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예리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제주 그린티. 회의 시간에 맞춰 음료가 배달 왔다. 음료를 주문해 주신 선생님의 센스 덕에 메뉴가 다양했다. 아메리카노, 돌체라떼, 딸기 프라푸치노, 자몽허니블랙티… 그렇지만 내가 고를 새도 없이 내게 온 메뉴는 제주 그린티였다. “이건 서정쌤거네! 서정쌤이 마시면 되겠다.” 나도 웃으면서 제주에서 온 차를 받았다. “아~ 지겨운데요. 제주 차는!”
제주에서 자라고 교사로서의 첫 3년을 보냈다.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태어난 곳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고향을 떠난 뒤에 제주가 나를 설명하는 단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 혹은 내 고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제주를 주제로 내게 자주 말을 건다. 좋은 곳에 살아서 부럽다, 제주 어디에 사느냐, 맛집을 많이 아느냐, 한라산은 자주 가보았겠다, 진짜 귤밭이 있느냐…
처음에는 제주에 관한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제주에 살 때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스몰토크를 위한 질문 앞에서 나는 가벼워지는 것이 어려웠다. “저희 집은 제주시에 있어요.” “제주시 어디? 애월? 함덕?” “함덕 가기 전에 삼양동이라고 있어요. 검은모래해수욕장 있는 곳인데” “아…” 내가 살았던 제주시 삼양동을 말하면 영 분위기가 어색해진다. 아마 기대했던 답이 아니었나 보다.
질문 데이터가 쌓이면서 가볍게 답할 수 있는 데이터도 쌓이고 있다. 맛집을 물어보면 여행 갈 때 연락하라고, 추천해 주겠다고 답하면 된다. 어차피 거의 다시 물어보지 않는다.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예전에는 조금은 답답한 마음도 들었었다. 나하고는 제주 얘기밖에 할 것이 없나 싶었다.
한 사람은 여러 범주에 속한다. 나를 설명하는 범주에는 여자, 30대, 초등교사, 제주와 같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내게 제주 얘기를 물어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른 범주들보다 가볍게, 어쩌면 안전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 함께 대화를 많이 나눠본 사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책이나 달리기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고, 나도 그 사람의 관심사에 대해서 물어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을 때는 그런 범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다. 실은 그렇게 물어오는 관심도 참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때로 정확히 사랑받고, 또 정확히 사랑하고 싶어진다.
사랑에도 정확함을 바랄 수 있다는 것을 신형철의『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읽고 알았다. 그는 장승리의 시「말」의 한 구절, '정확하게 사랑하고 싶었어'로 비평을 설명한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섬세한 사람이 되어 가장 좋은 해석을, 그리하여 세상 모든 작품이 바라는 비평을 하고 싶다는 책의 머리글이 인상적이었다. 머리글 마지막에 쓰인 ‘아내를 정확히 사랑하는 일로 남은 생이 살아질 것이다.’라는 문장을 읽고, 이보다 더 로맨틱한 문장이 있을까 싶었다.
20대의 나는 스스로에 대한 착각을 몇 개 갖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내가 사람을 잘 본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이 근자감을 바탕으로 나는 새롭게 알게 된 사람을 두 가지 뭉치로 구분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단 두 개의 뭉치로만 구분했으므로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선악의 잣대를 들이밀곤 했다. 하지만 점점 이 뭉치는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대가 없이 내게 호의를 베풀 때가 있었다. 좋은 사람인 줄 알았던 사람이 실망스러운 행동을 하기도 했다. 결국 이 분류는 하나 마나 한 것,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나는 사람 보는 눈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 보는 눈은 조그만 행동으로 빨리 그 사람에게 이름표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범주에 대한 편견 없이 그 사람을 차분히 바라보는 눈인 것 아닐까?
지난 8월에 퇴직하시는 교장 선생님 선물을 고르게 되었다. 인터넷 카페와 유튜브에서 ‘센스 있는 퇴직 선물’, ‘60대 추천 선물’을 한참 찾아봤다. 카카오톡 선물하기에 들어가면 추천을 잘해준다 길래 선물 랭킹도 한참을 살펴봤다. 선물 리뷰는 좋았지만 선생님께서 이 선물을 좋아하실지는 아리송했다. 명품 브랜드의 립밤을 좋아하실까? 스카프 색은 어떤 걸 좋아하실까? 확답을 내릴 수 없었던 나는 결국 백화점 상품권을 준비했다. 센스 있지도 않고, 정확하지도 않지만 안전한 선물이었다.
퇴직하신 교장 선생님께서는 학교 방송으로 훈화 말씀을 하실 때마다 어린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셨다. 계절과 상황마다 잘 어울리는 그림책에서 정성이 느껴졌었다.
교장 선생님께서 퇴임하시는 날 퇴임식 식순에는 송사가 있었다. 교장 선생님 송사는 교무부장 선생님께서 준비하셨다. 송사를 적은 대본 대신 교무부장 선생님께서 준비하신 것은 그림책이었다. 최민지 작가의 문어 목욕탕. 엄마 없이 혼자 목욕탕에 가는 모험을 하는 아이를, 학교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하는 교장 선생님께 빗대서 읽어주셨다. 송사를 하는 선생님도, 받는 선생님도, 두 분을 보는 나도 울컥 감정이 올라왔다. 방송으로 교장 선생님께서 그림책을 읽어주실 때 방송을 진행하는 교무부장 선생님께서는 늘 함께이셨다. 함께 보낸 시간이 잊지 못할 정확한 선물을 만들었다.
갑작스레 교장 선생님 선물을 준비하던 나는 그림책처럼 섬세하게 마음을 울리는 선물을 준비할 수 없었다. 쌓여온 시간 없이 한순간에 누군가를 깊게 이해할 수는 없나 보다. 그 사람이 아직 선명히 보이지 않을 때는 겉으로 보이는 범주에 기대야 하는 어색한 시간이 생긴다. 서로 투박하게 맞닿고, 때로는 실수하고 잘못하며 인내심이 필요해지는 그 시간들이 쌓여야 사랑은 더 정확해진다. 어떻게 보면 제주 그린티도 그런 시간의 시작이고 정확한 사랑을 위한 실험 재료라 볼 수도 있겠다. 서툰 관심이 오가고 상대를 그대로 찬찬히 보려는 노력도 오가다 보면 그에 대한 이해는 점점 예리해지지 않겠는가. 그런 정확한 사랑을 주고 싶고, 또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