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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세윤 Mar 18. 2020

8. 슈퍼히어로 비긴즈

코드2. 신화는 영웅의 자각으로부터 시작된다

명장 크리스토퍼 놀란이 본 슈퍼히어로의 탄생과정은 어땠을 까. 그는 영웅탄생의 기원을 감마선 노출이나 우주적 혈통에 두지 않는다. 그의 영웅은 두려움과 상처를 품고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는 한 인간의 고뇌에서 출발한다. 그 시작점을 다룬 영화가 ‘배트맨 비긴즈’다. 타이틀 그대로 배트맨의 탄생이다. 앞서 슈퍼히어로의 본질은 갈등에 따른 선택과 행동에 따른 변화라 말했다. 배트맨 비긴즈 또한 이 공식에 충실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는 중국 어느 변방의 감옥에서 시작된다. 감옥에 갖힌 브루스 웨인은 인생의 나락까지 떨어졌다. 부유한 집안의 외동아들로 태어났지만 부모는 타락한 고담시의 부랑자 칠에게 살해당했다. 브루스는 칠같은 부랑자에게 범죄를 부추긴 범죄집단 우두머리 팔코니에게 복수하려 했지만, 팔코니에게 조롱만 당한 체 비참히 쫓겨난다. 그 후 수년간 브루스는 세상을 떠돌며 방황한다. 그리고 묻는다. 왜, 무엇을 위해 그의 부모는 죽어야 했을 까? 칠이 부랑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를 침몰시키며 칠을 빈털터리로 만든 탐욕스런 기업가일까, 칠의 손에 총과 마약을 건낸 팔코니일까? 브루스는 부모의 죽음에 복수하려 하지만 복수의 대상이 누군지조차 모른다. 무지는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맹목적 분노와 폭력이 된다. 어린시절 우물에 빠졌던 자신을 공격한 박쥐떼처럼 말이다. 브루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 두렵다. 

사실 브루스는 칠과 별반 다를게 없다. 칠도 두려웠을 것이다. 누군가가 침몰시킨 경제 때문에 실업자가 됐고 돈을 구할 방법은 없다. 자신의 삶이 왜 이리도 핍박해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다른 한편엔 화려한 차림으로 한가로이 오페라를 보러 가는 행복한 가족이 있다. 브루스 웨인의 가족이다. 칠은 자신이 가질 수 없는 모든 삶, 자신이 빼앗긴 모든 행복을 가진 그들을 증오한다. 사회에 분노하고 인간의 탐욕에 분노한다. 브루스가 칠을 증오하고 칠 같은 부랑자를 만들어낸 고담시에 분노하듯 칠도 자신을 만들어낸 고담시에 분노한다. 결국 고담시에 대한 분노가 브루스의 부모를 살해당하게 만든 것이다.

무지와 두려움에 방황하는 브루스에게 나타난 건 라즈알굴이었다. 라즈알굴은 ‘리그 오브 섀도’라 불리는 조직의 수장으로, 고대 로마나 콘스탄티노플처럼 타락한 도시를 정화시켜 정의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라즈알굴은 브루스에게 범죄와 싸워 이를 정복하려면 단순히 싸움꾼이 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이상’되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힘을 넘어 감히 대적할 수 없는 힘과 사명감을 갖춘 두려움의 상징으로 군림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우선 자기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브루스는 라즈알굴을 따라 자신의 두려움을 정복하기 위한 여정을 나선다. 

긴 훈련의 마지막 단계에서 브루스는 두려움을 극대화하는 환각제를 들이킨다. 라즈알굴은 검은복장을 입고 닌자무리와 함께 브루스를 공격한다. 무의식속에 잠재된 부모님의 죽음과 두려움의 원형인 박쥐떼가 그를 엄습한다. 브루스는 닌자무리에 섞인 라즈알굴을 찾을 수 없다. 누가 진짜일까? 브루스를 공격하는 것은 자신의 두려움이자, 두려움으로 분열된 자아다. 공포를 정복하고 스스로 두려움이 되기 위해선 두려움의 허상을 뚫고 본질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라즈알굴과 생사를 건 혈투 끝에 브루스는 감각을 정복하고 훈련을 통과한다.

훈련을 통과한 브루스에겐 선택의 순간이 주어진다. 라즈알굴은 브루스에게 범죄를 저지른 한 농부의 목을 치라 명한다. 라즈알굴에게 범죄의 정화란 처형이었다. 구원 불가능한 악의 뿌리를 제거해버리고 새로운 씨앗이 싹트게 하는 것이다. 라즈알굴은 브루스에게 농부를 처형한 뒤 고담시로 돌아가 리그 오브 섀도와 함께 도시를 파멸시킬 것을 명한다. 브루스의 부모를 살해했던 타락한 도시를 구원할 길은 완벽한 정화, 즉 도시의 파괴밖에 없다고 말한다. 라즈알굴은 그 일을 고담시의 상징적 존재인 웨인일가의 상속자 브루스가 실행함으로써 고담시가 회복 불가능한 파멸을 맞을 수 있다고 믿는다. 라즈알굴의 말을 들으며 농부의 목에 칼을 겨눈 브루스는 갈등한다. 칼을 들어 내리치면 모든 게 끝나지만 쉽게 칼을 들 수 없다. 그리고 순간 깨닫는다. 그는 처형자가 아니다. 그가 진정 원하는 건 죽음이나 파멸이란 극단적 방법을 통해 범죄를 단절시키는게 아니라 교화시키는 것이다. 그는 범죄를 억누르는 공포의 상징이 되는 게 아니라 범죄는 싸워 이길 수 있고, 극복될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 되고 싶다. 브루스는 결국 농부에게 겨눴던 칼로 라즈알굴에 대항하는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고담시로 돌아와 부모님을 살해하고 그를 나락에 몰아넣었던 고담시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사실 브루스의 아버지 토마스 웨인도 고담시를 구하고자 했다. 토마스 웨인은 이상주의자였다. 경제공황의 시기에 그는 솔선수범하여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을 부활시키려 했다. 고담시와 웨인 엔터프라이즈를 관통하는 매트로 열차 또한 대중에게 싸고 편리한 이동수단을 제공하는 한편 고담시 재건을 위한 영감을 주기 위해 건설한 것이다. 그는 그런 노력을 통해 지도층을 움직여 고담시를 타락시키는 가난과 배고픔을 막을 수 있을 거라 봤다. 하지만 토마스 웨인은 실패한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담시의 상황은 나날이 악화됐고, 결국 토마스 웨인은 빈곤이 만들어낸 부랑자 칠에게 살해된다. 그의 선행이 고담시의 파멸을 늦추긴 했지만, 그가 바랬던 만큼 사회의 경종을 울리는 자극제가 되진 못했다. 자극제가 된 건 오히려 그의 비극적 죽음이었다. 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지도층들이 고담시를 구하고자 발벗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근본적으로 도시를 치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고담시의 심장부는 여전히 썩어 들어가고 있었고, 지도층 몇몇의 선행이 도시 전체를 구원해주진 못했다.브루스는 자신의 정체성을 라즈알굴의 극단적 정화와 토마스 웨인의 이상주의 사이에서 찾는다. 그는 토마스 웨인이 했던 것처럼 사회의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 하지만 순수히 모범을 보이며 따라오게 하는 게 아니라 라즈알굴처럼 두려움과 자극을 적극 활용한다. 고담시 곳곳을 누비며 악을 처벌하고 어둠의 상징이 되어 사람들을 움직인다. 라즈알굴이 믿었던 것처럼 범죄엔 극약처방이 필요하다는 걸 인지해 인간의 나약함을 벗은 상징적 존재, 원형적 공포를 담은 영원불멸의 상징, 박쥐가 된다. 하지만 라즈알굴처럼 처형과 파멸을 단행하진 않는다. 브루스는 그의 아버지처럼 범죄와 빈곤이 극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고담시민 개개인에게 불어 넣고자 하고, 그 희망의 씨앗을 싹틔우기 위해 두려움이란 자극을 활용하는 것이다. 결국 브루스는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를 통해 악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깨닫게 된다. 그 깨달음은 고담시를 구원하기 위한 긴 여정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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