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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혜 Jan 26. 2023

안부를 묻습니다.

                                                                                                 

 축축이 젖은 잔디 이슬을 피하려면 고무장화를 신어야 한다. 이십여 일의 비바람을 쫓아낸 햇살이 쨍하지만 아직 바람은 차다. 털모자 쓰고, 모종삽, 호미, 원예 가위를 바구니에 담아 정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핸드폰에 저장한 음악을 재생시키면 드디어 작업 준비 끝. 


우리 조상들이 논 갈고, 베 짤 때 힘을 내자 함께 부르던 노동요와는 차이가 있지만 나에게도 정원 일을 할 때 음악은 그 시간에 즐거움을 더하고, 외로움을 덜어주는 나의 노동요가 된다. 

내 노동요엔 클래식부터 영화음악, 한국 가요, 팝송까지 많은 곡들이 엉클어져 저장되어 있지만 어떤 곡이든 늘 편안한 마음으로 일을 하게 도와준다. 새로운 노래가 꾸준히 더해지긴 해도 반복해 듣는 음악들도 아침, 저녁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고, 계절에  따라 달라서 들을 때마다 새롭다. 오늘도 그동안은 큰 기억 없었던 노래 한 곡이 내 가슴으로 훅 들어와 마음에 바람을 일으켰다. 한 번 분 바람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고, 할 일 미루고 노래만 반복해 들었다. 


오늘 하루 어떤가요 / 밤새 안녕하신가요/  맘 같지 않은 세상 / 그 맘 다 알아줄 수 없지만/ 

늘 곁에 함께 있다오/ 그대 안위에 맘이 쓰였소 ( 안부- 이선희 )


누구의 안부를 저리 절절히 물었을까? 분명 사랑하는 사람, 늘 맘 속에 기억하고 사는 사람이리라.  그녀의 노랫소리가 고향 봄날 아지랑이처럼 그리움이 되어 피어오른다. 내가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 그 끝엔 늘 팔순을 넘긴 부모님 있다. 바다 건너 한국에 계시니 안부 여쭙는 통화 끝엔 늘 가슴 한끝이 찌릿하게 저린다. 서로를 위로하느라 말로는 다 전하지 못하는 서로의 일상은 통화가 끝나도 마음으로 전해져 먹먹하다. 계획한 삶은 아니었지만 도전의 결실로 얻게 된 타국에서의 생활은 떨어져 사는 가족들 때문에 새롭고, 풍성해도 문득문득 허전하다. 하지만 이 땅의 시민이 되어 살기로 한 것도 내가 택한 삶이었다. 그러니 지금까지처럼 힘내어 살아야 한다. 타향살이, 사무치고, 힘든 나와 같은 그리움을 갖고 있는 우리는, 서로에게 <오늘 하루 어떤가요/ 밤새 안녕하신가요>  별일 아닌 듯 안부 전하며 또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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