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생선생님과 졸업생의 문장
나는 무른 선생님이다. 무른 선생님과 엄격한 선생님은 생활 지도를 할 때 차이가 난다. 6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내 생활 지도 방식을 다른 선배 선생님들과 비교할 수 있었다. 한 해를 보내며 내가 다른 선생님들보다 아이들에게 기회를 많이 주고 쓴소리를 덜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학교에서 제일 착한 선생님. 건너 들은 나에 대한 평가를 듣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서정샘, 애들 더 잡아야 해. 너무 착하게 하지 마." 하는 선배 선생님들 말을 그대로 따를 수가 없었다. 엄격하게 더 하고 싶다가도 내게 박힌 어떤 장면이 나를 붙잡았다. 한 해를 보내며 아이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내게 박히는 순간들이 있다. 여드름으로 고민하는 친구에게 슥 하고 누나의 클렌징폼을 내미는 장면. 신발 끈을 아직도 못 묶냐며 친구에게 면박을 주면서도 무릎 꿇어서 신발 끈을 묶어주는 장면. 졸업앨범 사진을 다 함께 볼 때 유독 통통하게 나온 사진을 보고 다들 웃자 그때 그 친구 약 먹고 있어서 그랬다고 감싸주는 장면. 그런 장면들이 떠오르면 나는 결국 물러졌다. 훈육은 단호하게, 일상은 다정하게 보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때의 나는 부족했다.
11월쯤 되자 예비 중학생인 아이들이 치는 사고는 더 복잡하고 깊어졌다. 졸업 전 두 달은 괴롭고 또 괴로웠다. ‘내가 생활지도를 제대로 못해서 아이들을 망친 건 아닐까.’ 너무나도 두려운 그 생각을 떼어낼 수가 없었다. 한밤중에 꿈에 나온 아이들 때문에 놀라 눈을 뜬 적도 있었다. 다시 잠들어야 하는데, 내일 학교에 가서 또 하루를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 버겁게 느껴져 울기도 했다. 졸업하고도 1월 내내 우리 반 아이들은 내 꿈에 나타났다. 꿈속에서 나는 늘 그들을 통제하지 못한 채 허둥댔고, 그 무기력함이 내게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3월이 되었다. 올해는 단호할 때는 단호하게, 다정할 때는 다정하게 잘해보자는 다짐으로 시작했다. 다행히 아이들이 잘 따라와 주었고 나도 내 나름의 균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6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며 생긴 마음속 생채기는 그대로였다. 부끄러운 마음과 잊고 싶은 마음이 자꾸 돌아왔다.
5월에 교직 인생 처음으로 교생선생님들을 우리 반에 받게 되었다. 교생선생님 세 분께서 우리 반에 와서 내 수업과 생활 지도를 참관하시고, 각자 4개의 수업을 직접 하셨다. 교생선생님들께서 우리 반에 오시기로 한 전 날 밤, 가슴이 두근거려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뭐라고 교생선생님을 받지, 모자란 모습들만 보여드리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컸다.
아니나 다를까, 교생선생님이 오시는 두 주 동안의 우리 반은 그림 같은 초등학교 교실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예쁘고 귀여운 모습 말고도 3학년답게 뽐내기 좋아하고 산만한 모습까지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야심 차게 준비한 시범 수업은 아이들 발표를 듣다 보니 정해진 시간을 넘기고 말았다. 아직은 멋진 선배의 모습을 보여드리기에는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또 알 수 있었다.
시범 수업이 아쉽게 끝나버린 저녁에 교생선생님 한 분께 연락이 왔다. 내가 수업을 할 때 아이들 발표를 듣고, 대답을 하는 모습에서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느껴졌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문자를 잊을 수 없다.
교직에 10년간 있으면서 정말 멋진 선생님들을 많이 봐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멋진 선배 선생님들과 거리가 멀었다. 멋진 수업 기술도 없고 수업 자료를 주말 내내 만들 열정도 없다. 카리스마로 아이들을 휘어잡지도 못한다. 다만 나는 아이들의 여러 면을 보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주고자 노력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는 선한 면이 있다고 믿었고, 아이들이 사회에는 부모 말고도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끼기를 바랐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꾸준히 노력한 것이 있다면 그것뿐이다. 모든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어느 정도든 매일 조금씩 발전할 수 있으니 그것을 눈치채고 사랑해 주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6학년을 졸업시키면서 내 신념 아닌 신념이 흔들렸다. 학년말이 될수록 점점 더 사고를 치는 아이들을 보며 괴로웠다. 믿어주고 사랑해 주는 것을 단호하고 엄격하게 훈육하는 것으로 대체해야 할지, 아니면 그 중간을 찾아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내가 노력해 온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빈약하고 의미 없게 느껴졌다.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운 마음을 떨치지 못할 때 교생선생님의 문자가 어찌나 고맙던지. 내 단호함이 부족했던 부분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나를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부분은 마음껏 뿌듯해하도록 해주었다.
5월 두 주 간의 실습 기간에는 스승의 날도 끼어있었다.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교실에서 교생선생님들과 다음 날 수업을 준비하던 중에 졸업생들이 찾아왔다. 그새 다들 의젓해진 느낌이었다. 용돈으로 산 커피를 손에 들고 온 아이도 있었다. 한 아이는 A4용지 가득 편지를 써서 가져왔다. 그 아이의 일기를, 글을 읽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편지를 받아보니 여간 뭉클한 것이 아니었다. 편지에 적힌 두 문장 덕에 더 뭉클했다.
우리는 매일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매년 종례 시간에 나는 '차렷, 인사!'같은 딱딱한 말 대신 위의 문장을 다 함께 읽는다. 아이들도 읽고, 나도 읽는다. 종례 시간에 아이들 얼굴을 보면 처음 만났을 때보다 다들 무엇이든, 얼마만큼이든 발전한 점이 있다. 나도 그렇다.
교생실습을 하고, 임용고사를 붙고, 10년 차 교사가 되어도, 나는 아직도 발전 중이다. 다정함과 단호함 사이의 어딘가를 헤매고 있고, 미운 점들 사이에서 사랑스러운 점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직업에서 나를 더 성장시켜보고 싶다. 이 성장이 갖고 있는 큰 의미는 타인과의 비교나 숫자를 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멋진 선생님들 사이에서 내가 해내고 싶은 부분을 해내며 나 스스로 만족하고, 나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