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년 차, 아직 아이는 없지만 아이를 키운다면?
서울에서의 첫 자취 집은 직장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 있었다. 지하철역이 걸어서 15분 정도로 조금 멀었지만 집값이 비교적 싸서 상암, 종로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집 바로 옆옆 건물이 이마트였다. 자취 용품을 사기도 좋았고 마감 세일을 할 때 식품 코너에서 초밥, 샌드위치를 싸게 살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반대쪽 옆옆 건물에는 다이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취를 시작하기 참 좋은 곳이었다. 1인 가구가 많아서 간단한 식사를 파는 곳도 꽤 있었다.
6평이 조금 안 되는 그 방에서의 첫날은 침대 없이 바닥에서 엄마와 잤다. 침대가 오기 전이라 바닥에 이불을 펴고, 한 이불에서 둘이 잤다. 딱딱한 바닥도, 밖에서 들려오는 신호등의 보행 신호 소리도, 오랜만에 함께 엄마와 자는 느낌도 낯설어서 금방 잠들지는 못 했다. 설레는 기분도 있었고, 내가 지금 여기 서울에서 사는 것이 좋은 선택인지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다.
2월이라 따뜻하지 않았지만, 아주 춥지도 았았다. 엄마는 낯선 동네에서 나와 함께 방을 구해주고 이부자리와 간단한 주방 용품을 사주고 제주로 내려갔다. 이마트에서 꼼꼼히 이불을 골라주는 엄마 모습이 기억난다. 엄마는 가방 속 안경을 꺼내 끼고 이불을 펼쳐 놓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일 년 내내 쓸 수 있는 회색 차렵이불이었다. 그 이불은 계속 빨다 보니 얇아져서 여름 이불에 가까워졌지만 나는 아직도 그 이불을 갖고 있다. 아빠는 함께 서울에 오진 않았지만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날 제주공항으로 배웅을 나왔었다. 그때 아빠는 내게 “돌아오고 싶으면 언제든 돌아와.”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은 그 이후로 내게 믿을 구석이 되어주었다. 믿을 구석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힘든 일이 있더라도 몰입하지 않고 한 발 빼게 된다. 도망칠 마음이 없더라도 도망칠 곳이 있다는 것은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내 인생의 베이스캠프는 그곳이다. 회색 차렵이불과 제주공항 3층 출발 게이트 앞.
작년에 학부모 상담을 하다 평소였으면 유쾌하지 않았을 말을 들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를 안 낳아봐서 모르시겠지만······.” 평소였으면 상담이 끝나고 아이 많이 낳으면 잘 가르칠 수 있는 건가 하고 화가 났을 수도 있지만 왠지 그날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전화로도 전해져 오는 엄마로서의 괴로움이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긴 하지. 친구 관계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곁에서 바라보는 부모의 입장을 출산도, 육아도 해보지 않은 내가 어찌 알겠는가. 내가 교실에서 그 아이를 볼 때의 안타까움과 여러 방법 중 좋은 해결책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마음은 부모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 이번 학기에 새로운 아이들의 부모님들과 상담을 한 뒤 상담 내용을 여러 번 곱씹게 되었다. 출산과 육아가 내게 아주 먼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사가 가진 교육관이 다양한 것처럼 상담을 하며 만나는 부모님들도 그렇다. 부모님들의 자녀 교육관도 다양하다. 아이들과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친구와 갈등이 생겼을 때 아이에게 어떤 조언을 하는지, 아이의 학업이나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생각이 어떠한지는 모두 조금씩 다르다. 부모님들과 상담할 때는 학급의 한 아이를 가르치고 있고 나름의 교육관을 가진 교사로서 대화를 나눈다. 결혼 전에는 상담으로 끝났던 대화가, 결혼 후에는 내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곤 한다. 상담이 끝나고 부모님들과의 대화를 곱씹으면서 ‘이럴 때 부모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좋은 부모의 역할은 무엇일까.’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고민하고 내린 답들은 모두 잠정적이다. 작년에 들었던 말처럼 아이를 안 낳아봐서 모르는 상태에서 이상적으로 내린 답일 수도 있다. 내가 만날 아이의 성향에 따라서 바뀌어야 하는 답일 수도 있다. 주변에 휘둘리고 싶지 않지만, 지금 무언가를 하면 안 된다는 조급한 말에 남들을 따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절대 이것만큼은 바꾸고 싶지 않은 답이 있다면 내가 만날 아이가 내가 만들 가정을 인생의 베이스캠프로 느꼈으면 하는 것이다. 아이가 다 자라면 어딘가로 용기 있게 모험을 떠나거나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될 텐데 그럴 때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베이스캠프가 뒤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베이스캠프 덕에 더 씩씩해지고 덜 외로워지기를 바란다. 내가 느끼고 있는 믿을 구석을 내가 만나게 될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