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어린이의 인생에는 무엇이 중요할까
“선생님, 이거 너무 어려워요…”
그렇다. 작년에 구구단을 배운 3학년 어린이들에게 올해 두 자릿수끼리 곱셈을 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하다. 6 곱하기 9가 54인지, 57인지도 아리송한데 구구단을 몇 번이나 헤쳐나가야 36 곱하기 29를 계산할 수 있는 것이다. 1학기 때는 다들 수학 문제를 너무 빨리 풀어서 수업 시간이 남곤 했는데 요즘은 쉬는 시간이 되어도 진땀 빼는 어린이들이 늘어났다. 6 곱하기 9를 10초 간 고민하는 어린이 옆에서 나는 54를 말해줄지, 지나갈지 고민스러웠다. 결국 쉬는 시간에 불러서 한참 같이 구구단을 외고 곱셈 문제를 풀고 또 풀었다. 그리고 엄포도 놓았다. “4학년이 되면 세 자릿수 곱셈도 해야 해. 집에서도 더 연습해 와.”
여름방학이 지나고 다시 교실에 모인 아이들은 많이 탔다. 3월에 봤던 뽀얀 모습은 사라졌다. 키도 조금 컸고, 또 조금 의젓해진 것 같기도 하다. 1학기 때는 점심시간에 보드게임을 하는 시간보다 보드게임으로 싸우는 시간이 길어서 몇 번이나 중재해주곤 했다. 이제는 자기들끼리 가위바위보로 잘 해결하고 논다.
귀엽기는 여전히 귀엽다. 남자 어린이들 몇 명이 A4용지로 미니북을 만들고 소설을 쓰거나 공감 가는 이야기를 써서 교실에 출간하는 일을 3월부터 푹 빠져서 하고 있다. 정성스럽게 만들고 스카치테이프로 종이를 한 줄, 한 줄 감아서 코팅까지 한다. 책을 출간하는 아이가 테이프 붙이기를 도와주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건 우리 인생이야.” 어린이들과 점심을 먹다 전해 들은 그 말에 한참 웃었다.
최고 온도가 30도가 넘어도 아침저녁으로 바람에 찬 기운이 섞이기 시작하면 이제 다음 학년으로 올려 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의젓하고 멋진 4학년이 되기 전에 가르쳐주고 싶은 것들이 생긴다. 가장 먼저는 두 자릿수끼리의 곱셈이다. 그리고 발표도 조금 더 씩씩하게 잘했으면 하고, 책도 더 좋아하게 되면 좋겠다. 또 리코더도 샵 없는 쉬운 노래는 잘 연주했으면 한다.
어른처럼 어린이도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다. 알면서도 욕심이 커지고, 욕심이 커지면 내 목소리는 낮아지고 표정은 딱딱해진다. 조금 더 집중해서 배웠으면 하는 마음에 그랬지만 주말에 돌아보니 그러지 말걸 싶다. 내가 엄하게 가르치는 것과 수학 잘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타츠루는 말했다. 교사의 타율은 2할이면 충분하다. 10명 중에 2명만 내 수업을 듣고 이해하면 충분하다는 뜻인데 언뜻 들으면 너무 낮은 타율 아닌가 싶다.
저는 이 2할은 어떻게든 늘려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제가 당시의 동료 선생님들을 믿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 이야기를 듣는 2할이 있으면 다른 교사의 이야기를 듣는 2할이 있고… 저는 교사의 타율은 2할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 우치다 타츠루,『완벽하지 않을 용기』
그는 교사는 교사 개인이 아닌 교사단으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같은 학교에 있는 동료 교사와 학생을 과거에 가르쳤고 미래에 가르칠 교사들 모두가 함께 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2할만 하면 된다. 그의 2할은 완벽주의에 젖기 쉬운 교사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분명 그랬다.
나는 때로는 그의 말을 본래 의도와 조금 다르게 이해한다. 내가 2할을 하면 또 다른 2할들은 과거, 현재, 미래의 교사들이 채워준다. 그리고 남은 2할, 어쩌면 2할보다 큰 부분은 어린이들이 스스로 채운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채우지 않기로 택할지도 모른다. 열 개가 되어가는 교과목 중에 어린이들이 보기에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도 있을 것이다.
교실의 구조는 특이하다.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단 한 사람을 바라보도록 되어 있다. 대부분 한 명이 주로 말하고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은 듣거나 듣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스무 명 넘는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때는 한 사람이 정한다. 또 그 한 사람은 하루 반나절 동안 무엇을 쓰고, 그리고, 만들지 정해 준다. 심지어 어떻게 놀지도 정할 때가 있다.
그런 공간에서 단 한 사람으로 있다 보면 내 가르침만이 중요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영향력이 2할이 넘는 경우는 드물 것 같다. 대화를 나눠도 우리는 보통 각자의 의견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내 수업만큼은 2할이 넘는 특별한 영향력을 가져야 하는가.
어린이들이 항상 햇살같이 천진난만하게 웃는 것은 아니다. 외로움과 수치심을 느끼기도 하고,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린이들이 힘든 감정을 털어놓거나 도움을 요청할 때가 있다. 대개는 친구 관계가 문제이다. 곱셈이 어렵다거나, 리코더 소리가 예쁘지 않아서 몇 날 며칠을 고민하지는 않는다.
“이건 우리 인생이야.”라는 말이 나오는 생생한 현실과 인생은 내가 수업으로 가르쳐주는 것에 있지 않을 때가 많다. 그보다는 나와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드는 것, 교실에서 내 나름의 존재를 알리는 것에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내가 이 교실에서 내 수업만이 중요하게 느껴질 때 되뇌게 되는 것이다. 2할만 하자. 내 2할 밖 아이들의 삶은 어떤가 살펴보자.
여자 어린이들도 미니북 만드는 것이 재미있어 보였나 보다. 어느새 미니북 출간은 우리 반 유행이 되었다. 출간된 미니북들이 교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이 안쓰러워서 교실 한 편 책장을 우리 반 책방으로 만들기로 했다. 책방 이름도 짓고, 우리 반 작가님들 책도 예쁘게 모아두려고 한다. 책방 꾸밀 용품을 인터넷으로 주문하는데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한참을 구경했다. 내가 사랑하는 동네의 작은 책방들만큼 멋지게 꾸미고 싶다. 아이들 인생과 내 인생이 조금 맞닿은 지점일까 싶다.
그런데 두 자릿수 곱셈은 잘 배워 놓긴 해야 한다.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면 연습용 학습지를 만들어야겠다. 어린이들은 그들의 인생을 살고, 나는 가르치는 게 내 일이니 내 인생을 또 잘 살아야 한다. 학습지 가득 연습 문제를 양면으로 만들어서 나눠줘야겠다. “으, 공포의 학습지다! 으, 양면이야.” 하고 외칠 어린이들 모습과 “엄청 좋아하네! 더 만들어야겠다.”고 답할 내 모습이 생생하다. 우리는 각자의 2할을 해내고 있다. 어린이들은 내게서 2할 정도를 배우고 2할 밖에서 저마다의 인생을 꾸리고 있다.
* 우리 반 책방 이름은 '바다 책방'으로 정해졌다. 바다에 있는 것처럼 즐겁고 마음 편한 책방. 투표로 결정되었는데 2위 후보와 단 한 표 차이가 났다. 2위 후보는 '60 데시벨을 넘으면 나가야 하는 책방'이다. 난 투표권이 없었는데 2위가 되지 않아 내심 다행이었다. 2위 후보는 책방 이름 근처에 주의사항으로 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