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란바토르, 게르촌, 도시와 유목의 경계

by 성세윤

출발 일주일 전쯤이었다. 막상 아침 비행기를 예약하고 나니 울란바토르에서 뭘 할지가 고민이었다. 후기를 찾아봐도 수흐바타르 광장과 광장 인근 사원 그리고 국영 백화점 정도가 전부였다. 조금 색다른 건 없을까 인터넷을 찾다 게르촌이 눈에 들어왔다.


20240918-DSC06888.jpg


게르촌은 울란바토르 외곽에 형성된 난민촌이다. 최근 기후변화로 극심한 한파와 가뭄이 반복되는 '주드' 현상이 빈번히 발생했다. 몽골의 유목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고 수많은 유목민들이 생계를 위해 울란바토르로 몰려왔다.

한편 울란바토르는 울란바토르 대로 2000년대 이후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도시 기반시설이 부족해졌다.

외부에서 유입되는 유목민과 내부에서 증가하는 주민을 수용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도심 외곽의 황무지에 게르를 설치하고 살기 시작했다. 비공식 정착촌은 그렇게 생겨났다.


20240918-DSC06879.jpg


허름함을 감추려는 듯 화려하게 도색한 판잣집과 마당 한편에 세워놓은 게르가 한 쌍을 이뤘고, 그 공간에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삼대 이상이 같이 사는 가구가 다수였다.

일몰과 함께 게르촌을 담아낸 사진들을 보면 알록달록한 지붕과 하얀 천막들이 언덕을 빽빽이 채우고 있는 모습에서 전통과 현대, 자율과 소외, 희망과 체념이 묘하게 뒤엉켜 울란바토르 게르촌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게르촌 정도면 하루를 투자할 가치는 충분히 있어 보였다. 바로 여행사에 연락해 따로 투어를 예약할 수 있을지 알아봤다. 일몰 시간에 맞춰 개인 투어 차량을 예약하는데 드는 비용은 5만 투그릭. 한화 2만 원에 게르촌 풍경을 담을 수 있다면 고민의 여지는 없었다.


---


다소 어두운 피부와 깊은 주름에서 몽골 특유의 순박함이 베어나는 아주머니 기사분이 투어 차량을 몰고 온 건 오후 4시쯤이었다. 스마트폰에서 게르촌 사진을 찾아 보여주니 아주머니는 웃으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도심 외곽으로 빠져 흙먼지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지나고 언덕 하나를 넘으니 알록달록한 풍경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투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내가 보고 싶었던 건 게르가 빽빽이 들어선 언덕이 해가 떨어지는 방향과 정확히 일치해 일몰의 색감이 게르 지붕을 따라 극적으로 펼쳐지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게르촌을 조망할 수 있는 언덕을 찾는 대신 게르촌 중심까지 깊숙이 차를 몰고 들어가 버렸다.


20240918-DSC06837.jpg
20240918-DSC06859.jpg

30분 남짓 지나 도착한 게르촌은 여느 시골 마을과 다름없는 진부한 풍경이었다.

여전히 강렬한 햇살에 눈살을 찌푸리며 동네를 두어 바퀴 돌았다. 어딜 봐도 일몰을 감상할 만한 곳은 찾을 수 없었다. 당장 차로 돌아가 여기서 무슨 일몰을 볼 수 있냐고,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 거냐고 아주머니에게 따지고 싶었다.

순간 피식하고 너털웃음이 나왔다. 소일거리 삼아 기사 아르바이트를 하는 몽골 아주머니가 게르촌 일몰 포토존을 무슨 수로 알겠는가.

헛웃음과 함께 어깨에 힘이 빠지니 주위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좁고 울퉁불퉁한 흙길과 담장을 대신한 철망과 나무판자 그리고 무심히 놓인 고철과 수조들이 낡은 외투처럼 펼쳐져 있었다. 한 손으론 눈 위로 차양막을 만들고 다른 손엔 카메라를 들고 동네를 거닐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풍경을 담기 시작했다.


20240918-DSC06894.jpg
20240918-DSC06929.jpg
20240918-DSC06899.jpg
20240918-DSC06924.jpg
20240918-DSC06948.jpg


게르촌 안의 풍경은 언덕 하나 정도 거리에서 담아낸 사진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형형색색의 게르 지붕이 거대한 모자이크판처럼 빽빽이 들어찬 수채화 풍경은 사라지고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낡은 사물들로 가득한 초상만 남았다. '풍경'이라기 보단 '삶'에 더 가까운 모습. 그래서 더 생생하고 적나라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아내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물을 파고들어 그 본질을 캐낸다는 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사물이 풍경으로 추상화된 모습을 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작업이었다. 난 게르촌 안에서도 여전히 게르촌 밖에 머물고 있는 이방인일 뿐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


터벅터벅.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길을 걸었다. 골목을 몇 번 돌고 언덕 하나를 오르니 어느 순간 담벼락 너머로 확 트인 공간이 나왔다. 처음엔 그저 야생풀로 뒤덮인 언덕이려니 싶었는데 그 사이로 불규칙하게 세워진 돌덩이들이 보였다.


20240918-DSC07001.jpg


직사각형의 도미노 조각처럼 세워진 돌덩이는 묘석이었다. 무심히 흩어진 묘석의 행렬은 언덕 꼭대기까지 이어졌다. 언덕 전체가 하나의 공동묘지였던 것이다.

처음부터 공동묘지로 기획된 공간의 모습은 아니었다. 묘석의 크기나 형태 그리고 묘지의 위치까지 모두 제각기였다. 빈곤과 이주 그리고 도시화의 불균형 속에 게르촌의 삶이 형성됐듯 그들의 죽음 또한 언덕을 따라 조용히 뿌리를 내린 것 같았다. 도시의 중심에서 잊히고 소외된 이들의 삶과 죽음이 언덕을 따라 끝없이 엮여 있었다.


20240918-DSC06996.jpg
20240918-DSC07007.jpg
20240918-DSC07024.jpg


순간 게르촌과 묘지 사이로 태양이 황금빛을 발하며 저물어갔다. 빛이 마법을 부리며 언덕은 도시와 빈민촌,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의 상징으로 승화됐다.


20240918-DSC07023.jpg
20240918-DSC06988.jpg
20240918-DSC07027.jpg


화, 금 연재
이전 04화울란바토르, 수하바트르 광장, 꿈과 현실의 경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