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인생을 살고 있는지
문득 내려다본 꽃다발이 낯설었다. 공연장 바닥에 둔 꽃다발은 몇 번이나 바스락거렸다. 지하철에서는 화사하기만 했던 노란 꽃들이, 강한 조명 아래에서는 제각기 선명했다. 길게 뻗은 가는 꽃잎을 하나씩 보았다. 이 꽃다발을 우리 집에 두면 어떨지 잠깐 상상했다. 나를 위한 꽃다발은 아니었지만.
한 해가 끝나가는 금요일에 나이가 비슷한 동료 선생님의 밴드 공연을 보러 갔다. 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들과 매년 한 번씩 하는 공연이라고 한다. 한 해 동안 모은 음악으로 하는 근사한 공연을 축하하고 싶었다.
선생님을 위한 꽃다발을 예약할 때 고민 없이 노란색을 골랐다. 학교에서 내 기분은 다양하다. 즐거울 때도 있지만, 지쳐 나가떨어지는 순간들도 있다. 반면 그 선생님은 항상 밝아 보인다. 급식실에서 아이들과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고, 복도에서 손잡고 걷는 모습을 보면 나도 함께 웃게 된다. 한겨울에도 따스한 봄 햇살 같은 선생님이다.
밴드 공연은 여느 공연과는 달랐다. 다들 곡마다 포지션을 돌아가면서 맡았다. 건반과 기타를 진지하게 집중해서 연주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자꾸 눈이 갔다. 선생님이 부른 노래는 에스파의 ‘Live My Life’라는 곡이었다. 악기 조율로 잠깐 비는 시간에 선생님이 던진 물음이 주말 내내 나를 붙잡았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을 살고 계신가요?”
나는 물음을 듣자마자 “아니요…….”하고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누군가 내 대답을 듣고 키득거리며 웃었다. 선생님은 말을 이어갔다. “저는 제 인생을 살려고 10년 동안 이 친구들과 합주하고 있어요. 여러분은 그런 일이 있으신가요?” 처음 들어본 그 음악은 가사도 멜로디도 좋았다.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뛰며 노래 부르는 선생님과 함께 뛰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공연장은 너무 좁았고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 노래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원곡을 다시 듣는데 내 귀에는 선생님의 노래가 더 좋았다. 겨울바람에 손과 발은 점점 차가워졌지만, 그 노래를 집 밖에서 몇 번이나 더 들었다. 당당한 선언 같은 노래가 좁은 공연장을 채울 때, 내 인생의 빈칸이 드러났다. 빈 곳 없는 원곡은 밋밋했다.
반짝반짝. 무대 위의 선생님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일 것이다. 평소보다 더 생기 있게 빛나는 눈과 자유로운 몸짓, 처음 듣는 힘 있는 목소리. 항상 화사해 보이기만 했던 선생님의 시간들이, 그날은 각자 다른 색으로 빛났다. 공연장에서 노래를 한껏 즐기고, 따뜻한 집 대신 공연의 여운을 택하면서도 나는 선생님의 학교 밖 인생을 질투했다. 모난 마음이 꽃들 사이에 담겨 갔을지 모른다. 그 밤길을 오래 걸었다.
어떤 질투는 ‘부럽다’라는 말 한마디로 옅어진다. 하지만 그날의 질투는 다르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싶은 것은 아닌 이 마음을 나는 가볍게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드러낼 수 없는 질투는 사라지지 않고 나를 찌를 것이다. 선생님의 내년 공연이 끝날 때는 꽃들 사이의 모난 마음을 걱정하지 않고 싶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나. 질투가 밝혀버린 이 빈칸은.
주말이 지나 월요일이 왔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었다. 알람을 끄는데 어두컴컴한 지금이 아침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한 해의 어디쯤에서 잃어버렸던 습관을 다시 찾아 조금 서둘러 집을 나섰다.
아이들이 오기 전, 텅 빈 교실의 불을 켜는 대신 책상 위 작은 스탠드만 밝혔다. 창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그 작고 환한 틈에 앉아 한참을 덮어 두었던 책을 펼쳤다. 다음 날 아침에는 나도 갖고 싶었던 노란 꽃다발에 관해 썼다. 공연장 조명 속에서 더 빛나던 그 꽃다발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