제공하는 메이져 스튜디오의 관객몰이용 블록버스터 장르로 전락했다. 

급기야 1997년 제작된 ‘배트맨과 로빈’은 아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영화를 만들라는 스튜디오의 지나친 요구에 유치하기만한 졸작이 됐고, 흥행에 참패하며 후속 시리즈들은 취소됐다. 


식상해진 슈퍼히어로물에 차원이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 건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시리즈였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원작 스토리라인에 담긴 무게감 있는 주제와 연기력으로 정평난 크리스찬 베일 등 명배우를 적극활용하며 허황됨으로 가득하던 슈퍼히어로 장르의 문법을 철저히 전복시켰다. 우선 블록버스터 관점에서 보면 다크나이트는 심장을 울리며 전개되는 한스 짐머의 음악처럼 박진감 넘치는 액션 히어로 영화다. 하지만 기존 슈퍼히어로물처럼 판타지로 물든 세계관이나 화려한 슈퍼파워에만 치중해 액션 시퀀스를 만들진 않는다. 시카고를 중심으로한 어두운 배경과 시카고 다운타운내 홈리스족 거주지 등을 활용해 창조한 공간은 핍진성 짙은 범죄의 도시를 그려낸다. 그 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액션 시퀀스에 배트텀블러와 배트맨 슈트 등 화려한 무기가 강렬한 색채를 더한다. 

최첨단이긴 하지만 다국적 기업 군수사업부라면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한 현실성 있는 무기다. 기존 슈퍼히어로물 보단 007같은 첩보물을 더 연상시킨다. 특히 배트텀블러는 실제로 움직일 수 있도록 신차 개발과정과 비슷한 수준의 공을 들여 제작했다고 한다. 판타지적 요소가 배제되고 리얼리즘에 입각한 새로운 슈퍼히어로물이 탄생한 것이다.


드라마 관점에서 다크나이트는 선악의 대립이라는 지극히 고전적 주제를 다룬다. 하지만 기존 슈퍼히어로물이 절대선과 절대악의 대립을 통해 단편적인 캐릭터만 생산한 반면 크리스찬 베일의 베트맨은 다차원적이다. 그의 여정은 부모님의 죽음과 함께 시작된다. 한편에는 복수를 갈망하는 증오 가득한 자아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어둠과 폭력을 두려워하는 자아가 있다. 배트맨은 이 두 자아가 충돌하며 분노와 두려움 속에 탄생한 어둠의 페르소나다. 그는 악 위에 군림해 두려움의 상징이 되려 한다. 

그러기 위해선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법과 정의를 초월해 스스로도 악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악을 품지 않고 선 악에 대항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한 고담시의 모순적 상황 때문이다. 선악의 경계는 모호하고, 악의 응징에는 도덕적 딜레마가 수반된다. 크리스찬 베일은 이 모든 인간적 고뇌를 억만장자 브루스 웨인과 어둠의 비질란테 베트맨 사이에서 역동적으로 녹여낸다. 억만장자와 가면을 쓴 슈퍼히어로란 극단적 설정이 있긴 하지만 그가 풀고자하는 갈등은 두려움, 정체성, 정의와 같이 지극히 근원적인 인간조건이다. 허황되고 과장된 스토리가 아니라 현실성 짙은 드라마인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블록버스터와 드라마라는 두가지 관점 모두에서 슈퍼히어로 장르를 스토리텔링 효과를 증폭시키기 위한 장치로 적극활용한다. 액션 시퀀스는 배트맨의 최첨단 무기를 통해 더욱 화려해진다. 압도적 외관을 자랑하며 탱크처럼 돌진해 건물벽이건 트레일러 트럭이건 육탄전으로 날려버리는 텀블러나, 텀블러에서 분리되어 앞뒤 바퀴에 독립적으로 결합된 엔진을 활용해 직각으로 방향을 꺽고, 180도 회전을 하는 등 묘기에 가까운 구동을 보여주는 배트포드는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긴장감 넘치는 액션 시퀀스를 만든다. 드라마는 배트맨의 코스튬과 이중 페르소나를 통해 더욱 아이러닉 해진다. 정체성 혼란과 정신분열적 성향을 표현하는데 있어 검은 박쥐 가면과 망토보다 더 훌륭한 장치가 또 어디 있을까. 

배트맨 뿐이 아니다. 파멸을 통한 극단적 갱생을 추구하는 라즈알굴, 무의식속 공포에 기생해 악행을 펼치는 스캐어크로우, 철저한 무질서를 지향하는 조커, 고담시의 영웅 화이트 나이트에서 빌런 투페이스로 타락하는 하비덴트, 절대권력에 입각한 전제주의적 질서를 만들려하는 베놈 등 슈퍼히어로물이기에 가능한 빌런 또한 풍부한 상징성으로 드라마에 깊이를 더한다. 결국 크리스토퍼 놀란은 단순히 한편의 잘 짜여진 슈퍼히어로 무비를 만든게 아니라, 슈퍼히어로란 장르적 요소를 통해 슈퍼히어로가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독창적인 마스터피스를 만든 것이다. 핍진성 짙은 액션시퀀스와 다양한 상징으로 가득한 깊이 있는 드라마는 다크나이트 시리즈를 시간과 유행을 초월한 고전의 반열에 올려 놓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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