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캠프 위 별몰이와 해돋이

by 성세윤

똑똑. 건우와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9시예요. 나오세요."

주영이 빼꼼히 게르문을 열며 말했다. 한 손에는 플리스 담요를 들고 옆구리에는 돌돌 말아놓은 돗자리를 끼고 있었다. 게르 근처에서 별구경을 하자고 했었는데 벌써 시간이 다 됐나 보다.

밖에 나와보니 한나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뻣뻣히 서 있었다. 몇 걸음 다가가자 우리 인기척을 느낀 한나는 말없이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고개를 들었을 땐 온통 어둠뿐이었는데 곧 시야가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앞의 장막이 걷히듯, 어둠에 숨겨졌던 멋진 신세계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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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온통 별천지였다. 단지 “별이 많다”는 말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천상을 뒤덮은 깊고 짙은 검은 천 위에 수천 개의 바늘로 구멍을 내서 그 틈새로 무한한 빛들이 지상으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한 치의 흐림도 없고, 한 점의 인공빛도 없는 완벽한 어둠 속에서 별들은 그 어떤 조명보다 또렷하고 차갑게 반짝였다.

흩뿌려진 별무리 사이론 은하수가 수직으로 뻗어 게르 지붕 위로 곧게 떨어졌다. 강원도 산골에 올라 눈을 게슴츠레 뜨고 집중해야 그나마 먼지 덩어리처럼 겨우 보이던 그런 은하수가 아니었다. 하얀 별과 붉고 푸른 발광성운과 희뿌연 별구름이 또렷이 구분되어 별빛 하나하나가 하늘에 새겨진 듯 또렷이 보이는 은하수였다.

어쩌면 하늘이 이렇게 맑을 수 있을까? 별이란 게 이렇게 반짝이는 존재였던가?

우리 모두 그 자리에 서서 우두망찰 하늘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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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하늘 진짜 예술이다!"

한동안의 정적을 깨고 건우가 말했다. 윤설은 연신 '대박'을 외쳐댔고 한나는 입을 벌린 채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우린 그제야 마법에서 풀린 듯 게르와 조금 떨어진 곳에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잡았다. 캠핑의자도 펼쳐 놓았지만 의자에 앉는 이는 없었다. 다들 돗자리에 누워 시선을 하늘로 향했다.

나는 나 나름 마음이 급해졌다. 이 밤하늘이 카메라에 어떻게 담길지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센서 감도를 최대로 높이고 은하수가 보이는 곳을 향해 셔터를 눌러봤다. 결과물이 카메라 LCD 화면에 보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갔고 동시에 허탈한 기분마저 들었다.

'뭐야? 이렇게 쉽게 은하수가 찍힌다고?'

아무리 쳐다봐도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별자리를 공부하고 무작위로 테스트샷을 찍어봐야 겨우 위치를 알 수 있는 은하수였다. 센서 감도를 최대한 높이고 별의 움직임이 포착될 정도로 긴 시간 동안 노출을 해야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도 밝기와 색감을 보정하고 또 보정해야 괜찮은 사진 한 장 건질 수 있었는데. 그냥 대낮에 풍경사진 찍듯 눈에 보이는 대로 카메라 들이대서 찍을 수 있는 게 은하수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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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몇 장 찍어본 후엔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한 명씩 돌아가며 사진에 담아봤다. 비슷한 구도로 몇 장을 담은 후엔 카메라를 내려놓고 별을 즐겼다.

별은, 누군가에게는 미래의 방향이고 누군가에게는 잃어버린 기억이고 누군가에게는 사랑의 은유였다. 그날 밤 별들은 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많은 얘기를 들었다. 저 드넓은 우주에 우리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하지만 그렇게 작은 존재가 저 드넓은 우주를 인지할 수 있다는 건 또 얼마나 큰 축복인지. 우주와 내가 어떤 장엄한 물결로 하나가 되는 듯했다.




새벽 5시 반. 진동 알람에 화들짝 잠에서 깼다. 어젯밤 새벽에 일어날 거라고 건우에게 얘기해 놓긴 했지만 아직은 다소 서먹한 사이에 불편을 끼치긴 싫었다. 알람을 끄고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레 일어났다. 신발에는 발끝만 살짝 집어넣고 밤에 챙겨 놓은 카메라 가방을 들고 게르문을 열었다. 아직 어둡긴 했지만 멀리 언덕엔 주홍빛 여명이 올라오고 있었다.

원래는 캠프 울타리 너머까지 나가려고 했는데 게르에 비치는 여명빛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하얀 천막 위로 스며드는 여명빛은 신비롭기만 했고 난 그대로 캠프 벤치에 앉아 다채롭게 변하는 빛의 변화를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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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하늘이 깊은숨을 들이마신 듯 붉은 기운은 사그라들었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사막처럼 정적이 초원을 관통했다. 빛은 동쪽 언덕 방향 한 곳으로 집중되며 점점 강렬한 붉은색으로 타올랐다.

그리곤 어느 순간 언덕 너머에서 해가, 마치 누군가의 손에 떠밀린 듯 불쑥 솟구쳐 올랐다. 마치 오래도록 격렬히 끓어오르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터져 나온 불덩이처럼. 하늘은 붉게, 아니 금빛에 가까운 불그스름함으로 폭발했고 빛이 초원을 덮기 시작하자 게르의 희고 둥근 천막들은 빛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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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별, 일출. 몽골의 첫 밤이 별이었다면 첫 아침은 태양이었다. 몽골의 하루를 온전히 느끼고, 그 사이를 일주하며 무언가 가슴 벅찬 고요와 생동을 느낄 수 있었다. 아침 공기는 선선했고 풀내음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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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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