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끗이여? 구끗 가지고 그런거여?

낯선 세상이 가족이 되는 속도

by 서정

몇 분쯤 흘렀을까. 스마트워치는 내가 한참 잠에 들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돌침대는 딱딱했고, 베개에는 이름 모를 깔깔한 조각들이 가득했다. 옆자리 남편이 코를 곤 지도 한참 되었다. 아직 잠들지 못한 어른들 목소리가 문틈을 타고 거실에서 들려왔다.


남편의 왼쪽 어깨를 밀었다. 옆으로 누우라는 신호다. 신기하게 모로 누워서 자면 코를 덜 곤다. 나는 어떻게 몸을 눕혀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 설 차례를 지내고 나면 하루 종일 서울로 차를 타고 가야 할 텐데.


결혼하고 나서 두 번째 설이었다. 시조부모님 댁은 가까운 마트도 차로 10분을 달려야 하는 시골 마을 끝에 있다. 낮은 산들이 둘러싼 너른 들과 얼음처럼 맑은 물이 있는 곳. 차를 세우다 보면 한쪽 눈이 흐린 개가 늘 따라와서 반겨준다. 동네 강아지인데 얼쩡거리며 인사하고 돌아가곤 한다. 버석버석 마른 논에는 벼 밑동만 남아 있었다. 논이 끝나는 곳에 있는 숲이 겨울바람 따라 흔들렸다.


KakaoTalk_20260220_145332568_03.jpg 전남 시골 마을


“구끗이여? 구끗 가지고 그런거여?” 이른 저녁을 먹고 나서 섯다판이 열렸다. 나는 영화 <타짜>에서 예림이가 섯다를 했다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는 구경꾼이었다. 남편은 내일 사촌동생에게 줄 세뱃돈을 쥐고 참전했다. 구땡도 아닌 구끗으로 끝까지 패를 지킨 남편에게 어른들이 한마디씩 얹었다. 남편은 태연한 얼굴로 판돈을 가져갔다.


함께 구경하던 할머님은 누가 돈을 많이 따면 가져가 버려야겠다는 농담을 자꾸 하셨다. 식구들이 모두 섯다에 낯설어서 더 즐거웠다. 어이없는 실수들에 규칙을 잘 모르는 할머님과 나도 같이 웃었다. 작은어머님 패가 좋았는데 담요 위 천 원, 오천 원, 만 원을 쓸어가시면서 하는 말에 다들 와르르 터졌다. “아이고 은행원을 둬야겄어. 은행원을” 섯다판 밖에서 시댁 식구들 웃는 얼굴을 하나씩 봤다. 어색하게 인사 나누고 밥을 먹을 때는 못 봤던 얼굴들이었다.


느릿느릿 재치 있는 전라도 사투리가 좋다. 뭐든 짧게 말하는 제주 사투리와 다른 맛이 있다.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나는 “워메”하는 감탄사를 여러 번 따라 했다. 우리나라 지도에 제주와 서울밖에 없던 내게 전라도 시골 마을이 등장했다.


나도 다음번에는 돌침대에 누워 코 골며 자게 될까. 낯선 집이 편안해지는 순간은 언제 오게 될까.




[코골이 옆 메모]

잠들기 전에 남긴 단어와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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