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디브에서 내가 싫어졌다

죽으면 묻히고 싶다던 그곳

by 서정

나는 죽으면 그곳에 묻히고 싶더라. 그 말에 우리의 신혼여행지는 몰디브로 정해졌다. 짝꿍의 친한 형이 몰디브를 신혼여행으로 다녀왔는데 음식도 술도 넘치는 그곳, 뽕따 같은 색의 황홀한 바다와 아름다운 일몰을 매일 볼 수 있는 그곳이 그렇게 좋았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찾아봐도 그 말은 과장이 아닌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색의 바다와 이국적인 풍경, 스노클링으로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니모에 나올 것 같은 귀여운 물고기들, 고급스러운 리조트. 다른 신혼여행지 보다 가격이 부담이 되었지만 우리는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몰디브.


누군가 말했다. 결혼 준비 과정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정확한 말이다. 다만 선택 앞에 ‘끝없는’ 혹은 ‘쏟아지는’과 같은 말이 있어야 한다. 상견례 선물은 무엇으로 할 것인지, 식장은 어디로 할 것인지, 부케는 어떤 색으로 할 것인지……. 수많은 선택에 마비되어서 나중에는 내 결혼이지만 나도 어찌하든 상관없지 않나 싶어졌다. 우리는 결혼식보다 신혼여행을 기다리며 끝없는 선택을 미션처럼 하나씩 깨나 갔다.


그런데 싱가포르를 경유하고 도착한 몰디브는 공항부터 내 상상과 달랐다. 도착 게이트에서 실외로 바로 이어지는 좁은 공항은 전 세계에서 신혼여행을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죽죽 내리는 비는 경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내렸다. 회색의 칙칙한 하늘. 내리는 비로 뿌연 바다. 야심 차게 준비한 흰 원피스를 뒤흔드는 바람. 아, 내가 기대한 것은 이게 아닌데.


선택에 후회가 남을 때는 참 괴롭다. 선택을 하고 나서 기대한 바가 돌아오지 않을 때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더 잘 알아보지 않은 게으름과 빨리 선택을 내려버린 조급함을 번갈아가며 후회한다. 몰디브에 도착해서 여행 기간 내내 짧고 길게 있는 비 예보를 보며 나는 한없이 우울해졌다. 우기라도 비가 내내 오지는 않는다더니 이렇게 우중충한 날씨일 줄이야. 다른 곳들도 더 알아볼걸. 친한 형 말 한마디, 사진 몇 장 보고 고르지 말 걸.


몰디브 첫날의 기억을 글로 쓰는 것은 부끄럽다. 숨기고 싶은 내 모습을 짝꿍에게 투명하게 보여주었다. 나는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려서 주변 사람에게 티를 내곤 한다. 티를 내기 싫은데 주변에서 티가 많이 난다고 한다. 요동치는 감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짜증 내고 날 선 말을 할 때가 있다. 비는 잠에 들기 전까지 내내 내렸고 내 기분은 하루 종일 우울했다. 내 기분은 짝꿍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숙소에 짐을 풀고 산책을 나갔다. 우산을 쓰고 환하게 웃는 짝꿍의 사진을 찍어줬었는데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미안하다. 내 우울한 기분을 풀어주려고 애쓰는 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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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디브에서의 첫날

둘째 날 아침은 비 없이 맑은 날이었다. 구름은 많았지만 비가 그치자 그제야 맑은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날씨 따라 내 기분도 좋아졌다. 물 위에 떠 있는 식당에서 조식을 먹는데 테이블 밑으로 은색 비늘을 가진 손바닥만 한 귀여운 물고기들이 지나다녔다. 즐거운 기분을 나누는데 짝꿍이 오늘은 내 기분이 좋아 보여서 기쁘다는 말을 했다. 미안함이 밀려왔다. 어제 너무 우울한 티를 내서 미안했다고 사과를 했다. 그는 괜찮다고, 아침에 샤워하면서 오늘도 내 기분이 안 좋더라도 옆에서 긍정적으로 에너지를 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미안함이 몇 배로 밀려왔다. 그에게 물었다. 어제 비가 와서 기분이 안 좋지 않았느냐고. 비가 와도 낯설고 이국적인 몰디브가 좋았다는 그의 대답. 맛있게 먹을 식사도 기대되고 궁금했다고. 아, 그렇지. 꼭 비가 와서 실망하고 우울해할 필요는 없는 거지.


독서 모임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고 대화를 나눴었다. 한 분께서 자기혐오를 느껴본 적이 있느냐는 묻길래 나는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내 행동을 후회한 적은 있어도 혐오의 감정까지 느낀 적은 없다고. 그분께서 내 대답을 듣고 느껴본 적이 없다니 부럽다고 하셨다. 부럽다는 대답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어떤 감정을 느꼈길래 부럽다는 말씀을 하실까 싶었다. 몰디브 첫째 날의 나를 후회하면서 나는 자기혐오 비슷한 감정을 처음으로 느껴본 것 같다. 그리고 부럽다는 그분의 말씀이 맞았다. 이 감정은 몰라도 좋을 감정이었다. 정신이 퍼뜩 들고 마음이 배꼽 밑으로 내려앉았다. 내가 어제 뭘 했던 거지. 내 감정을 누군가에게 떠넘기고 있었네. 소중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했나?


그 후로 몰디브에서 머문 일주일의 시간 동안 기대와 다른 일은 자꾸 생겼다. 고래상어 투어에서 고래상어는 우리에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레스토랑은 갑자기 내부 공사로 문을 닫았다. 다행히 날카로운 자기혐오의 감정은 내가 첫째 날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해 주었다. 고래상어 대신 거북이와 헤엄을 쳤고 거북이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레스토랑은 다행히 마지막 날 저녁에 문을 열었다. 먹고 싶었던 것을 몰아서 거하게 먹었다. 부정적인 감정에 매여있었다면 즐길 수 없었던 순간들이었다.


일주일의 일정 중 내가 가장 기대했던 것은 마지막 날 저녁의 선셋세일링이었다. 지는 해와 나 사이에 바다만 있는 곳에서 일몰을 보는 일을 여행 전부터 기대해 왔다. 마지막 날이니 스노클링을 두 번 길게 하고 샤워도 두 번이나 했다. 요트에서 예쁜 사진을 찍을 생각으로 화장도 새로 하고 리조트 로비에 갔는데 다시 한번 나의 기대는 깨졌다. 기상 상황이 안 좋아서 선셋세일링이 취소되었다는 직원의 말. 그는 다른 날로 다시 예약해 줄 수 있다고 친절하게 덧붙였지만 우리의 저녁은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첫날의 나였다면 좌절했을 상황이었지만 나는 다행히 그런 부끄러운 행동을 또 반복하지는 않았다. 잠깐 허탈했지만 우리는 다시 선크림을 덧바르고 한 번 더 스노클링을 하기로 했다. 또다시 스노클링을 하기로 하고 함께 웃었을 때 작은 해방감도 느껴졌다. 풍덩! 그날의 세 번째 스노클링.


일주일 동안 매일 한 두 번씩 스노클링을 한 덕에 리조트 근처 바다는 모두 꾀고 있었다. 햄버거를 파는 바 앞에는 투명한 은빛 마름모 모양 물고기, 검은색 점을 가진 귀여운 물고기들이 많다. 수상 식당과 빌라로 가는 길 밑에서는 꼬리와 지느러미 끝이 까만 블랙팁샤크가 어슬렁거린다. 처음에 물속에서 만날 때는 너무 깜짝 놀라서 도망쳤는데 알고 보니 소심해서 사람을 피해 다니는 친구였다. 샌드뱅크 근처에는 별 물고기가 없지만, 샌드뱅크 반대쪽 산호 근처에는 보고 싶었던 색깔이 화려한 물고기들이 많다. 그중에는 딱 봐도 성격이 안 좋은 물고기도 있다. 눈 근처에는 형광 파란 줄이 있고 검은색과 주황색이 섞인 몸에 선명한 노란 입을 가진, 예쁘다기보다는 위험해 보이는 조그만 물고기다. 짝꿍은 위험해 보이는 물고기의 산호 집 근처에서 얼쩡거리다 물고기와 주먹다짐을 하고 왔다. 알고 보니 피카소 물고기라고 성격이 난폭해서 자기 영역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잘 무는 것으로 유명한 물고기였다.


이미 리조트 근처 이곳저곳을 다 스노클링으로 살펴보았다고 생각해서 마지막 스노클링은 물고기들과 작별 인사를 하는 것으로 했다. 그런데 우리가 좋아했던 곳들을 마지막으로 헤엄치다 잊을 수 없는 곳을 발견했다. 수상 식당을 지나고 초록 물풀이 흔들리는 곳을 지나면 모래 위로 회색과 주황빛이 섞인 키 작은 산호들이 있는 곳이 있다. 몇 번 지나쳤던 것 같은데 우리 둘 중 누군가가 그 멋진 곳을 발견하고 흥분해서 외쳤다. 여기야!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 한 조그만 물고기들이 키 작은 산호 주변에 잔뜩 모여있었다. 니모를 찾아서의 물고기 마을을 보는 것 같았다. 진한 남색에 꼬리가 노란 물고기, 흰 몸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물고기, 푸른빛이 반짝반짝 나는 물고기, 그리고 또다시 나타난 피카소 물고기.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헤엄치고 산호 구멍 사이를 오가는 조그만 물고기를 보는데 이 순간이 이번 여행에서 잊지 못할 한순간이 될 것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흠뻑 빠져서 물고기들에서 눈을 떼지 않는 짝꿍으로 위치 표시를 하고 다시 해변으로 돌아가 핸드폰을 가지고 왔다. 핸드폰으로는 물속 장면이 선명히 찍히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은 꼭 영상으로 남기고 싶었다. 짝꿍은 내가 돌아올 때까지 계속해서 물속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대한 인간 두 명이 오리발까지 달고 물장구를 치면 물고기들은 산호 집으로 숨어버렸다. 그리고 피카소 물고기가 흥분해서 쫓아내면 아쉬운 것은 침입자들이었다. 우리는 물장구도 멈추고, 말도 멈추고 가만히 물 위에 떠서 한참 같은 곳 위에 떠있었다. 따뜻하고 얕은 물, 귀가 먹먹해지는 느낌, 우리 둘과는 또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예쁜 물고기들, 둘이서 아무 말도 없이 그 세상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우리의 신혼집은 한밤중에도 차 소리로 시끄럽다. 고양부터 종로까지 이어지는 대로변을 달리는 차들과 가끔 있는 폭주족의 소리는 잠이 오지 않는 날의 나를 괴롭힌다. 그럴 때 나는 몰디브 마지막 날의 스노클링을 떠올린다. 차 소리를 팔다리를 따뜻하게 오가고 귀를 먹먹하게 하는 얕은 파도로 상상하면 잠이 잘 온다. 그리고 내가 내 감정에 휘둘리기만 할 때는 둘째 날 내가 너무 싫었던 순간을 떠올린다. 신혼여행 첫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하루 종일 괴롭히고 나서야 깨달았다. 부정적인 감정은 느끼고 확인하였으면 흘려보내야 한다는 것. 그 깨달음으로 조금 더 나은 버전의 내가 되고 있다고 믿는다.


몰디브에서 본 마지막 일몰. 저 즈음에서 마지막 스노클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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