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집에서 나는 모른 척을 택했다.

딸의 집에서 배운 거리 두기에 대하여

by Angela

2025년 12월 25일, 딸의 집 현관문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마주한 것은 환영의 인사가 아니라, 발 디딜 틈 없이 흩어진 신발들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곧장 허리를 숙였을 것이다. 구두는 가지런히 모으고, 운동화는 한쪽으로 밀어두며, 딸의 흐트러진 일상을 내 손으로 정돈하는 것. 그것이 내가 아는 ‘부모의 사랑’이자, 당연한 역할이라 믿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멈칫하는 순간이 길어졌다. 현관의 어지러움과 원룸 여기저기로 흩어진 옷가지와 잡동사니들 위로, 내 마음의 답답함이 겹쳐졌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아니, 내가 이 무질서 속에 개입해도 되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나는 아주 낯선 선택을 하기로 했다.


그 모든 풍경을 외면해 버리기로 한 것이다.


바닥을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그대로 딸의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날 밤, 영어 일기장에 나는 짧은 문장을 남겼다.




“I chose denial.”



피곤해서도, 귀찮아서도 아니었다. 그 문장을 적어 내려갈 때의 마음은 오히려 또렷했다. ‘치우지 못했다’가 아니라, ‘치우지 않기로 했다’는 선택. 나는 분명히 부정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것은 딸의 삶에 더 이상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나 나름의 태도 선언이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부모가 된다는 건 늘 무언가를 해주는 사람이 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부모로서 성숙해진다는 건, 어쩌면 개입하고 싶은 본능을 억누르고 개입하지 않는 연습을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딸의 방에 굴러다니는 허물을 못 본 척해주는 것, 그 무질서 또한 아이가 스스로 감당해야 할 삶의 일부임을 인정해 주는 일.


청소 대신 잠을 택했던 그날, 나는 딸의 게으름을 방치한 것이 아니었다.
어지러운 현관 너머 어딘가에서, 혼자 자기 삶을 정리해 가고 있을 딸을

그저 조용히,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을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눈을 감아주어야 하는 순간,
붙잡고 싶지만 손을 놓아주어야 하는 찰나의 시간들.


나는 그날, 부정을 선택함으로써

딸의 성장을 말없이 허락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삶 앞에서,

개입하지 않기로 선택했던 경험이 있나요?


그 선택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