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난 돌들의 마을

저는 대화가고요, 모난 돌들의 마을에 살아요

by 서정

잠자는 것을 좋아하고 수면 시간 8시간을 꼭 지키려고 노력한다. 누워서 발끝까지 한번 쭉 뻗고 이불속으로 빠져드는 시간을 사랑한다. 어디선가 잠에 들 때 한 생각을 깨날 때도 이어서 하게 된다는 것을 읽고 난 뒤로 잠에들 때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한다. 하루 중 가장 웃겼던 순간, 행복했던 순간,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순간을 떠올린다. ‘아, 준이의 그 말 너무 웃겼어. 암튼 진짜 귀여워. 귀여워. 흐흐.’하면서 잠에 들면 왠지 기상 시간이 덜 찌뿌둥해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때때로 내 포근한 이불이 무겁고 딱딱해질 때도 있다. 직장에서, 모임에서,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말을 많이 하고 온 날이 그렇다. 그런 날 나는 자아 성찰의 이불을 덮게 된다.


불편한 이불을 덮고는 빨리 잠에 들 수 없다. 자아 성찰 이불의 기능은 편안한 잠보다는 내가 오늘 한 말들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리게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숨기고 싶던 혹은 나도 몰랐던 내 편견을 드러낸 말, 뻐기고 싶은 마음에 참지 못하고 나와버린 말, 들뜬 기분에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한 말들은 흘러가지 못하고 덜커덕 이불 솔기에 걸린다. 그 말들 밑에서 나를 위한 이런저런 변명 거리를 생각하는 것은 괴롭다.


내 소중한 꿈들 중 하나는 대화가가 되는 것이다. 대화가(對話家). 국어사전에 대화가라는 말은 없고 인터넷에 찾아봐도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은 없지만 아무튼 나는 대화가가 되고 싶다. 스몰토크처럼 가볍고 재밌게 사라지는 대화도 있지만 어떤 대화는 첫인상 뒤에 숨어있던 유일무이한 누군가를 드러내기도 하고 내 삶의 방향을 바꿔버리기도 한다. 사람들과 그런 좋은 대화를 나누고 대화로 상대에게 관심을 갖고 응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대화들은 몇 년이 지나도 나를 위로하고 깨닫게 하고, 또 살아가게 하기도 하지 않는가. 주변 사람에게 그런 대화를 선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가 내가 그런 사람이 되면 화가(畵家), 미식가(美食家), 탐험가(探險家)처럼 나도 대화가가 되는 것이 아닐까? 대화가가 되기 위해 평소에 내 말은 줄이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며 그 사람의 세계에 대해 알아가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아고. 내 얘기만 많이 해버렸네.”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되었다. 처음 몇 번은 신경 쓰지 않았다. 나와 다른 삶을 사는 그의 상황이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었던 때도 있었고, 평범한 상황도 재치 있는 말솜씨와 표정으로 나를 홀릴 때도 있었고, 그의 힘듦에 듣는 것 말고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던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나는 듣다 보면 헤어질 시간이 다되고 마는 것이다. 요즘은 그 말을 들으면 아차 싶다. ‘아, 내가 내 얘기를 너무 안 했나?’하고. 어쩌면 나는 내 말이 이불속에 덜컥 걸려버릴까 두려워서 듣기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대화가가 되고 싶다고 하면서도, 정작 나는 내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한다.


독서 모임에서 어떤 분이 여성 인권에 관한 책을 소개해주신 적이 있다. 책 소개가 끝나고 대화를 나눌 때 남녀가 섞인 자리라 분위기가 어떻게 될지 호기심 반, 걱정 반인 마음이 있었다. 책을 소개하신 분이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남자분들이 말하기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모임에 참여하던 두 남자분에게 건넸다. 그에 대한 한 분의 대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괜찮아요. 드러내야 고칠 수 있으니까요.” 고칠 부분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말을 줄이는 나와는 정반대의 용기 있는 태도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맞아, 나 모난 점이 있을지도 몰라. 그래도 숨기지 않고 드러내 볼게.’ 하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모나지 않고 둥근 돌만이 부드러운 이불 밑에서 잠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왔는지도 모른다. 챗지피티처럼 상대가 원하는 답만 하는 사람이 좋은 대화가라고 생각해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둥근 돌도, 챗지피티도 아니다. 나는 다정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지만 때때로 속이 좁고, 이기적이기도 하다.



나에게 연애와 우정이 이다지도 어려웠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사랑받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고 상대가 원하는 행동을 해야만 누군가가 날 좋아해 주고 사랑해 줄 거라 믿었다. 스트레스였다. 언제나 최고의 친구나 여자친구가 되기 위한 갖가지 시도를 공들여했고 그러면서 진정한 나 자신, 즉 따뜻한 마음을 가지긴 했으나 언제나 착하고 좋을 수만은 없는 그 사람과는 점점 더 멀어졌다. 미안해하지 않아야 할 일을 미안해했고 내 잘못이 아닌 일에도 사과했다. 그저 내가 나라는 사실이 죄스러웠다. - 록산 게이, 『헝거』



록산 게이처럼 나도 따뜻한 사람이지만 언제나 착하고 좋은 행동만 하지는 않는다. 모난 곳 없는 구처럼 완벽한 돌이고 싶은 욕심, 모나서 부딪히는 순간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상상해 보면 완벽한 구만 있는 마을은 숨 막힌다. 아주 조금 모난 부분을 갖고 있더라도 그 부분을 숨겨야 할 것 같다. 그래, 그렇다면 차라리 나는 모난 돌들의 마을에 사는 모난 돌이 되고 싶다.


모난 돌 마을의 대화 가는 어떤 모습일까. 모난 부분들이 서로 부딪혀 긁히고 때때로 불꽃이 튀겠지만 생각이 오가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대화가 있을 것이다. 모두 매끈해서 미끄러지는 둥근 돌의 마을에서는 없는 진짜 대화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모난 돌들이 서로 부딪히다 보면 둥근 돌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딪혀서 둥글어진 돌과 부딪힐까 움츠러들어서 구가 된 돌은 다르다. 부딪혀서 둥글어진 돌들은 어떻게 부딪혔는지에 따라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 처음부터 타고난 돌의 색도 다르다. 완벽한 구의 모습을 한 둥근 돌은 없다. 어찌 아냐 하면, 거제에서 직접 봤다.


이번 여름 거제에 여행을 다녀왔다. 날이 흐려 바다가 예쁘진 않았다. 눈 대신 귀가 즐거웠다. 파도가 해변에 밀려왔다 갈 때 자갈들이 서로 부딪히며 좋은 소리를 낸다. 잘그락 잘그락. 비가 조금씩 내려 우산을 쓰고 한참 그 소리를 들었다. 몽돌처럼 용기 내어 부딪히고 내 목소리를 더 내어봐야겠다. 서로 듣고 말하며 우리 대화는 깊어지고 내 세계는 넓어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상상 속의 대화가가.


거제 몽돌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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