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당엔 커다란 소나무가 두 그루 있다. 힘차게 하늘 향해 뻗은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는 나무다. 하지만 봄이면 송홧가루로, 가을엔 솔잎으로, 때론 갑자기 떨어지는 솔방울로 불편함도 있는 나무다. 그러나 유독 쨍한 이곳 여름, 담을 맞댄 옆집의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어우러져 만든 나무 그늘은, 햇빛도 피할 수 있고, 작은 둔덕 위에 있어 정원을 한눈에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의자를 놓을 만큼 넓지 않아 여유를 즐길 수는 없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요 며칠이 자리가 욕심이 났다. 몇 년을 잠깐씩 더위를 피하는 것으로 만족했는데 갑자기 이 자리에 욕심이 났다.
소나무 밑 회양목(Boxwood)은 자르고 나니 잘했다 싶었다. 늘 솔잎을 덮어쓰고 있어, 제 모습 한 번 온전히 보이지 못했는데, 자르고 나니 오히려 멋진 소나무 밑동이 드러나 보여 좋았다. 여름 아침, 쟈스민의 달콤한 향을 기억하고 있기에 마음 아팠지만, 쟈스민 덤불도 걷어냈다. 자르고, 뽑고, 후다닥 그저 의자 하나 넉넉히 놓을 공간을 만들려고 했을 뿐인데 한나절이나 땀을 흘려야 했다. 회양목을 반쯤 잘랐을 때부터 마음은 벌써 의자에 앉아 차 한잔 마시고 있는데, 생각지 못한 것들이 그 시간을 자꾸 늦췄다. 송진이었다. 솔잎을 뒤집어쓴 회양목 곳곳엔 그동안 소나무에서 흘러내린 송진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조심했는데도 장갑을 몇 번이나 바꾸어 껴야 할 만큼 끈적함이 남아 있어 일의 속도가 더뎌졌다. 쟈스민도 문제였다. 부드러운 덤불이라 후루룩, 쉽게 들어내면 되리라 생각했는데, 가지를 자를 때마다 나오는 흰 액체가 사방에 튀고, 끈적거려 조심하다 보니 시간이 꽤 들었다.
끈적한 불편함이 마구 자르지 말라고, 없애지 말라는 그들의 경고 같아 멈칫하기도 했다. 실제로 송진의 끈적한 접착 성분은 나무의 상처 난 부위를 보호해 나무 자신의 곰팡이나, 바이러스를 막아 내는 역할을 한다. 쟈스민, 고무나무, 무화과처럼 잎이나 줄기를 자를 때 나오는 흰 액체 역시 마찬가지다. 또 이런 수액은 없어도 로즈메리, 페퍼민트, 라벤더와 같은 허브 식물도 만지고 나면 끈적함과 함께 특유의 향이 오래 남는데 이것 또한 그들의 자기 방어 또는 생존을 위한 수단인 것이다.
며칠 만에 멋지게 세팅한 휴식 공간은 솔잎으로, 송진으로 끈적거리기 시작했다. 자리 욕심에 깊은 생각 않고 서두르다 보니 이 상황까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앉기 전에 털고, 닦는 작은 수고 정도는 불편함이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수액으로 향기로, 나름의 방법으로 스스로를 지켜, 인간에게 이 좋은 자연을 누리게 해 주는 식물들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