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행복을 수집하고자 합니다
내 첫 SNS는 페이스북이었다. 사진을 올리고 가벼운 댓글을 주고받는 재미에 푹 빠졌었다. 그러다 소개팅을 앞두고 계정을 비활성화했다. 아마 나는 무언가 숨기고 싶은 것이 많았나 보다. 대학 졸업하고 나서는 페이스북 대신 인스타그램이 유행했지만, 한동안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30살이 되기 전까지의 내 일상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에 친구들을 따라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30살이 되기 전 몇 년 동안 남은 20대에 집착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사진으로 모아 올렸다. 꽤 오래 그 습관은 이어졌다. 4년 정도 매달 올리다 2022년 12월을 끝으로 더 이상 게시글을 올리지 않게 되었다. 좁은 인간관계 덕에 내 팔로워 수는 20명 남짓이었다. 그런데 한 달 동안 일상을 보내며 사진을 찍고 정리해서 올릴 때 그 조그만 20명 남짓한 사람들이 신경 쓰이는 것이었다. 괜히 여러 번 찍게 되고 원하는 색감으로 보정도 하고. 그게 왠지 내 일상을 꾸며내는 것 같아서 그만두게 되었다.
인스타그램은 그만둘 때쯤 나는 다른 기록을 시작하게 되었다. 노션에 행복했던 순간들을 나만 볼 수 있게 수집했다. 글만 간단히 쓸 때도 있고 사진도 같이 올릴 때도 있었다. 이런 것도 나름의 저장 강박일까? 기쁘고 즐거웠던 순간들을 기록해두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잃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힘들 때 다시 돌아와서 봐야지 해 놓고 다시 본 적은 없었다. 올해부터는 행복 수집 노션 페이지에 들러서 기록하는 일도 뜸했었다.
한정원의 『시와 산책』은 시 같은 짧은 글들이 아름다워서 소장한 산문집이다. 두 번, 세 번 읽을 때마다 처음 좋았던 글은 더 좋아지고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글도 있다. 책이 얇고 가벼워서 가방에 넣어도 어깨 무거울 걱정이 없다. 얇아도 금방 읽히지는 않아서 가는 길이 멀어도 걱정 없다. 맘에 드는 문장은 읽고, 또 읽게 되니까. 친구들을 만나러 이동하는 지하철에서 이번에는 행복에 대한 글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길에서 만난 포교자에게 약간 밉살스럽게 대꾸했지만, ‘행복하기 싫다’는 내 말은 정확히는 ‘행복을 목표로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많은 이들이 행복을 ‘승진’ ‘결혼’ ‘내 집 마련’ 등과 동의어로 여기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 행복은 그렇게 빤하고 획일적이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고 설명하기도 어려우며 저마다 손금처럼 달라야 한다. 행복을 말하는 것은 서로에게 손바닥을 보여주는 일처럼 은밀해야 한다.
한정원, 『시와 산책』
행복해지려면 조상님이 도와야 한다고 말하는 포교자를 길에서 만난 날에 관한 글이었다. 예전에 읽었을 때는 크게 와닿지 않았던 글이었는데 이번은 달랐다. 행복은 획일적이지 않다. 행복은 은밀해야 한다. 내 행복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은 내 손금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일이다. 지하철을 오고 가면서 이 문장들 위를 서성였다.
사람마다 행복하다는 감정,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은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아빠와 10년 뒤, 아니면 15년 뒤같이 제주에서 책방을 열고 카페를 해보자는 실없는 계획을 세울 때를 좋아한다. 엄마가 옆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잔소리하는 것도 함께여야 한다. 그렇게 아빠와 꿈을 공유할 때 살아있다는 기분이 든다. 혼자 다시 그런 대화들을 떠올리면 늘 코가 찡해지는 행복을 느낀다. 모든 이가 나와 아빠처럼 실없는 꿈을 꾸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짝꿍은 차에서 중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SG워너비의 발라드를 틀고 따라 부를 때 어느 때보다도 신나 보인다. 처음 그 표정을 봤을 때 짝꿍이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을 알고 놀랐다. 그의 표정은 행복감을 넘치게 드러낸다. 하지만 난 아직 발라드의 매력을 모르겠다. 노래를 듣는 것보다 그 표정을 보는 것이 더 즐겁다. 행복은 사람마다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다가 답답함을 느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내 행복과 타인의 행복의 교집합을 찾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내 일상 기록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점점 나는 내가 행복하기도 하고 타인의 눈에도 행복해 보일 것 같은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공유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떤 달에는, 크게 행복하지 않더라도 사진을 잘 포장해서 올렸는지도 모른다. 은밀하지 않은 행복들은 더러 서로 누가 더 큰지 대보게 만든다.
약속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서 오랜만에 노션 행복 수집 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작년 7월 이후로 기록이 끊겨있었다. 3년 전 겨울의 기록부터 하나씩 보는데 행복이 얼마나 휘발성 강한 감정인지 깨닫게 되었다. 글과 사진으로 기록할 때는 모두 잊고 싶고 놓치고 싶지 않았던 행복감이 차오르는 순간이었다. 교실 속에서 한참이나 웃었던 순간,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 뿌듯했던 순간, 잊고 싶지 않았던 고마운 순간들. 기록을 다시 살펴보며 그때의 감정들이 살아나서 행복해졌다. 한동안 행복 수집을 하지 않은 것이 매우 아까워졌다. 기억은 안 나지만 많이 웃었고 뿌듯했던, 또 고마웠던 순간들이 많았는데. 핸드폰 사진들을 되짚어 보며 부랴부랴 올해 7월과 8월의 행복이라도 뒤늦게 수집했다.
작년에 본 서은국 교수님의 유퀴즈 인터뷰 영상이 인상 깊었다. 행복을 30년 넘게 연구하셨다는데, 짧은 말 안에 깊은 공부가 느껴졌다. 교수님께서는 “행복은 즐거움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에서 온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일상 속에 행복의 ‘압정’을 많이 깔아 두어야 한다고. 압정을 많이 깔기 위해선, 나에게 즐거움을 주고 의미를 더하는 것을 섬세하게 알아채야 한다. 그렇게 발견한 압정은 스스로에게 주는 자산이자 선물이라는 마지막 말씀은 여러 번 돌려서 다시 들었다.
내 행복 압정은 어떤 모양일까. 누군가에게 뾰족한 압정이 나에겐 무딜 수 있고, 나에겐 아릿한 압정이 누군가에겐 아무 감흥 없을 수 있다. 『시와 산책』 속 손금처럼 압정도 은밀하다. 나는 아직 내가 행복해하는 순간을 흐릿하게 알 뿐이다. 아직 행복 수집의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 내가 느끼는 행복을 날려 보내지 않고, 충분히 그 안에서 머물고 수집하고 싶다. 마치 미식가가 맛을 구분하듯, 나도 내 행복의 결들을 구분하고 싶다. 행복을 섬세하게 느끼고, 내게 맞는 압정들을 하나씩 만들어가고 싶다. 그러다 보면 문득 내가 심은 압정들로 둘러싸여 있지 않을까? 행복 압정에 둘러싸여 있으면 삶에서 만나는 어려움도, 때때로 찾아오는 불안도 마냥 두렵지만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