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아침. 일행은 아직 잠들어 있었지만 조용히 짐을 챙겨 숙소를 나섰다.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하기 전 울란바토르의 아침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숙소 문을 열자 새벽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울란바토르의 기척이 바람에 실렸다. 도로는 한산했고 멀리 여명이 깃든 하늘에 손톱처럼 작은달 하나가 걸려 있었다.
울란바토르 내에서 일출을 볼 만한 장소가 특별히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제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보니 광장 건너편에 있던 국립놀이공원이 그나마 괜찮을 것 같았다. 넓은 녹지 안에 자리 잡고 있고 중앙에는 인공호수와 중세 성처럼 생긴 작은 건물이 있어 산책하기 좋아 보였다.
늑장을 부리며 출발한 탓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여명이 진하게 떠오르고 있었는데 광장과 사원을 지나고도 15분 정도는 더 걸어야 했다. 한참을 걸어가자 철재 울타리 너머로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놀이공원의 모습이 보였다. 진한 원색으로 칠해진 놀이기구와 다소 유치해 보이는 캐릭터들이 어우러져 복고풍 정취를 자아냈다.
모퉁이를 돌아 입구로 가려는 찰나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났다. 거대한 철문이 굵고 녹이 잔뜩 슨 쇠사슬에 묶여 있는 것이다. 젠장, 어쩐지 일이 너무 잘 풀린다 싶었다. 아무도 없는 새벽에 세상과 단 둘이 찬란한 아침을 약속했다고 믿으며 왔는데 그 약속이 일방적이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역시나 세상은 그리 쉽게 내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입구 앞에 가만히 서있을 순 없었다. 공원 앞 고가도로 위로 햇살이 비치는 모습을 보고 바로 그쪽으로 뛰었다. 확실히 높은 곳에 오르니 시야가 트이며 한층 더 극적인 도시의 아침을 볼 수 있었다.
붉은 주황빛이 먼 동쪽 하늘 끝에서 번져왔고 높은 건물 유리창에 반사된 빛에 눈이 부셨다. 멀리 희뿌연 먼지 사이로 비치는 언덕도 인상적이었다.
햇살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공원 대관람차 위로 햇살이 내려앉고 있었다. 원색으로 칠해진 놀이기구가 더욱 화려해 보였다. 멈춰 선 회전목마와 바이킹은 새벽빛에 조용히 서 있었다.
아침햇살은 점점 강해졌고 놀이공원의 길고 낮은 그림자들이 하나둘씩 몸을 펴고 있었다.
순간, 무언가 시선을 자극했다. 멀리 보이는 공원 안에 움직임이 보이는 것이다. 뭐지? 자세히 보니 가벼운 조깅복 차림의 사람들이 공원 안을 뛰고 걷고 있는 것이다. 들어가는 길이 따로 있었나?
마음이 다시 급해졌다. 고가도로를 따라 뛰어내리고 닫혀 있던 철문을 지나 오십 미터쯤 더 가봤다.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났고 셔터가 내려진 매점과 매표소 뒤로 활짝 개방된 게이트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버렸다. 내가 봤던 철문은 쪽문이었고 정문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난 철문 앞에서 무언가 계시라도 받은 양 진지하게 좌절하고 있었는데 현실은 전혀 다른 곳에서 싹을 틔우고 있었다.
다행히 너무 늦진 않았다. 해는 이제 막 도심의 빌딩들을 뚫고 솟아오르고 있었다. 대관람차 뒤로 솟아오르는 햇살부터 인공호수에 비친 반영까지 생각했던 아침 공원의 모습은 모두 담아볼 수 있었다.
어제 게르촌과 공동묘지의 일몰 그리고 자이승 전망대의 야경에서 시작해 오늘 놀이공원의 일출까지. 무언가 시작부터 실망과 감동을 오가며 감정이 요동쳤다. 하지만 인공호수 앞에 서서 황금빛으로 물든 공원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고조됐던 감정들이 고요한 아침 풍경과 함께 잔잔해지는 듯했다. 무언가 극적인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전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