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빵 소화하기

김이 나는 보리빵을 겉피부터 살살

by 서정

엄마와 나는 올빼미처럼 대화한다. 가볍고 명랑한 낮의 대화와 달리, 숨겨두었던 속내는 대개 밤에야 나온다. 저녁을 먹고 TV를 보다 11시쯤 되면 엄마는 안방으로 자러 들어간다. 그때 따라 들어가면 침대에서 낮에는 못 나눴던 이야기들을 할 수 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결국 우리는 내 연애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곤밥 먹는 사람. 엄마는 내 전 남자친구를 그렇게 불렀다. 벼농사가 어려운 제주에서는 쌀이 귀했다. 하얗게 고운 쌀밥을 먹는 서울 사람은 자연스럽게 곤밥 먹는 사람이 된다. 곤밥 먹는 사람을 따라 상경했던 나는, 곤밥 먹는 사람과 헤어져 혼자가 되었다.


서울이 거대한 섬처럼 느껴지던 겨울, 제주로 내려가는 길을 망설였다.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었지만 반대로 마주할 자신이 없기도 했다. 만나고 나서 우리는 그 주제를 애써 피했다. 하지만 가로등 그림자가 숲처럼 번지는 침대에서, 우리는 올빼미처럼 숨겨둔 말을 꺼냈다. 엄마는 엄마의 보리빵을 탓했다. “내가 더 비싼 거 보낼걸 그랬져이…….”


우리 집 냉동실에는 늘 보리빵이 있었다. 쑥과 보리를 섞은 것, 팥소가 든 것도 있지만 우리는 주로 보리만 든 것을 먹었다. 갓 쪄서 김이 폴폴 나는 보리빵을 급하게 먹으면 입천장을 다 덴다. 쫀득한 겉피를 살살 벗겨 먹고, 한풀 식었을 때부터 베어 먹어야 한다. 밋밋하고 뜨거운 맛을 여러 번 씹다 보면 고소한 단맛이 올라온다. 단맛을 즐기려 하면 보리빵 한 개는 사라지고 없었다. 다음 보리빵을 먹어야 단맛이 이어졌다. 그렇게 두 개쯤 먹어도 소화가 금방 되어서 간식으로 자주 먹었다.


냉동실에 보리빵이 떨어질 때면 우리는 늘 가는 보리빵 가게로 향했다. 빵이 나오는 시간에 맞춰서 차를 몰고 갔다. 갓 나온 보리빵은 사자마자 먹고, 남은 보리빵은 소분해서 얼렸다. 냉동실을 열었을 때 하얗게 언 비닐 속 보리빵이 보이면, 슴슴하다가 달아지는 보리빵 맛에 입맛을 다시곤 했다.


연애가 끝나가던 8월,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내 손에 엄마는 보리빵 한 상자를 들려주었다. 전 남자친구 부모님께 드릴 선물이었다. 엄마는 오메기떡과 보리빵 사이에서 며칠을 고민했다. 퍽퍽한 떡보다는 소화가 잘 되는 빵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린 후에도, 구성을 어떻게 할지, 당일 아침에 살지 전날 살지 고심을 거듭했다.

엄마는 내가 공항으로 가기 몇 시간 전에 보리빵 한 상자를 사 왔다. 보리빵의 열기가 상자 안에 갇히면 혹시 상할까 봐, 상자를 열어 열기를 식히고 다시 포장했다. 포장하기 전에 혹시 머리카락이 들어갔을까 봐 보라색 돋보기안경을 끼고 보리빵 여기저기를 살펴봤다. 엄마는 내가 몇 번이나 확인해 주고 나서야 안심했다. 그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전 남자친구는 부모님이 잘 드셨다고 전해왔다.


그렇게 내 기억 속에서는 여름 이후로 잊힌 보리빵이었다. 엄마는 두터운 솜이불 솔기를 매만지며 보리빵의 싼 가격을 탓했다. 방이 어두워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어차피 내게 엄마 얼굴을 볼 용기는 없었다. 내가 매번 닦아주어도 금세 뿌옇게 변하는 보라색 돋보기안경을 끼고 한참을 보리빵 위로 고개 숙이고 있던 모습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코끝에서 위험 신호가 왔다. 목소리로 내 마음이 전해지기 전에 나는 올빼미들의 대화에서 도망쳐 나왔다.


엄마의 보리빵은 여름부터 겨울까지 내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내게도 전해진 그 마음은 목에 메여 내려가지 않았다.


그 여름으로부터 몇 번의 여름이 더 흘렀다. 이번 겨울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설레는 마음으로 예약했다. 엄마와 통화하면서 이번에 먹고 싶은 음식을 꼽아 놓았다. 제철 방어는 빼놓지 말아야 한다. 단골 가게의 뜨끈한 오리탕도 놓칠 수 없다. 그리고 오랜만에 냉동실을 열어 사라져 버린 보리빵을 찾아볼 것이다.


이제는 떠올려도 담담할 만큼, 목에 메였던 내 보리빵은 잘게 부서져 단맛만 남았다. 우리 엄마의 보리빵은 어떨지. 이번 겨울, 엄마와 마주 앉아 모락모락 김이 나는 보리빵을 겉피부터 살살 뜯어먹고 싶다.

제주의 밤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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