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그림을 그린다. 연녹색으로 배경을 만들고, 노랑, 분홍색을 더하더니 어느새 고운 향기까지 더한다. 눈으로도 보이는 4월의 향기.
아침 일찍 창문을 여니 한 움큼 봄 향기가 쏟아져 들어온다. 게다가 오늘은 기다리던 그녀까지 왔다. “미스김 라일락”. 꽃의 형태보다 향기로 그 존재감을 더 드러내는 라일락, 기분 좋은 달콤함과 살짝 스치는 쌉싸름한 향기가 내 정원에 확실한 봄을 알린다.
미스김 라일락의 한국 이름은 “털개회나무"다. 그것을 1947년 미국 식물채집가, 엘윈 미더가 북한산 국립공원에서 채취해 미국으로 가져와 개량 후에 전 세계에 퍼트렸는데, 한국에서 자기 일을 도왔던, 타이피스트 ‘미스김’을 기억하며 "미스김 라일락"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다른 라일락보다 작게 자라지만 그래서 또 작은 공간에서도 키울 수 있는 게 이 라일락의 장점이다. 처음 꽃봉오리가 맺힐 때는 진한 보라색을 띠었다가, 봉오리가 열릴 때는 라벤더색으로, 그리고 활짝 피었을 때는 하얀빛을 띠며 강한 향을 내는데, 이 진한 향 때문에 라일락중 인기 품종이기도 하다. 또 꽃이 지고 나서야 그 존재감을 더하는 나뭇잎도 여름은 진한 녹색으로, 가을에는 연한 자줏빛으로 변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포기 나누기를 해도 잘 자라고, 물꽂이 없이 바로 삽목해도 뿌리를 잘 내리는 가성비 최고의 라일락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을까? 지금은 큰 병충해도 없고, 월동도 잘하는 쉽게 크는 나무로 불리지만, 물설고 낯선 이 땅에 처음부터 쉽사리 뿌리 내렸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그 성공적인 정착엔, 먼 타국 땅에서까지 이것을 품고 왔을 식물채집가의 열정과 정성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산 자락과는 다른 이곳의 날씨와 토양에 적응하느라 “털개회나무”는 적잖이 애를 먹었을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낯선 땅에 깊이 뿌리 내리고, 한 해 한 해 나뭇가지를 사방으로 더 펼치고, 굵기를 키워 “미스 김”이란 한국 성씨 이름표로 세계 곳곳에 자리 잡는 오늘에 이르렀다.
라일락의 여정을 생각하다 보면, 그 옛날 낯선 땅에 처음 발을 내디딘 이민자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어쩌면 그들은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땅에 뿌리 내리는 것을 넘어, 마음의 뿌리도 내려야만 했을 테니까 말이다. 불안했을 것이고, 외로웠을 테고, 힘겨운 순간들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미스 김 라일락처럼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 땅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만들어갔다. 작은 바람에도 온몸을 떠는 연약한 나무지만, 섬세한 꽃잎과 달콤한 향기 속에 역경을 이겨낼 강인함이 숨겨진 “미스김 라일락”.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다.
그리고 단순한 꽃향기로만이 아니라, 오랜 시간 지나도 잊히지 않는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라일락 향기는 내가 그녀를 아끼는 또 다른 이유다.
무엇이 좋아 그리 깔깔대고 웃었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하지만 학교 담장 따라 늘어선 라일락 나무 길을 함께 걸으며 끝없이 쫑알거렸던 나의 친구들, 그날의 라일락 향기는 아직도 작은 종소리로 달랑대며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아름다운 정원도 아니었다. 이름있는 나들잇길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평범한 오후, 엄마와 함께 나선 목욕탕 가는 길. 좁은 골목 한쪽 귀퉁이에 소박하게, 조금은 꾸부정하게 서 있던 라일락. 아직도 그 길을 떠올리면 달콤한 라일락 향기와 함께 주름 하나 없던 젊은 시절, 건강한 어머니를 떠올릴 수 있어 행복하다.
한국을 떠나기 전, 약 20년 전 이맘때쯤, 가까운 지인들과 작별 인사를 위해 서울 근교 식당을 찾았었다. 그때 상 위에 오른 수많은 음식중 많은 이들이 그 어느 음식보다 더 탐냈던 게 돌나물이었다. 아무튼 그때 마음씨 좋은 주인은 우리에게 식당 근처 텃밭에서 돌나물을 양껏 뜯어가라 했었다. 그때 그 텃밭에 라일락이 있었다. 돌나물 한 줌, 라일락 향기 한 모금. 세월은 흘렀지만, 내겐 아직도 한국의 봄은 그날의 따뜻하고, 향기로운 기억들로 남아있다.
그때는 몰랐다. 그 향기가, 그 꽃송이가 훗날 이렇게 먹먹한 그리움이 될 줄은 말이다.
라일락이 있는 정원을 나는 느리게 걷는다. 올해 유난히 늦게까지 내린 비로 아직도 천천히 걸으면 발바닥 가득 말랑하고 폭신한 흙길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람 따라 전해지는 풀내음도 느리게 걸어야 진하게 맡을 수 있다. 어느새 꽤 무성해진 잎새 사이의 햇살을 잡을라쳐도 천천히 걸어야 한다. 그래야 언제고 다시 먹먹한 그리움으로 기억될 오늘이 더 또렷해질 테니까 말이다.
벌써 십여 년, 봄마다 나의 부엌 창가를 찾는” 미스 김”, 매년 따뜻한 봄바람으로 내 삶에 찾아오고, 고운 향기로 나를 위로해 주는, 변하지 않는 그녀. 설사 앞으로의 내 삶의 어느 봄이 따뜻하지 않고, 달콤하지 않더라도 조용히 나를 찾아 줄 미스김을 믿기에 나는 언제나 봄을 기다릴 것이다.
“고마워 미스김, 올해도 이렇게 나에게 찾아와 줘서.”
(2025년 4월 미주 현대신문에 게재했던 글입니다.)