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풍경은 일생에 단 한 번이다
쿵쿵.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다들 외출한 친정집의 텅 빈 거실에서 나는 한참을 미뤄 둔 업무를 시작했다. TV 채널을 돌리다 소소하게 웃겨 보이는 여행 예능을 틀어 두었다. 예쁜 꽃이 그려진 엄마 취향의 잔에 커피를 타올 때까지는 여유로웠다.
그런데 마감이 내일인 보고서를 열어 보는 순간, 거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낮잠을 자야 할 것 같았던 여유가 공포 영화의 긴장감으로 변했다. 그것도 팔다리 하나쯤은 없어도 육상 선수만큼 잘 뛰는 좀비가 나오는 것으로. TV 속 웃음소리는 어느새 들리지 않고 내 손에서는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온몸이 비상벨을 울리고 있었다. 와, 진짜 망했다.
두 달 전에 제출 요청을 받은 보고서는 진작 열어봤어야 했다. 교감 선생님께 마지막 확인을 받아야 할 것도 있었다. 내일까지 확인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빈칸들부터 채워야 했다. 내리 5시간을 앉아 얼기서기 쓰기 시작했다. 좁은 노트북 화면을 두 칸으로 나눈 채 몇 년 치 자료를 이리저리 오갔다. 복사와 붙여넣기, 삭제와 저장을 바삐 오갔다. 보고서를 다 채우고, 교감 선생님께 확인을 부탁드리고 나서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 차갑게 식은 커피를 그제야 마셨다.
다음 날인 보고서 마감일은 제주 친정집에서 마지막 하루를 보내는 날이었다. 교감 선생님 연락은 오전 내내 오지 않았다. 엄마와 함께 오랜만에 아빠의 천혜향 과수원에 가볼까 싶었다. 불안한 마음은 나를 거실에 잡아두려고 했다. 와이파이만 되는 곳이면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으니 일단 출발했다. 거실 밖 세상은 좋았다. 어느새부터 줄을 서고 먹는다는 꽈배기는 느끼하지 않고 쫀득하고 말캉하니 맛있었다. 3년 전에는 나무젓가락 같았던 나무에는 어느새 열매가 달려 있었다. 꽈배기보다 맛있겠지만 먹는 게 아까운 귀한 천혜향이었다.
과수원에서 할 일이 더 있다는 아빠를 두고, 엄마와 나는 가까운 카페로 향했다. 로빙화. 대만 영화에서 이름을 따온 카페에는 곳곳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모든 풍경은 일생에 단 한 번이다.”
엄마가 결혼하고 나를 낳은 나이를 지나면서 나는 엄마의 다른 모습들을 본다. 그 근사한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면서도 그랬다. 엄마가 안쓰럽기도 했고, 답답하기도 했다. 코가 찡하게 고마워지는 순간도 있었다. 카페에서 나갈 때쯤 교감 선생님께 연락이 왔고 나는 드디어 공포 영화를 탈출할 수 있었다.
함께 꽈배기를 먹는 것. 천혜향 나무 앞에서 뿌듯해하는 얼굴을 보는 것. 다시 반복될 수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 그날 거실 밖 풍경은 내 인생에 단 한 번이었다. 불안은 마음 한구석에 접어 두고 거실 밖 세상에 집중하길 잘했다.
무언가 기도할 일이 있을 때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에서 인용된 기도문을 외우곤 한다. 되돌아보면 분별의 지혜를 갖추지 못했을 때가 많다. 바꿀 수 있는 것에 도전하는 것을 포기하고, 바꾸지 못하는 것 앞에서 오래 좌절했다. 공포 영화에서 눈을 돌려, 단 한 번인 풍경을 바라볼 수 있기를. 그런 지혜를 갖게 되기를 기도한다.
하느님, 저에게 허락하소서.
내가 바꾸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정심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늘 그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커트 보니것, 『제5도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